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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 자살의 명소 [연재소설] -6부-
게시물ID : panic_4653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숏다리코뿔소
추천 : 12
조회수 : 1366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3/04/28 02:27:09




망했다. 장 선생 스타일이라면, 지금 즘 정안 씨는 발가벗고 103호실에서 싸늘해져 있을 터였다. 성민이에게만 들리도록 “야, 장 선생님 왔다갔냐?” 묻자, 성민이는 “형! 귀신한테는 아무리 작게 해도 다 들려!” 소리쳤다. 멍청한 놈 귀신이 어디에 있어. 내 반쪽이라잖아. 쌍둥이 아니면 자매. 아니, 무조건 쌍둥이지.

“정안이 좀 만나 볼 수 있을까요?”

죽었다는 말 듣고 왔으면서도 굳이 묻는 건, 그녀가 정안 씨의 죽음을 믿고 싶지 않음이리라.

“가족 분들은 함께 오시지 않으신 건가요?”
“형! 무슨 소리야! 귀신한테!”
“아아! 시끄러 좀 가만 좀 있어!”

악악, 소리를 지르는 남정네 둘이서 티격태격하니, 그녀는 가슴이 쪼그라들었을까, 반 줌을 쥔 손을 가슴팍에 갔다 데었다. 장 선생은 프로다. 일처리만큼은 끝내주는 사람이다. 그러니, 내 예견대로 103호실엔 벌거숭이 여자가 드러누워 있을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나면, 가족의 시체고 나발이고, 우리가 무슨 의심을 살지 모르는 일이다. 여자를 흥분시켜선 안됐다. 그러는 날엔 섬이 송두리째 흔들릴 것이다.

“지금 아직 장의사 분께서 마무리를 못하셨을 텐데요. 그 쪽은 어떻게 되시나요. 정안 씨와 외모가 많이 닮으신 것 같은데.”
“언니 되는데요.”
“쌍둥이 이신가요.”

그녀에게 구태의연 질문을 던져 시간을 지체해야했다.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아직 잠결이었고, 성민이의 귀신타령에 나까지 동요되었다. 머릿속은 진공상태였고, 상대는 오랜만에 대접하는 유가족이었다. 그녀의 반응을 짐작할 수 없으나, 전에 있었던 일들과 대조하며 침착히 그녀를 달랠 방법을 선택해야했다. 시체 앞에서 그녀는 분명 무너지거나, 망가지거나, 폭발하거나. 어떤 형태로든 나를 힘겹게 만들 것이다. 분명히.

“보시면 아시잖아요.”

그녀의 말에 따끔거리는 가시가 돋아 있었다. 성민과의 전화 통화를 기억해보면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여자는 냉정을 되찾은 듯, 더 이상 새근새근 숨소리를 크게 내오는 법도 없었다. 장 선생이 도착하는 것이 점심쯤일 것이다. 아직 완벽히 준비를 마치진 못했으나, 갑자기 자살해버린 사람을 상대로 순식간에 대처해내지 못했음을 그녀가 꾸짖는 일은 없겠지. 생각하고 103호 실을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내 팔뚝 살을 덥썩 움켜쥐었다. 움켜진 손의 극심한 떨림이 내 몸을 흔들었다.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장 선생은 밤사이 무슨 일을 이 따위로 하고 떠났는가. 저건 죽은 사람에 대한 예우가 아니잖아. 장 선생 당신 그런 사람 아니잖아.

“당신들 뭐야!”
“예?”

예? 물어 놓고도 묻는 내가 한심스러웠다. 누가 봐도 정안 씨의 해괴한 몰골은 나와 성민의 짓거리로 밖엔 안 보이잖는가. 손을 뻗어 그녀를 안정시키려 하자 그녀는 흠찟하며 몸을 뒤로 뺏다. 곤란했다. 난동을 부리는 날엔 넙치 패거리가 때로 몰려들 것인데.

“진정하세요. 제가 설명을 드릴게요.”
“형! 무슨 설명이야! 시체 저거 왜 저래! 역시 귀신이야! 귀신이라고!”
“이! 가만 좀 있으라고!”

그녀의 눈은 경직된 채 흰자위를 모두 보일만큼 크게 뜨여있었다. 그녀는 나와 성민, 103호 안의 정안을 보더니 냅다 복도를 뛰기 시작했다. 그녀를 잡아야했다. 저 여자는 이대로 가다간 죽고 만다. 동네 사람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청하거나 하는 날엔 초주검이 되어 자살바위 밑으로 떠밀릴 것이다. 섬의 불안 요소는 모두 자살시켜 마다 않는 이들이 바글바글 하다고!

“야! 저 여자 잡어!”

성민이에게 소리치며 나도 그녈 따라 달렸다. 성민이는 욕을 뱉으며 내 뒤로 발을 차며 따라 붙었다. 여자를 잡아, 소리친 것에 여자는 겁을 집어 먹은 듯 큰 눈으로 뒤를 한 번 돌아보더니 달리기에 박차를 가해갔다. 치열한 손놀림이 그녀의 심경을 대신했다. 그녀는 우리가 자신을 죽일 것으로만 생각하는 게 틀림없었다. 상황이 좋지 않다. 이유 여부를 막론하고 그녀를 잡아야했다. 철제 현관을 부실 듯 밀치며 마당으로 마당에서 큰길로 뛰어나갔다. 여자는 작은 키에도 다부진 다리를 연신 놀리며 턱턱턱 동네에 발소리를 울렸다. 내리막의 언덕길이 몸에 추진력을 더해 주체할 수 없이 몸이 빠르게 느껴졌다. 자칫 넘어진다면 온 몸이 찢기고 갈려 버릴 것만 같았다. 속으로 달리고 있는 그녀가 차라리 넘어져 다쳐버렸으면 했다. 괜한 사람 부여잡고 살려주세요. 부탁하면 안 돼. 그녀는 바람처럼 내 손아귀를 벗어났다. 그녀가 사라져버린 편의점 문 밖에서 망연자실 그녀를 원망하는 수밖엔 없었다. 하필이면 도움을 요청해도 그런 곳으로 떠났어요. 왜. 왜에요 도대체. 사람 말을 믿어야지. 수연이 다급한 표정으로 편의점을 나왔다. 당혹한 시색이 역력하던 수연의 얼굴표정은 내 앞으로 다가오며 점점 밝게 생기를 띄기 시작했다. 수연의 등 뒤로 정안의 언니라는 여자는 편의점 문을 걸어 잠그며 나와 수연의 동태를 살폈다. 수연은 등 뒤로는 자신의 표정을 숨기며 내게 물었다.

“자기야, 방금 들어온 손님이 재미있는 말 하던데?”

수연의 입에서 세어나온 흐느낌의 웃음이 등살이 빳빳하게 굳어갔다. 편의점 유리문에 찰싹 달라붙은 정안 씨의 언니는 수연이 걱정인지 “그 사람 위험해요. 도망쳐요.”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자기, 손님이 저렇게 말 하는데, 어떡해? 나 어쩌면 좋아요? 자기?”
“오해가 있어서 그래요. 제가 잘 설명 하면 괜찮아질 거 에요.”
“너, 또 존댓말 한다. 사람 복장 긁어놓고 싶어서 안달난 거 같이…. 오랜만에 자살객 하나 만들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

편의점 안의 여자가 갑작스럽게 문을 세차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유리문이 부서져라 온 힘을 다하는 그녀의 얼굴에 급박함이 여실했다. 여자는 “저기요! 살려줘요! 아저씨! 여기요! 여기 좀 도와주세요!” 소리를 쳤다. 수연은 내 등 뒤로 눈동자를 굴렸다. 그리곤 수연이 내 허리를 감싸오며 귀에 입을 붙인 채 말했다.

“지금부터 처신 잘 하는 게 좋아……. 어?! 광오 오빠! 여기!”

수연이 내 등 뒤에 남자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었다. 수연을 따라서 뒤를 돌아봤다. 넙치. 넙치 녀석이 똥 씹은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떡판을 후려치는 나무망치로 얼굴을 얻어맞은 듯 납작한 얼굴이 온갖 나쁜 인상을 가지가지 풍기고 있었다. 오른 쪽 밑부터 콧구멍으로 번개처럼 새겨진 칼자국이 씰룩거렸다.

“자기, 또 한 사람 죽이고 싶지 않으면 내 말 잘 들을 거지? 그렇지?”

등 뒤에 여자는 아직 소리치고 있었다.

“아저씨! 도와줘요!”

저 여자를 굳이 살려야 할 필요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또 하나 죽인다고, 뭐가 달라질까?

 

 

- 6부 끝 7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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