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발귀
청송 성수침(成守琛)이 만난 장발귀
개요
장발귀(長髮鬼)는 검푸른 빛이 도는 긴 옷을 입고 발끝까지 자란 긴 머리카락을 지닌 귀신이다. 산발한 머리카락 사이로 동그란 고리 모양의 눈을 번뜩이면서 사람에게 다가가 공포감을 불러 일으키는데, 장발귀가 가까이 오면 비린내가 몹시 난다고 한다. 장발귀는 귀매(鬼魅)의 일종인데, 특정한 사람에게 원한이 있어서 나타나는 원귀(寃鬼)와 달리 별다른 원한이 없는 사람에게도 나타난다. 만일 기력이 약한 사람이 장발귀와 같은 귀매를 만나게 되면 넋을 빼앗기거나 병을 얻어 죽게 된다. 장발귀의 산발한 머리나 검푸른 빛이 도는 긴 옷 등은 모두 죽음, 어둠, 질병과 관계된 상징물로 이해되며, 특히 고리 모양의 번뜩이는 눈은 살아있는 사람의 정기를 빼앗기에 충분하다.
원텍스트 요약
청송 선생 성수침이 경성 백악산 기슭에 있는 청송당에 머물고 있었다. 어느 날 황혼 무렵, 심부름 하는 아이도 없이 홀로 앉아 있었는데, 홀연히 한 물체가 오더니 집모퉁이에 서 있는 것이었다. 감색의 긴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길이가 뒤꿈치에 닿을 정도였고 산발한 머리는 땅에 끌려 바람을 따라 헝클어졌다. 어지럽게 헝클어진 머리 사이로 고리 모양의 두 눈이 번쩍 번쩍 빛나 두려울 지경이었다. 선생이 “너는 누구냐?”하고 물었으나 아무 대답도 없었다. 선생이 다시 “이 앞으로 오거라.”하고 말하니 창 밖에까지 다가 왔는데 누린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선생은 “네가 만약 도둑이라면 내 집에는 훔쳐갈 아무 물건도 없다. 네가 만약 귀신이라면 사람과 귀신의 길이 다르니 속히 가거라.”하고 말하였다. 선생이 말을 마치자 그 물체는 휙하고 사라져 그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출처 :《어우야담》권2
설화 분석 및 상징적 의미
장발귀(長髮鬼)는 청송 성수침(成守琛, 1493〜1564)이 만난 귀신으로, 이에 관한 이야기는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의 《어우야담》에 들어있다.
성수침은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로 자는 중옥(仲玉), 호는 청송(聽松)이다. 아우인 수종(守琮)과 함께 오래 동안 조광조에게서 사숙했다. 1519년 현량과를 통해 처음 관직에 나아갔으나 그해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서 조광조와 그의 문하인들이 처형, 유배되자 그 역시 사직하고 은거했다. 이후 여러 차례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양하면서 《소학》, 《대학》, 《중용》등과 같은 경서를 공부하면서 자기수양에 힘써 조광조 이래 도학사상적 학맥을 이었다.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기에 집안의 경제적 사정은 그의 장례식조차 치룰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저서로는 《청송집(聽松集)》이 있다.
청송 성수침 선생이 만난 이 귀신은 무슨 목적으로 나타났는지 분명하지 않고 그 성별조차 알 수 없다. 머리를 길게 산발한 귀신의 모습은 결혼하지 못하고 죽은 처녀 귀신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지만, 발꿈치까지 내려오는 긴 감색(紺色) 옷은 남성적 느낌을 준다. 또한 몹시 비린내를 풍겼다고 한 점으로 보아 짐승의 일종일 수도 있고, 종종 도깨비 중에 누린내를 풍기는 존재가 있기도 해서 도깨비의 일종으로도 보인다.
《어우야담》에서도 장발귀를 한 물체(一物)라고 적어 놓고 있어서 장발귀의 정확한 면모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머리카락(髮), 옷(衣), 발꿈치(踵) 등의 용어가 사용되어 있기에 죽은 사람의 혼령으로도 볼 수 있다.
장발귀의 특징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길게 산발한 머리에 긴 감색 옷을 입었고, 두 눈은 두려울 정도로 빛이 났다. 이러한 모습의 장발귀는 사람이 죽어서 된 귀신처럼 느껴진다.
예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 육체는 땅에 묻혀 썩어 없어지지만 그 영혼은 영원히 남아 저승이나 천상 등과 같은 또다른 세계로 가서 새로운 삶을 산다고 믿어져 왔다. 살아 생전에 순탄하게 살다가 수명이 다해 자연스럽게 생을 마감한 사람은 그 영혼이 저승으로 가게 되고, 차례와 제사를 받아먹는 조상신이 된다. 살아서 악독한 짓을 많이 하거나 순탄하지 않게 생을 마감한 사람의 혼은 저승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게 된다. 때문에 이러한 귀신들은 반드시 자신의 한을 풀어줄 사람을 찾거나 자신을 죽게 했던 사람을 찾아가서 귀찮게 한다. 즉, 사람이 죽어서 된 귀신은 반드시 이유가 있을 때에만 사람들 앞에 그 형상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장발귀는 그 모습이 사람의 형상과 닮아 있기는 하지만, 사람이 죽어서 된 귀신으로 보기는 어렵다. 장발귀가 성수침의 앞에 나타난 이유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장발귀에게서 비린내가 몹시 났다고 했다. 비린내, 혹은 누린내는 수생생물, 가축이나 산짐승에게서 나는 체취이기에 장발귀가 동물의 일종이 아닌가 의심케 한다. 그러나 장발귀의 외형상 특징이 짐승과는 거리가 있다. 한편 구비설화에는 누린내가 나는 도깨비에 관한 얘기가 다수 전승되고, 도깨비가 자주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으로 보아 장발귀는 도깨비의 일종으로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설화 내용상 장발귀가 정확히 어떤 종류의 귀신인지 분명하지는 않다.
셋째, 장발귀는 성수침이 호통을 치자 사라졌다고 했다. 귀신은 달리 귀매(鬼魅), 요물(妖物), 괴귀(怪鬼) 등으로도 불리는데, 야담에서 이들이 사람 앞에 나타나는 경우는 대략 네 가지로 나뉜다. 누군가에게 원한이 있는 경우, 역신(疫神)으로서 병을 옮기기 위한 경우, 사람의 담력을 시험하기 위한 경우, 분명한 이유 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경우 등이 그것이다. 장발귀는 세 번째와 네 번째가 결합되는 경우로 볼 수 있다.
장발귀가 성수침 앞에 나타난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에서는 네 번째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풀어헤친 머리, 횃불처럼 빛나는 눈빛, 코를 찌르는 비린내 등의 묘사에서도 알 수 있는 장발귀의 모습은 보통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괴기스럽다. 그러나 성수침은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호통을 쳐서 물리치는 담대함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이러한 담대함은 기묘사화(己卯士禍)를 겪으면서 세상과 단절하고 홀로 자기수양을 하면서 평생을 보낸 그의 이력에서 나왔을 것이다. 따라서 장발귀는 성수침의 비범함을 시험하고 입증하기 위해 설화적으로 꾸며낸 존재인 것이다.
참고문헌
《어우야담(於于野譚)》권2
김현룡 《한국문헌설화》6 건국대출판부 2000.
《한국민족문학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내용 출처 : Kocca 문화콘텐츠닷컴
이미지 출처 :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