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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1950년대부터 민간 아닌 경찰이 경비"
게시물ID : dokdo_46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유체이탈가카
추천 : 2
조회수 : 16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1/07 15:52:25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21107103311819&RIGHT_COMM=R9

(울릉도=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1950년대 초반 독도로 작업 나간 어민들이 일본 순시선에 의해 쫓겨났다는 신고가 한 달에 한 번꼴로 들어왔습니다. 조업 중인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경찰이 수시로 직접 독도에 나갔습니다."

7일 울릉도에서 만난 최헌식(89)씨는 고령에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옛 기억을 풀어나갔다.


당시 울릉경찰서 소속 독도순라반의 반장(경사)이었던 최씨는 "순라반이 독도에 접근한 일본의 순시선 헤쿠라호를 위협하며 쫓아냈다"며 "배 안에서 일본인 선장과 담판 지을 때 나눈 얘기, 앉은 자리까지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이른바 '헤쿠라호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한국전쟁으로 혼란한 시기였던 1950년대 초반에도 정부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최씨의 증언은 민간인으로 구성된 독도의용수비대가 1953년 4월 창설돼 3년8개월간 독도에 상주했다는 기존에 알려진 사실과 다소 차이가 있다. 그동안 정부와 경상북도, 울릉군 등은 독도의용수비대장 고(故) 홍순칠씨의 수기를 근거로 의용수비대가 헤쿠라호를 격퇴했다고 공식 인정해왔다.

최씨는 "당시 일본은 수시로 '시마네현 다케시마'라고 적힌 말뚝을 박아놓고 가거나 시마네현 명의로 '이곳에서 무단 채취를 금한다'는 내용의 표지판을 세웠다"며 "말뚝을 뽑아놓으면 또 심어놓고 가는 등 기싸움이 치열했다"고 말했다.

1953년 7월12일 최씨는 일본이 또 표지판을 세웠다는 주민 신고를 받고 당시 김진경 수사과장(경위), 순경 3명과 함께 독도로 향했다. 독도에 관심있다는 초등학교 교사 2명도 연구차 동행했다.

'통통통' 소리를 내며 달렸다는 4.5t 목선은 독도까지 기상이 좋을 때는 7시간, 파도가 거셀 때는 8∼9시간이 걸렸다.

최씨는 "약 200m 앞바다에 우리 배의 100배 크기(450t급)의 일본 배가 있었다"며 "안에 들어가 보니 자신을 일본 보안청장이라 소개하는 사람이 기자 20여명까지 대동하고 왔다"고 회고했다.

최씨는 당시 "조선시대에 안용복이 일본까지 가서 일본 정부로부터 독도는 조선의 영토라는 각서를 받아왔다"며 "울릉도 능선에만 올라가도 독도가 보이는데, 대나무 하나 없는 섬에 다케시마(竹島)라는 이름이 말이 되느냐"고 따졌다. 일본 선장은 처음 듣는다는 표정이었다.

한참 승강이를 벌이던 중 밖에서 기다리던 김 과장이 배에 올라 고함을 치며 헤쿠라호를 영해 침범혐의로 나포한다고 말했다. 배가 달아나려하자 기다리던 순경들이 M1 소총으로 위협사격했다고 최씨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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