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죽은 고양이를 거둬주다.
게시물ID : freeboard_4670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베어씨의식량
추천 : 3
조회수 : 55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0/10/10 07:00:23
새벽 네시, 좋아하는 사람과 종로 가는 택시를 잡으려 도로변에 서있었어요. 차가 오는 방향을 무심히 보고 있으려니, 도로 위에 거뭇한 

형체가 눈에 띄더래요. 

 

여자친구 : 저게 뭐지?  나: 비닐봉지 같은데?  여자친구 : 고양이 아니야? 동물같아 나:동물? 함 확인해볼까.

 

그 거뭇한 형체에게 다가갈수록 

 

형체가 가진 질감과, 생명이 빠져나간 흔적들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더군요.

 

 내가 다가가는 순간에도 차 한대가 무심히 형체를 밟고 지나갔습니다.

 

 

 

고양이.

 

검은 바탕에 흰 양말을 신은 멋진 턱시도 고양이였는데, 도로 한가운데 죽어있었어요.

 

순간 웃기게도 있잖아요. 

 

막 화가 나는거예요.
 
이 대로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몇명이고, 저걸 본 사람이 몇명이나 될텐데 아무도 저 고양이를 도로에서 치울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고.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어요. 난 그때 술에 취하지도 않았었고,환각성분이 있는 진통제를 먹지도 않았고, 저녁 8시부터 새벽 두시까지 계속

 

된 미팅에 약간 지쳐있긴 했지만요.

 

아나 이런 씨발 비슷한 소리를 하면서 웃옷을 벗어서 한쪽에 개켜두고 쓰레기더미에서 스티로폼 상자와 빈 비닐봉지를 주워들었어요.

 

여자친구는 뭐라 말하지도 못하고 내 팔뚝만 잡아끌면서 xx아 xx아 하고 내이름만 계속 부르고 있고. 

 

도로에 죽어있는 고양이에게 가서 비닐봉지로 고양이 몸체를 잡고 스티로폼 상자에 조심조심 옮겨담았어요. 그리고 쓰레기더미가 쌓여있

 

는 전봇대 한켠에 옮겨주었어요. 맘같아선 묻어주고 싶었지만 나머지는 환경미화 하시는 분들께 맡기는게 최선인거 같기도 했고요.

 

 

 

한낱 미물이라도 죽어서까지 도로위에서 타이어에 머리통을 밟혀가며 몇번이나 죽을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좀 웃기는거지만, 6년동안 만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화내는 모습을 처음 봤다는거고.

 

 

스티로폼 상자 뚜껑을 반정도 닫아두고 가는길 인사해줬어요. 극락왕생 하라고. 

 

 

 

 뭘 도둑고양이일텐데 그런거에 신경쓰느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근데 있잖아요. 불쌍하잖아요.
 
도로위에서 타이어에 몇번이나 밟히고 있는걸 어 고양이네 헐 피 흐르는거봐 이러고 지나가기에는 그 모습이 

 

너무 불쌍하잖아요.

 

 

고양이가 문제가 아니었어요.

 

 

거기에 무엇이 있었던지간에 그런꼴을 당하고 있었으면 똑같이 행동했을거예요. 그게 아바마마랑 싸우고 집나온 투투 아들이건 눈먼 돌고

래건간에 말이죠.

 

 고양이가 어떻고 저떻고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게 아니예요.

 

 

 

 

 인간적인 감정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어요.


누구라도 자기가 그런꼴로 누워있다면 누군가가 거둬주길 바랄텐데.. 

 

 

 

 

그날 ,좋아하는 사람이 내 팔베게를 베고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어요.

 

 이런저런 수긍이 가면서도 아쉬움을 많이 느꼈던건,선의를 행하고자 하는 사람도

 

 죽음이 가진 특유의 공포심,초월감과 더불어 막상 진짜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할수가 없더래요.

 

이어서 그 사람은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역시나 자기 힘으로 아무것도 할수 없었던-를 하다 결국 울음을 터뜨렸어요.

 

 선행과 용기를 말하는 가르침은 쉽게 나오기 어렵더라는것, 그리고 자기 대신 일을 해줘서 고맙다고, 울먹거리며 왼손을 올려 내 심장에 

 

갖다대고는, 그리고 나는 그 사람의 귓가에 입술을 대고 한참동안 심장박동을 들으며 서로를 위로했어요. 

 

 

 

잘가 고양아. 

 

 

 

 

 

저 잘한거죠?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