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ε★ 백마 탄 백수 [10]
게시물ID : humorbest_4666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대리
추천 : 15
조회수 : 1438회
댓글수 : 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4/07/01 00:01:24
원본글 작성시간 : 2004/06/30 02:01:16
제목 : 백마 탄 백수 작가 : 이대리 ([email protected]) 팬카페 :
9편 재방송
컴퓨터 화면에 로또 당첨번호가 떠있다. "당첨번호 - 1, 10, 20, 30, 40, 45." "1등 당첨금 - 1,010,524,600원" 허, 허걱~! 이럴 수가! 일, 일, 일등 당첨이 되다니! 순간, 개미와 바퀴벌레가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나도 곧 맨땅에 헤딩하고 말았다. 꼬르르륵~! 콰당~! 『엄마~ 오빠 쓰러졌어~!』
잠을 자라고 신께서 밤을 만들어 주셨는데, 신의 계명을 무시한 채 밤을 꼬박 뜬눈으로 보냈다.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며 집 근처 놀이터로 나왔다. 세상이 나만 빼고서 모두 일시 정지된 느낌이다. 그 어떤 아이의 격렬한 움직임도 지금 내 눈알에 들어오지 않는다. 두 눈빛의 초점은 이미 가출해 버린 상태가 되었고, 내 눈앞엔 오로지 여섯 개의 번호와 당첨금만이 윙윙 맴돌고있을 뿐이다. 아직도 나의 꿈이자 대한민국 5천만 국민의 가장 큰 꿈인 로또복권 1등 당첨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로또 1등 당첨 확률이 600만 분의 1이라 하니 그 확률은 내가 수능시험에서 연필 굴려 만점 받을 확률과 비슷한 확률이다. 그리고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을 확률이 50만 분의 1이니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연속으로 12번 맞아야 당첨될 수 있는 확률이다. 근데, 근데! 날벼락을 한번도 안 맞고 일생일대의 꿈을 이룰 수 있었는데, 그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소나기로 맞아도 시원찮을 뇬에게 나의 꿈을 무담보로 주고 만 것이다. 이 환상적이면서 비극적인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이냐. 스스로 굴러 들어온 복에 후리킥을 가하다니! 으아아악! 난 왜 이렇게 스크류바같은 인생이냐! 이렇게 심하게 꼬이다니! 그냥 빚진 돈 갚고서 복권 돌려달라고 해볼까? 아니다. 아냐. 그랬다가는 의심할게 뻔하다. 신발! 10억 원이나 되는 돈이 한순간에 날아가게 생겼으니 정말 돌아버리겠다. 잠깐! 그 복권 주인은 나니까 당첨금에 대해 법적으로 내가 가질 권리가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소송을 걸어서라도 찾을 수가 있을 텐데. 재빨리 법에 해박하신 아부지한테 전화를 걸었다. 『웬일이냐? 드라큐라처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녀석이.』 『아부지! 만약 제가 남에게 준 복권이 당첨되면 그 권리는 누구한테 있어요!』 한숨도 쉬지 않고 다급하게 물었다. 『갑자기 웬 대박 터지는 소리냐. 남한테 받은 복권이라도 있냐?』 『그냥 궁금해서요. 빨리요!』 『미친쉐리~ 그런 거 물어볼 시간 있으면 일자리나 알아보고 다녀!』 『아부지~ 빨리요! 너무 궁금해서 그래요!』 『당연히 받은 사람의 것이지! 넌 생일날 친구들에게 준 선물들이 다 니꺼더냐?』 허걱~! 한참 로딩중이던 파릇파릇한 희망이 서버오류로 다운되고 마는 상황이다. 안 그래도 속 터져 죽을 것 같은데 이젠 작은 희망마저도 사라져버리는구나. 아~, 비극의 씨앗은 이렇게 잉태되고 마는가! 왜 절 시험에 빠지게 하소서~ 아~ 하늘이여~~ 아냐, 아직 희망의 불씨가 꿈틀대고있다. 꺼져 가는 가느다란 촛불보다 더 희미한 빛이긴 하지만, 어쩌면 그녀가 아직 당첨사실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 그럴 확률이 높다. 사실 용이 용트림하고서 입에 로또공 물고 하늘로 승천하는 꿈꾸고 산 번호지만 옆집 꼬마도 웃을 우스꽝스러운 번호이고 그 때 그녀도 코웃음을 친걸 보면 별로 기대하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당첨자 발표도 바로 어제였으니 아직 모르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몰래 훔쳐오면 게임 오버? 아싸~! 죽어가던 희망의 샘물이 다시 펄펄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재빨리 미래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의 핸드폰 번호를 물었다. 『보라 언니? 갑자기 왜?』 『그냥, 저번에 식사할 때 좀 실례를 한 것 같아서. 빨리 말해봐.』 『히히, 오빠 그 언니한테 관심 있구나?』 『관심은! 어차피 오빠도 그 센터에서 운동할텐데 앞으로 얼굴 붉히지 않으려면 친하게 지내야지.』 『하긴 그러네. 011-367-xxxx야. 참, 오빠 어제 왜 기절한 거야?』 『으, 응? 그, 그냥 갑자기 빈혈이 있어서.』 아직까지는 아무에게도 당첨사실을 알리면 안되기 때문에 가족한테도 이 사실을 숨겼다. 혹시나 그녀의 귀에 들어가게 되면 희미한 희망마저도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새에게도 쥐에게도 알리지 말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지내야한다. 근데, 그 여우같은 뇬은 나랑 어떤 숙명이 있기에 자꾸 꼬여 나가냐. 아무튼 침 뱉은 우물을 다시 먹어야 하는구나. 재빨리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보라야~ 나, 대수야. 한 대수.』 여우같은 뇬! 『시퐁~ 앞으로 마주치지 말자며 왜 전화질이냐?』 『하핫! 생각해보니까 우리가 악연으로 만나긴 했지만, 어쩌면 이게 인연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그냥 친하게 지내보려고.』 여우같은 뇬! 『나한테 뭐 약점 잡힌 거라도 있냐? 갑자기 웬 비굴 버젼이냐?』 여우같은 뇬! 잘도 넘겨짚는구나. 속내를 들켜버린 소년처럼 변명하기에 바빴다. 『생각해봐. 세상에 이렇게 재밌고 신기한 인연을 봤어? 생각할수록 웃음밖에 안 나오더라. 우리 앞으로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자. 그런 의미에서 오늘 내가 쏠게.』 여우같은 뇬! 『그럴 돈 있으면 돈이나 빨리 갚지 그러냐.』 『그럼 당연히 갚아야지. 나 때문에 손해가 컸을 텐데. 내가 최대한 빠르게 갚을 테니까 오늘밤에 걸쭉하게 술이나 한잔하자.』 여우같은 뇬! 『그렇게 간절하게 애원하는데 까짓 거 인심 쓰지.』 부글부글! 한 대수. 좀만 참자. 좀만 참아. "sul zip"이라고 적힌 호프집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호적에 잉크 증발한 후로, 약속장소에 먼저 나와본 적이 없었는데 살다보니 별 일 다 생기는 구나. 오늘 내 작업성과에 의해 10억이 왔다갔다할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목숨걸고 그 복권을 찾아내야 한다. 혹시나 그녀가 법적으로 소송을 걸어도 난 끝까지 준 적이 없다며 우기면 된다. 어차피 그 복권은 내가 산 것이고 복권집 아저씨부터 시작해서 미래, 그리고 동이까지 증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 복권만 찾으면 나의 대박 인생은 한순간에 이루어지고 만다. 잠깐, 범은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 방심하지 말고 작전 좀 짜두자. 술을 잔뜩 먹인 다음 벽돌로 내리찍어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해버릴까? 이건 좀 잔인하구나. 그럼 게임을 해서 술로 뿅 가게 한 다음, 정신 못 차리고 있을 때 몰래 지갑을 털어 버리자. 지가 아무리 술을 잘 마셔도 나는 못 당할 거다. 백수생활 하면서 는 거라고는 술과 담배 아니더냐. 하핫! 복권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둥근 해처럼 둥글게 둥글게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복권을 찾으면 뭐하고 살까? 내가 왕이 될 수 있는 작은 나라를 하나 만들까? 아냐, 요즘 왕 알기를 우습게 안단 말야. 귀신이나 부려볼까? 생각해보니 무섭구나. 그럼, 모두 10원 짜리로 바꿔서 평생동안 세면서 살까? 미칠넘! 백수의 기질이 여전하구나. 그렇다면, 가족에게 천만 원씩 떼 주고, 전국 백수들한테 용돈 천 원씩 준 다음, 나머지로 평생 아리따운 아가씨와 함께 해외여행이나 하고 살자. 하핫! 이 얼마나 우상적인 발상이냐! 으, 상상만 해도 염통이 꿈틀대는 구나. 『어쭈~ 일찍 왔다?』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응, 왔어?』 와~ 오늘따라 얼굴이 더 뽀송뽀송 하고, 하늘색 니트 티에 분홍색 초미니스커트를 입고 있는 모습이 끝내주게 매혹적이다. 성질만 들 더럽고 나랑 이렇게 악연만 없었어도 목숨걸고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은 여자다. 그러나 이젠 상관없다. 돈만 있으면 더 나은 여자를 전후좌우로 끼고 다닐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사실, 나도 오늘 기분 엿 같아서 술 고팠는데 잘 됐다.』 앗! 분위기를 봐선 아직 당첨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아싸가오리~! 『왜? 무슨 일 있어?』 『씨퐁~ 그 깍두기새끼가 오늘 집에 있는 물건들 들고 도망쳐버렸어. 개자식!』 『오잉? 왜 도망쳐?』 『인상파라는 조직에 몸담고 있는 새낀데 도망 다니고 있는 중이었거든. 우리 집도 위험할 것 같으니까 값 좀 나가 보이는 물건들 가지고 도망간 거지. 씨퐁~』 오호~! 혹시나 그 깍두기가 또 중간에 끼어 들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장애물이 스스로 퇴장해주는구나.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징조다. 『나도 오늘 열 받는 일 있어서 취하고 싶었는데, 아예 소주로 시작하자.』 『맘대로!』 테이블에 소주 한 병과 알탕이 올려졌다. 『우리 그냥 마시면 지루하니까, 게임 하면서 마시자.』 『뭔 게임.』 『그니까 마지막에 남은 소주병이 홀수면 너가 지는 거고, 짝수면 내가 지는 거야. 어때?』 『타이틀은?』 『지는 사람이 술값내기.』 『쓰댕아~ 니가 쏜다며!』 『마땅히 할게 없잖아. 알았지?』 『맘대로!』 휴~ 술값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나. 븅! 지금 10억 원이 왔다갔다하는데 겨우 술값이 문제냐! 니가 돈 뭉치로 안 맞아봤구나! 소주잔을 비우며 그녀의 핸드백을 투시력과 매직아이로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빈대경력 2년 동안 신에 경지에 이르러 그 어떤 지갑과 핸드백도 속에 넣어진 내용물을 상상할 수 있는 내공이 있기 때문이다. 등 처 먹히지 않으려고 발악하다보니 어느새 이런 경지에 오른 거다. 앗! 세종대왕과 이황 사이에서 샌드위치 되고 있는 로또복권이 한 폭의 그림으로 떠오른다. 나의 예감은 70%이상의 명중률을 자랑하고 있으니 분명 저 안에 복권이 있을 것이다. 로또야~! 좀만 기다려라! 주인이 풀어줄게! 『술 안 따르고 뭐하냐?』 『앗! 미안. 받으시요~』 금세 소주 다섯 병을 비우고 여섯 병 째 마시고 있는 중이다. 독한뇬! 술도 엄청 잘 마시는구나. 카운터를 향해 배팅했다. 『여기 한 병 더 요!』 으, 슬슬 어지럽기 시작한다. 정신 차리자. 한 대수! 아직 위대한 미션이 남아있다. 소주병을 하나씩 세어보더니 그녀가 카운터에 소리지른다. 『하나, 둘, 셋.. 홀수네? 여기 한 병 더 줘요!』 으아, 이 뇬은 취하지도 않나! 빨리 보내고 지갑 털어야 하는데! 앗! 이번엔 짝수구나. 『여기 한 병 더 요!』 잠시 후, 그녀가 지른다. 『한 병 더 줘요!』 다시 내가 질렀다. 『한 병 더 요!』 그렇게 소주잔이 농구공 튀기듯 마구 날아다니고 난 뒤, 헤롱헤롱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한 대수! 10억 원이 왔다갔다한다. 절대 취하지 말자! 『한 병 더 요! 딸꾹~!』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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