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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으로 똥 파기 (인턴일기)
게시물ID : poop_466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달걀몬
추천 : 5
조회수 : 1158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7/10 08:56:22
 

필력이 한석봉

출처 : 이글루
http://medwon.egloos.com/m/2512738


관장은 변비로 인한 통증과 불편감을 줄이고 정상배변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시행되는 술기로 배출, 정체, 역류 관장으로 나뉜다. 그 중 오늘은 손가락 관장과 관련된 몇가지 경험담을 소개할까 한다. 손가락 관장은 말 그대로 손가락을 이용해서 변을 파내는 술기를 말하는데, 대개 최후의 관장 수단으로 이용되는 방법이다. (손가락으로 코만 판다고 생각하는 편견을 버리도록 하자.) 복잡한 기술을 요하는 방법은 아니며 정상적인 손가락과 몇십분 동안 냄새를 견딜 수 있는 자신감 더불어 의료용 장갑, 수용성 윤활제 등의 준비물만 있으면 누구나 간단히 해볼 수 있다. (의사나 간호사들 중에는 관장액이나 손가락을 이용한 관장을 셀프로 하는 이들도 있다.) 그 과정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① 손을 씻은 후 물품을 준비하여 환자에게 간다. ② 환자를 확인 후 목적과 방법을 설명한다. ③ 스크린을 친다. ④ 고무포와 기저귀를 둔부 밑에 깔고 측위나 sim’s position을 취하도록 한다. ⑤ 소독장갑을 끼고 검지에 윤활제를 바른다. ⑥ 항문을 검지로 맛사지하고 손가락을 삽입한다. ⑦ 딱딱한 덩어리가 깨지도록 항문안에서 손가락을 움직인 후 대변을 제거한다. ⑧ 배설물 상태를 관찰한다. ⑨ 환자를 편하게 눕히고 침상을 정리한다. ⑩ 관장내용( 배설물의 상태, 양, 색깔, 환자의 반응) 을 기록한다.

 라는 것이 교과서적인 finger enema(손가락 관장)지만, 막상 그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눈앞이 깜깜해지고 세상이 빙 도는 것처럼 어질거리며 오직 삽입과 삽질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이와같은 블랙 아웃 현상 때문에 종종 윤활제를 바르는 일을 잊기도 하는데, 생짜로 손가락을 투입하게 되면 환자가 무척이나 고통스러워 하기에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병원에서는 특히나 우리같은 꼬꼬마들이 그 일을 전담하는지라, 어디선가 누구에게 '환자가 똥을 못누-'라는 소리만 들려도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하게 된다. 관장액을 통한 관장이라면 크게 힘들이지 않고 작업을 마무리 할 수 있지만, 그 관장액도 소용없는 신의 경지에 이른 만성변비 환자들은 나의 아름다운 두번째 손가락으로 쌓인 변을 하나하나 파내야만 한다. 그 일은 해보지 않았다면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강한 직업의식과 인내심을 요하는 작업이다. 

 엉덩이를 옆으로 돌린채 누워있는 환자에게 다가서면 일단 '머리부터 발끝까지 핫뜨거'운 전율이 느껴진다. 의료용 고무장갑을 양손에 끼우고 팽팽하게 당긴 연후에, 두 손을 모아서 '제발 쪼끔만'이라며 기도를 드린다. 하지만 단 한번도 예외없이 매번 한트럭 이상 퍼왔기에, 이미 마음 속으로는 어느정도 파낼 각오는 하고 손가락을 항문 사이로 집어 넣는다. 이 때 환자가 순간 똥구멍에 힘을 주면 엉덩이 혹은 항문 입구에서 손가락이 강한 조이기를 당하게 될 수도 있으니 정확한 포인트를 잘 찾아서 최대한 빠르게 손가락을 투입해야 하는 것이 빠른 승부를 위한 포인트다.  

 윤활유는 손가락이 부드럽게 진입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윤활유의 부드러운 느낌과 함께 2초 정도 안으로 들어가다보면 묵직한게 느껴지는데 그 느낌은 뭐랄까, 버려진 광산을 우연히 파냈더니 금맥이 발견되었을 때 희열감과 비슷하다. 깊숙한 곳에 금맥이 있지 않음에 감사드리며, 얇디 얇은 고무를 사이에 둔 채 환자의 변과 내 손가락(두번째)는 첫인사를 나눈다. 이후 첫삽을 뜨고, 그 광산을 통해 나온 첫번째 산물과 나는 바깥세상에서 처음으로 조우하게 된다. 첫삽을 뜨면 '뿌웅' 하고 터지는 소리와 함께 나오는 스타일리쉬한 냄새가 내 코를 자극하고, 이윽고 그 산물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면 비로소 시각-후각-청각의 삼박자가 환상적인 하모니를 이루며 온몸을 감싼다. 그 때만큼은 누가 내 뱃속에서 맹장을 몰래 떼가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그 하모니는 환상적이다.  

 광부가 삽질하듯 환자의 장 속에서 열심히 똥을 캐낸다. 하지만 20여분이 지나도 작업이 끝나지 않으면 허리가 저려오고 슬슬 짜증이 밀려온다. 온 몸은 땀 범벅이 되어버리고,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던 오감의 고통은 체득화 되어 소멸된다. 이 때부터 내 손가락이 똥을 파는지, 똥이 내 손가락을 장 속으로 이끄는지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똥파기의 달인이 된다. 가끔 보호자가 옆에서 '선생님 아직 안끝났어요?' 라고 물으면, '안해봤으면, 말을 말아요'라는 최신 유행어로 응수해주는 여유를 부리기도 한다. 하지만 여유를 부리다 의료용 장갑이 찢어지기라도 하면, 그리고 거기에 손톱까지 길게 자란 상태라면 그 이후 벌어지는 비극은 차마 말로 형언할 수가 없다. 내게도 그런 경험이 딱 한번 있었는데, 반나절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오로지 손씻기에만 몰두한 채 폐인처럼 지냈다. 그리고 그 사건 이후 손톱은 필히 달마다 다듬어주며, 손가락 관장시 장갑을 반드시 두장씩 사용하는 버릇이 생겼다. 손톱 사이에 검은... 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이다.

 침대 옆 하얀 종이 위에는 장 속에서 퍼낸 똥이 산처럼 쌓이고, 그 산의 높이만큼 환자의 고통은 줄게된다. 작업을 완료하면 그 똥산을 바라보며 잠시나마 흐뭇함에 젖기도 하지만, 낭만도 잠시일 뿐이다. 커튼을 걷어내면 이내 현실로 돌아와 고통스러웠던 그 시간을 떠올리며,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라며 머릿 속으로 수차례 되뇌인다. 하지만 그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가. 환자가 원하면 하는거고, 또 위에서 하라면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 꼬꼬마 친구들의 불쌍한 신세 아니겠는가. 

 찢어진 장갑 이외에 관장과 관련된 악몽같은 사건이 또 하나 있다. 때는 바햐흐로 병원실습생 시절, 뇌경색을 앓았던 환자였는데 수일동안 변을 보지 못했다며 병원 응급실을 찾아온 환자가 한명 있었다. 얼마 뒤 응급실 당직 학생의사였던 우리에게 손가락 관장을 하라는 윗선의 지시가 떨어졌다. 당직을 마치고 인계할 시점에 환자가 찾아왔던지라 모른채 하고 그냥 집에 가려했으나, 뒷턴이 관장을 한번도 안해봤다며 시범을 보여달라고 통사정하며 부탁했다. 측은한 마음에 방법만 알려주고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여느 때와 다음없이 장갑을 착용하고 멋지게 윤활제를 바른 뒤 손가락을 환자의 똥구멍 속으로 투입시켰다. 하지만 딱딱한 똥이 나올꺼라는 내 예상과 다르게 첫 손가락을 빼내는 순간 'ㅁㄴ어;미엄;ㅣ어;미어;미암/,ㅇ/ㅁ.' 하는 비명과 함께 금빛의 질퍽한 똥들이 나를 향해 튀었다. 당연히 나의 하이얀 실습 가운은 똥범벅이 되어버렸고, 응급실 전역에는 똥냄새가 진동을 했다. 

 가운과 바지는 짜장범벅으로 물들었고, 환자 보호자는 옆에서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도움을 요청했던 동료 역시 살며시 고개를 돌릴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내 보호자에게 몇가지를 물었더니, 왜 그런 상황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환자는 변비를 주소로 삼십분전에 작은 병원 응급실에서 관장을 했는데, 증상 호전이 없어 대학병원 응급실로 전원되어 온 것이었다. 당연히 미처나오지 못한 관장액이 아직 장 속에 남아있었고, 액과 똥이 섞인 그 내용물은 손가락이 길을 터주자 폭발하듯이 밖으로 쏟아져나온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때 응급실 인턴 선생은 관장을 이미 삽십분 전에 시행받았던 환자에게 왜 재차 관장 오더를 냈던 것일까? 그것도 손가락으로. 똥사건이 터지고 당시 그 선생은 관장 오더를 낸 것 때문에 윗년차한테 박살이 났다는 것 외에는 다른 기억이 남아 있지 않다. 차트도 관심을 갖고 보지 않았기에 그 인턴 선생이 왜 그러한 판단을 했는지 아직도 정확한 그 이유는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분명 그 오더는 중대한 실수였다는 점이다.     

 병원실습과 인턴 시절을 보내며 적지않은 손가락 관장을 해왔고, 이제 주치의가 되면 아마 그 영광스러운 작업은 후배들에게 넘겨지게 될 것이다. 방송을 듣다가 그 때의 추억이 불현듯 생각나서 장난스럽게 몇자 적어보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손가락 관장만큼이나 보람찬 일도 없었던 것 같다. 내가 몇분만 땀흘려 고생하면 환자는 수일간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나니, 이 얼마나 판타스틱하고 엘라스틱한 일인가. 특히나 미션을 완수한 뒤 환자나 보호자가 건네는 감사의 인사는 마치 힘들게 산을 오른 뒤에 마시는 약수처럼 시원하고 기분 좋다. 이런 저런 추억 때문에 손가락 관장은 아마 의사생활을 하면서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다시 해보라고 한다면 손사레를 칠 것 같은 기분은 왜일까. 링딩동 딩딩동 디기딩딩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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