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아동 황산테러 사건(1999)
제가 9살때 이네요
저보다 어렸던 김태완군 당시 6살,
이아이는 왜 죽어야 했을까
저는 이 글을 쓰게된 것이 너무나 슬픈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어나지 않았어야 했고, 앞으로 일어나서도 안되는 일이며
그럼에도 반드시 우리는 잊지말아야할 사건입니다..
<故 김태완군> 사진도 많지 않다
1999년 5월 20일. 오전 11시 경..
대구시 동구 효목 1동에 살던 김태완 군 (당시 6세)은
피아노 학원에 가기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당시 기사 http://news.naver.com/main/read.nhn?oid=001&aid=0004507357>;
골목길을 돌아 학원으로 가는길.
집을 떠난지 10분도 채 안되었을 때, 사고는 갑작스럽게 발생합니다.
갑자기, 검은 비닐봉지를 든 정체불명의 남성이 나타나 태완군의 머리를 자신쪽으로 당긴뒤
입을 강제로 벌리고 황산을 얼굴 에 붓습니다
황산은 고스란히 태완 군의 눈과 입 사이에 쏟아졌고
단 일초 남짓한 시간만에 각막이 타버리고 입안은 녹아내렸으며
황산은 식도와 기도를 타고 내려가며 전부 태워버립니다.
아이가 목으로 넘기지 않은 황산은 몸으로 흘러 옷을 태우고 상반신을 검게 태웁니다.
<김태완 군의 어머니가 쓴 당시의 상황>
살려달라고, 뜨겁다고-
태완군은 비명을 질러댔습니다
그러나 그 비명마저 잠시 태완군은 목이 다 타버려 소리를 낼 수 없었다.
눈도 보이지 않았으나, 본능적으로 죽을 힘을 다해 집 쪽으로 하는것도
그것조차 오래지않아 사지를 태우는 고통에 주저앉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최초 목격자인 50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집 아이냐, 빨리 손을 써야한다!"
이윽고 어머니가 뛰쳐나왔지만...
그곳엔 얼굴과 몸이 녹고있는 태완군이 쓰러져있었습니다.
<당시 태완 군을 찍은 사진이 없어 대체한다.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사진은 아니다>
곧 태완 군은 경북대학교 병원으로 실려갔으나
당시 기술로는 물로 상처를 씻어내는것 이외엔 방법이 없었습니다.
태완 군은 전신의 절반을 3도 화상을 입고 시력을 잃었으며
목부분에 치명적인 화상을 입었습니다.
경찰과 태완군의 부모는 인근 지역을 샅샅이 조사하였으나
성과는 없었습니다.
그나마의 목격자들마저 사고가 일어난 다음 태완군의 비명을 듣고 목격한 사람이라 범인에 대한
단서가 잡히지 않앗죠
..
범인에 대한 유일한 단서 - 남성. 까만 비닐봉지.
<태완군의 모친 박정숙씨>
태완 군은 상상도 못할 고통에 휩싸여 사경을 헤메이다
결국, 사건 발생 49일 째인 1999년 7월 8일. 짧았던 삶을 마감합니다.
죽기전, 희미한 의식 속에서 태완 군은 마지막으로 속삭입니다.
치킨집 아저씨가 그랬다고..
이후 지목 당한 치킨집 아저씨는 계속적인 추궁과 조사를 받다
무고하다며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는걸로
이사건은 영구미제로 남게 되었습니다.(범인이 아닌걸로 사료됨)
모친 박정숙 씨의 병상일지를 보시면 심정을 이해할수 있을겁니다.(보고 울음이 나왔습니다.)
http://aion.plaync.co.kr/board/server/view?articleID=2250756
펌 :http://blog.naver.com/pinger3.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