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비비는 〈고성오광대〉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로, 탈춤판에서 ‘호드기’를 불어 ‘비비’하는 소리를 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비비는 신체적으로는 호랑이, 혹은 표범과 같은 형상이지만 몸의 문양은 용이나 큰 생선의 비늘과 유사한 것이 그려져 있고, 얼굴에는 검고 붉고 푸른 색으로 된 흉측한 문양이 그려져 있다. 또 두 개의 뿔과 날카로운 송곳니를 지니고 있어서 전체적으로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짐승의 형태를 지녔다. 비비는 지금까지 99명의 양반을 잡아먹었는데 100명의 양반을 잡아먹으면 하늘로 승천할 수 있기에 마지막 한 명의 양반을 잡아먹기 위해 사납게 달려든다. 흔히 100은 아주 많은 수를 의미하기에 비비가 99명의 양반을 잡아 먹었다는 것은 상당히 많은 수의 양반을 먹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고, 그만큼 비비에게 양반은 강력한 적대세력이며 징치의 대상임을 알 수 있다. 양반은 민중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두려운 존재이기에 민중은 양반을 처벌하기 위해 더욱 가공할만한 존재로서의 비비를 상상적으로 꾸며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원텍스트 요약
〈고성오광대〉는 총 5개의 과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과장은 문둥 광대가 북춤을 추고 퇴장한다. 제2과장에서는 양반의 역을 맡고 있는 오광대가 등장해 그들의 종인 말뚝이와 대결을 벌인다. 제3과장에서는 파계승놀이가 진행된다. 중 둘과 각시 둘이 나와 대사 없이 춤을 준다. 제4과장에서는 상상의 동물인 비비가 등장해서 오광대 양반을 잡아먹는다. 제5과장에서는 영감과 큰어미(처), 제밀주(첩)이 등장해서 일부처첩(一夫妻妾)을 보이며, 결국에는 큰어미가 죽어 상여가 나간다.
출처 : 정상박〈고성오광대 대사〉《국어국문학》22 국어국문학회 1963.
작품의 분석 및 상징적 의미
초계 밤마리 장터에서 대광대패들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오광대놀이는 점차 각지에 전해져 의령, 진주, 산청, 창원, 통영, 고성, 진동, 김해 등지에 분포되었고, 해로(海路)를 통해 수영, 동래, 부산진 등지로 퍼져서 야류(野遊)라고 불렸다.
이같이 오광대와 야유는 거의 경상남도 내륙과 해안일대의 각지에 분포되었으나 이 놀이를 받아들인 연대와 경로는 제각기 다르다. 경상우도(慶尙右道)에서의 오광대가 전문연예인들에 의해 연희된 도시의 가면극이라면 주로 경상좌도(慶尙左道)에 분포된 야류는 들놀음으로서 비직업적인 연희자들, 즉 마을 사람들에 의해 토착화된 놀이이다.
오광대'란 다섯 광대 또는 다섯 마당으로 이루어진 놀이라는 뜻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도 하고, 오행설(五行說)에서 유래된 오(五)에서 온 것이라고도 하는데, 오행설 의견이 유력하다. 전에는 정월 대보름을 중심으로 행해졌으나 현재는 봄, 가을에 오락적인 놀이로 공연되고 있다. 그 주제는 산대도감계통극(山臺道監系統劇)으로서의 공통성을 지니고 있어 말뚝이의 양반에 대한 조롱이 매우 심하다. 파계승에 대한 풍자는 아직 이 지역에 널리 불교신앙이 남아 있어서인지 약한 편이다.
〈고성오광대〉는 1910년경에 남촌파(南村派) 서민들이 〈통영오광대〉를 보고 배우면서 시작되었고, 그 뒤에 〈창원오광대〉의 영향을 받으면서 오늘날과 같은 탈놀이로 성장한 것으로 생각된다. 초기에 〈통영오광대〉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현재는 〈통영오광대〉에 비해 보다 더 고형(古型)에 가깝다. 〈고성오광대〉는 다음과 같이 총 5개 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과장 문둥이춤
제2과장 오광대춤
제3과장 중춤
제4과장 비비춤
제5과장 제밀주춤
등장인물은 문둥이, 말뚝이, 원양반, ․청제양반, 적제양반, 백제양반, 흑제양반, 홍백양반,종가도령, 비비, 비비양반, 중, 각시, 영감, 할미, 제밀주, 마당쇠 등 총 19명이다.
〈고성오광대〉 놀이의 내용은 민중의 삶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으며 양반과 파계승에 대한 풍자, 그리고 처와 첩의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 말뚝이의 양반에 대한 조롱이 매우 신랄하지만 파계승에 대한 풍자는 아직 이 지역에 불교신앙이 남아 있어서인지 약한 편이다. 〈고성오광대〉는 다른 지방의 오광대에 비해 놀이의 앞뒤에 오방신장춤, 사자춤 같은 귀신 쫓는 의식춤이 없고, 극채색(極彩色)을 많이 쓰며 오락성이 강한 놀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고성오광대〉의 비비과장에 나타나는 단락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양반이 괴상한 비비를 만나 정체를 물으니, 자신은 무엇이라도 잡아먹는 존재라고 대답하면서 양반을 잡아먹기 위해 덤빈다.
(2) 양반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비비에게 늑대, 호랑이, 말, 소도 먹느냐고 묻자 비비는 다 잘 먹는다고 대답한다.
(3) 다급해진 양반이 자신은 지체 높은 양반이라고 해자, 비비는 양반은 더 맛있다고 하면서 잡아먹겠다고 한다.
(4) 양반과 비비가 대결하다가 함께 어울려서 춤을 추며 퇴장한다.
비비는 오광대 이외의 가면극에서는 용례가 보이지 않아 정확히 규정할 수 없으나 대사를 통해 용과 호랑이의 모습을 하고 “하늘에서 내려와 무엇이든지 잡아먹는 무서운 상상 동물” 정도로 추론해 볼 수 있다. 비비는 호드기를 입에 대고 ‘비비’ 소리를 내면서 양반을 위협하기 때문에 ‘비비’ 또는 ‘비비새’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비비는 얼굴의 볼과 이마 등에 검붉고 푸른 선들이 흉측한 문양으로 그려져 있는데 용이나 생선의 비늘 모양이 연상되기도 한다. 또 송곳니가 강조되어 있고 뿔이 있다는 점에서는 도깨비의 모습도 느껴지며 신체는 호랑이와 유사하다.
비비는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양반을 벌주러 나온 신성한 동물이다. 비비와 유사한 상상의 동물로는〈통영오광대〉의 영노가 있다. 영노는 천상에 득죄하여 잠시 인간 세계에 내려온 존재로, 양반 아흔 아홉 명을 잡아먹고 하나만 더 잡아먹으면 득천하게 된다고 한다. 영노가 양반을 잡아먹기 위해 달려들자, 다급해진 양반은 자기 자신이 양반이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똥, 개, 돼지, 소, 쐐기, 구렁이 등으로 둘러댄다. 그러므로 영노가 양반의 정체를 계속 반복해 확인하는 내용이 전개됨에 따라서, 양반의 권위와 체통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호랑이를 포함해 무엇이든지 먹고, 양반은 더 맛있게 먹는다는 점에서 비비와 영노는 동일한 존재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형상은 크게 차이가 나서 비비와 달리 영노는 그 탈과 몸체가 사자와 닮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타락한 양반을 징치할 존재를 갈구하던 민중의 의식으로부터 창조된 상상의 동물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속성을 지닌 존재로 볼 수 있다.
고성오광대
제 4 과장
비비(호랑이와 용, 도깨비의 형상이 혼합된 상상의 동물)가 보자기를 둘러쓰고 등장하여, 젓양반 이외의 등장 인물에게 한 사람씩 손가락으로 찌는 시늉을 하면서 ‘비비’ 소리를 내면, 모두 깜짝 놀라 ‘이게 무엇이냐?’ 하면서 차례로 퇴장한다.
비비 : (젓광대 주위를 왔다 갔다 하다가 가까이 가서, 손가락으로 찌르는 시늉을 하면서 ‘비비’하고 소리를 지르면 깜짝 놀라서 부채를 떨어뜨린다.)
젓양반 : (떨어뜨린 부채를 주우려고 허리를 굽힌다.)
비비 : (다시 ‘비비’,하고 소리를 내며 달려든다.)
젓양반 : (놀라서 허리를 폈다가 비비가 한 쪽으로 가는 것을 보고 다시 살금살금 허리를 굽히어 부채를 주우려고 하자, 또 비비가 손가락으로 찌르는 시늉을 하면서 ‘비비’소리를 지르며 젓양반 앞으로 왈칵 달려드니 젓양반이 넘어진다. 왼 손을 다친 시늉을 하면서 일어나서 오른 손으로 주머니에서 침을 내어 왼 손을 놓은 뒤, 손을 흔들어 나았다는 몸짓을 하고, 두 팔을 둥둥 걷어 올린다.) 내 죽을 각오니, 어디 한 번 해보자. (지팡이를 이리저리 흔들다가) 내가 인제 살았으니 이놈 근본이나 좀 알아보자. (비비 곁으로 다가 간다.) 이거 짐승은 짐승인데 말을 하는가 보네. 네가 무엇이냐?
비비 : 내가 비비다.
젓양반 : 아따 이놈이 말을 하는구나. 어데서 무엇 먹고 살았느냐?
비비 : 경기도(京畿道) 삼각산(三角山)서 너 같은 양반 구십 구명 잡아 먹고 너를 먹으면 백 명이라. 내가 양반 백명을 잡아 먹으면 하늘로 승천할 수 있다.
젓양반 : 아따 이놈 참 겁난다. 다른 것은 못 먹나?
비비 : 오만 것 다 잘 먹는다.
젓양반 : 그러면 늑대도 잘 먹나?
비비 : 잘 먹지.
젓양반 : 호랑이도 먹을 줄 아나?
비비 : 잘 먹지.
젓양반 : 말도 먹나?
비비 : 말도 먹는다.
젓양반 : 소도 먹나?
비비 : 소도 먹지.
젓양반 : 개도 먹나?
비비 : 그것은 더 잘 먹고, 치도 잘 먹는다.
젓양반 : 치치치치. (생각을 더듬는다.) 옳다. 멸치, 갈치, 공치, 물치, 참치, 송치도 잘 먹나?
비비 : 그것은 더 잘 먹는다.
젓양반 : 그러면 육산(陸産)고기도 잘 먹나?
비비 : 잘 먹지.
젓양반 : 나 양반이다.
비비 : 양반은 더 잘 먹는다.
젓양반 : 네가 아무리 그래도 네 할아버지는 못 먹겠지? 내가 네 할아버지다.
비비 : 예끼순. (양반에게 왈칵 달려든다.)
젓양반 : (피한다.) 비비 촐촐 둥둥 캥캥. (흥청거리며 굿거리 장단이 나온다. 이 음악에 맞추어 젓양반과 비비가 어울리어 한바탕 덧배기춤을 추다가, 제밀지(기생첩)가 나오면 젓양반과 비비는 퇴장한다.
※〈고성오광대 탈놀이〉는 총 5과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에서는 비비가 등장하는 제4과장의 대사만을 수록, 개작했다
참고문헌
심상교 《고성오광대》 화산문화 2000.
이애경 〈등장인물로 본 탈춤의 변천사〉 《동대논총》18 동덕여자대학교 1988.
전경욱 《한국가면극 그 역사와 원리》 열화당 1998.
정상박 〈고성오광대 대사 〉 《국어국문학》22 국어국문학회 1963.
정상박 〈오광대와 들놀음 연구-대사 분석을 중심으로〉 《동아논총》20 1983.
비비님 무서운 분이셨어...ㅠㅠ
출처 : Kocca 문화콘텐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