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일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부모님이 싸울 때 엄마가 했던 그 말은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4학년? 5학년 때였나.
"쟨 여자아이라서 브라자에 생리대에 돈이 많이 든다."
결국은 돈 때문에 싸우는 거였는데, 난 엄마의 저 말을 듣고 내가 여자라는 것 자체에 깊은 절망을 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부모님이 싸울 때마다 꼭 나때문인 것만 같았고, 그건 이후의 많은 일에도 영향을 끼쳤다.
꼭 내 잘못이 아닌 일에도, 나때문이야, 내가 이렇게만 안 했으면... 하는 자책이 계속해서 들었다.
부모님은 결국 이혼을 했고, 그때 난 매일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여기저기 자해를 하며 기분을 가라앉히곤 했다.
이혼마저 나 때문인 것 같았고, 매일매일이 보랏빛이었다. 죽음이 가깝다고 느꼈다.
지금은 자해도 하지 않고 나름 행복하다. 그러나 엄마는 여전히 내게 미움과 원망, 애정이 뒤섞인 묘한 사람이다.
난 아직도 엄마를 원망한다. 엄마는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인 적이 없고, 내 생각을 물어본 적이 없다.
난 그냥 그 한마디가 듣고 싶었을 뿐이다.
"ㅇㅇ야. 넌 아무 잘못이 없어. 엄마 아빠가 이혼하고, 이렇게 힘들어하는 건 결코 너 때문이 아니야."
난 그냥 그 말 한마디가 듣고 싶었다.
고민게시판엔 가끔 자존감이 낮은 이들이 많이 보인다.
아마 원인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어떤 일에든 스스로를 책망하는 그 마음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그렇게 괴로워하고 자책하지 말아요. 당신은 할 만큼 했어요.
친구로부터 저 말을 들었을 때야 비로소 구원받은 느낌이 들었다.
필요로 하는 이에게는 백번이고 천번이고 해주고 싶다.
힘들어하는 이들 하나하나 손 잡아주고 자책감을 덜어내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세상은 원하는 대로만 굴러가지 않는다. 가끔 남보다 먼 혈육도 있다. 가족이기에 더 심한 상처를 입힐 수 있다.
그래도 당신은 살아야 하고, 웃어야 한다.
당신은 아무 잘못도 없어요. 이제 그만 웃어봐요. 일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