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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 자살의 명소 -8부-
게시물ID : panic_468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숏다리코뿔소
추천 : 8
조회수 : 2359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05/03 19:24:14




넙치는 발을 들어 발바닥을 편의점 문으로 냅다 질렀다. 유리는 펑하고 폭발음을 내며 와르르 주저앉았다. 무식한 놈. 정강이로 떨어진 유리 조각에 분명 얻어맞아 놓고도 태연하기만 하다. 달려가 넙치를 말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발작을 띄니 수연이 내 팔을 부여잡았다. 돌아보자 수연은 말도 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잔뜩 겁을 집어 먹은 표정이 수연을 예전의 모습으로 돌려놓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한 발을 다시 띄니 수연이 매달려 왔다. 넙치는 정안의 언니 머리 위로 발을 높게 들었다. 한 번 내려찍기 시작하면 흥분은 최고조에 이를 것이다. 그때는 말리다 맞아 죽으리라. 저 괴물 같은 놈에게.

“놔 좀!”

수연이 주저앉아 온 몸으로 나를 당기고 있다. 나도 모르게 반말을 했다.

“가면 너 맞아 죽어!”
“안가면 저 여잔 정말로 맞아 죽어!”

순간 힘으로 잽싸게 수연을 뿌리쳤다. 수연은 내게 끌어 당겨져 앞으로 몸이 꼬꾸라졌다.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넙치에게 달려가 어깨를 부여잡았다. 몸이 철덩이 같다. 내 깐에는 힘껏 넙치를 뒤로 당겼지만, 넙치는 슬쩍 미동만 했다. 살려야 돼. 그런데 왜?

“이 씨발!! 너 누구 장사 망치려고 작정했어?”

내 고함에 넙치가 나를 돌아봤다. 계속해서 험상 굳은 얼굴을 하던 접치가 대뜸 환하게 웃었다.

“뭐야? 에이스의 귀환이야?”

에이스의 귀환. 그렇게 표현하지 마라. 꼭 내가 사람 죽이는…….

“사람 죽이는 브로커. 요즘 니가 일을 안 하니까, 섬 수입 반의 반 토막이 날아갔어. 사분지 일이야. 알아?”

넙치가 여자를 버려둔 채 나를 향해 돌아섰다. 주저앉은 정안의 언니는 핸드폰을 떨군 채 정신을 잃은 듯 땅에 시선을 박았다. 죽음을 감지한 것일까. 이빨이 훤히 들어난 짐승에게 물어 뜯겨 죽을 예감을.

“이제 장사 할 거야. 다시 오픈하고 첫 손님이니까, 코 빠트리지 마.”
“왜? 따따블로 죽여서 친척의 친구의 친구까지 다 불러 모아야지. 너답게.”

넙치가 내 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곤 뺨을 살살 어루만지며 말을 계속이었다. 소름이 끼친다. 차라리 때리고 싶다면 때려라. 그편이 속 편하다.

“내 말이 틀린가? 너처럼 장사 수완 좋은 브로커가 어디에 있어? 너 이 여자랑 무슨 관계야? 왜 게거품 물고 말리는 거야?”
“그래! 누구야!”

뜬금없이 수연이 뒤에서 소릴 쳤다. 좀 전에 넘어지며 손바닥을 찧었는지 손을 떨고 있었다. 떨림을 따라서 핏방울이 떨어졌다. 넙치에게도 온통 잔 상처가 빗발처럼 남아 있다. 정안의 언니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손님이야. 내 스타일대로 장사하게 내버려 둬. 나도 내 페이스 조절이 필요해.”
“무슨 소리야? 너 같은 천재가 어디 있다고 페이스 조절을 해? 살아서 돌아가려는 사람도 설득해서 죽여 버리는 새끼잖아. 너는.”

아버지의 말이 뇌리를 스쳤다.

‘사람은 언젠가 결국 죽는다. 철민이 너도 마찬가지야.’

너무 어려서부터 그 말을 듣고 자랐다. 그 말은 신념과도 같았다. 내 가치관. 어차피 언제가 죽을 거라면, 우리 섬에서 죽어.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설득할 마음도 없었다. 내 가치관이 옮아버린 사람이 있었을 뿐. 그 뿐이라 변명하고 싶다. 나도 그냥 들은 말을 전한거야. 죽는다고 했지 죽으라고 한 적은 없어….

그 여름. 그 여자가 찾아왔던 여름. 그녀는 배가 남산만 했고, 혼자였고, 쓸쓸해했다. 그녀도 남들처럼 인생의 종지부를 이 섬에서 찍으려 했다. 우리 여관에 묵었다. 내가 접객했고, 내가 섬을 안내했다. 아버지가 새운 정자 여정으로 안내한 것도 나였다. 정자 앞 절벽 끝에 선 그녀가 물었었다.

“연옥이란 걸 믿어요?”

연옥? 연옥은 물론 천국도 믿지 않는다. 지옥? 믿으려 노력할 필요 없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야 말로 지옥문 앞이라 생각했다.

“저는 종교적인 믿음은 없어요.”

대답하니, 여자는 불룩한 배를 내려다보았다. 절벽으로 바람이 거셌다. 시원한 바람이었다. 다만 머리칼을 어지르는 것이 귀찮았다. 여자도 그렇다는 듯 몇 번이나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없나요.”

무엇에 대한 ‘없나요’ 인지 알 수 없었다. 연옥이 없나요? 믿음이 없나요? 여자는 해질녘까지 정자에 머물렀다. 자살객에게 개인적인 의견을 내놓는 일을 하지 않았다. 내가 말려 살아간들 나는 그 죽고 싶었던 삶을 이어가는 데에 책임이 없다. 내가 말리지 않아 죽는다면, 그것은 본인의 선택이다.
그녀 같은 손님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그녀는 삶을 다시 살아보기로 마음먹었었다. 손님을 잃는 다는 아쉬움은 없었다. 살아 돌아간다는 홀가분함도 없었다. 잘 가세요. 잘 살아요. 하는 것도 웃긴 일이다. 섬의 항구까지 짐을 운반해 주었었고, 그녀가 악수를 청해 악수도 하였다. 악수. 이별의 악수? 아니면 감사? 덤덤히 악수를 끝냈을 때. 그 말을 왜 했는지 나도 모른다. 처음으로 해본 손님과의 악수 때문이었을까. 괜히 감상에 젖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언젠가 결국 죽어요.”
“…………….”

그녀는 답이 없었다. 그녀가 다시 섬으로 찾아왔다는 건 K 아주머니에게 전해 들었다. K 아주머니의 통곡이 화장터 연기만큼 온 섬에 자욱히 퍼졌다.

“그 때 그 아가씨, 다시 왔었어.”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죽었다는 그 배불뚝이 여인을 잊지 못한다. 사람은 언젠가 결국 죽어요. 이유도 없이 꺼낸 말이었다. 괜히 그냥 해본 말이었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을까. 그날 파도의 높이도 떠오르고, 그녀의 치마폭 넓은 꽃무늬 썬 드레스도 기억나고, 그 때 그 악수의 따뜻한 감촉도 기억난다. 근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는 무슨 뜻으로 아버지의 말을 꺼냈을까. 언젠가 죽으니까 젖 먹던 힘까지 열심히 살아요. 말하고 싶었었나. 아니면 어차피 돌아가도 죽고 싶을 거 에요. 그냥 지금 죽으세요. 말하고 싶었었나.
K아주머니가 화장터를 떠나는 길목. K아주머니 뒤로 주르륵 유가족 들이 걷고 있었다. 개중에 얼굴이 납작 넙데데한 사람이 가장 뒤에서 걷고 있었다. 그는 키가 작고 다부졌다. 온 몸이 근육 덩어리 같았다. 그가 내 시선을 눈치 채곤 내 앞에서 멈춰 섰었다. 분명 내 기억에 그의 코 밑 칼자국이 움찔 거렸던 것 같다. 그가 물었었다.

“혹시, 당신이 철민이요?”

넙치가 움직였다. 편의점 깨진 유리들이 넙치 발밑에 바스락거렸다. 수연이 뛰어 들어왔다. 수연은 넙치에게 넙죽 무릎을 꿇어 매달리며 호소했다.

“오빠! 이제 그만해요. 수리비 안 받을게! 오빠!”
“안 해. 담배나 하나 줘봐. 우리 에이스가 장사한다는데 방해하면 쓰나.”

수연이 카운터를 미친 여자처럼 뒤적였다. 수연은 넙치가 피우는 말보로 레드를 보루 채 꺼내 들어 내밀었다.

“하나만 줘.”
“다! 다가저가! 괜찮아!”

수연이 얼른 넙치를 쫓고 싶어 하는 게 눈에 훤했다. 넙치는 흣 하고 코웃음을 치곤 편의점을 나섰다. 저만치 걷던 넙치가 소리쳤다.

“나는 이 섬을 사랑해! 철민이 덕분이여!”

 

 

-8부끝  9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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