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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 산문 - 툭. 툭.
게시물ID : readers_46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천랑무적
추천 : 2
조회수 : 329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2/12/02 00:03:17


제목 -  툭.  툭.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눈빛으로...

회색빛 하늘에서 툭 툭 함박눈이 그녀의 머리 위로, 어깨 위로 소리 없이 쌓이고 있었다.


"애들 기다리겠다. 어서 들어가자."


친한 친구들끼리 오랜만에 모인 자리였다. 3년이나 지났으니 이제 서로에 대한 감정을 잘 추스렸겠거니 하면서

우리 둘을 불러냈겠지. 하긴... 우리가 연인이었던 시절 보다 친구였던 때가 훨씬 길었으니까.

이제는 술 한잔 하면서 안주거리 삼아 웃으면서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했겠지. 

그 때는 꽤 심각하고 꽤 아팠던 순간이지만 지금쯤이면 추억일 뿐일테니까.

그렇게 우리들은 다시 한번 우정으로 뭉쳤던 그립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오기 싫었지만 용기 내서 나와봤던 건데. 

이 자리에 그녀도 나올 줄 알고 있었더라면 나는 나오지 않았을 텐데.

아니 사실, 친구 녀석이 그녀는 절대 나오지 않을 거라며 나를 억지로 안심시키려 할때 부터,

나는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못이기는 척 그냥 속아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반가운 얼굴들 사이에 앉아있는 그녀를 보았을 때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심장이 툭 툭 뛴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내 시선은 그녀를 좇고 있었다.

내가 여기 왜 나왔을까 하는 후회와 그래도 나오길 잘했다는 안심이 묘하게 섞여서 가슴 한 켠이 아려온다.


그동안 그녀는 잘 지내고 있었는가보다. 한 두잔 들어간 술 때문인가 두 뺨에 홍조를 띄고 까르르 까르르 잘도 웃는다.

나는 종종 친구들의 농담을 못들어 웃는 타이밍을 놓치곤 하는데,

그녀는 내가 여기에 앉아있는 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까르르 까르르 잘도 웃고 있다.


오랜만에 찾아 온 반가움에 우리는 그 간 밀린 이야기들을 술자리에 툭 툭 던지듯 내려놓는다.

하하 호호 깔깔 깔깔 무르익는 분위기 속에 나도 어느새 그녀를 잊어갈 때 쯤 

기차의 종착역 처럼, 끝이 정해진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드디어 우리 이야기가 나와버렸다.

어색하게 웃던 나도 굳었고 까르르 잘도 웃던 그녀도 표정이 굳었다. 분위기도 굳었다.


'어? 담배가 다 떨어졌네. 나 담배 좀 사가지고 올게.'


무거운 공기가 싫어서 담배가 없다는 핑계로 밖에 나왔다. 눈이 얼마나 많이 내리는지 밖은 어느새 온통 하얀 세상이었다.

갑자기 정말로 담배 한 대가 목말랐다. 담배 끊은지도 벌써 3년째인데 아직도 잊을만 하면 담배 생각이 난다.

그녀가 그렇게 질색하며 싫다는 담배를, 그녀가 곁에 없고 나서야 끊게 되었다. 담배를 끊으면 다시 돌아와 줄 것도 아닌데.


툭.


뭔가가 날아와 등에 닿았다. 뒤를 돌아보니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들어가자니까... 춥다. 그러다 감기 걸릴라..."


내 말을 들은 채 만 채, 그녀는 바닥에 쌓인 눈을 모아 눈덩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장갑을 끼지 않은 채로 눈을 만지다 보니 손이 어느새 뻘겋게 달아올랐다.


"손 시렵겠다. 그러다 동상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


툭.


이상하다. 세게 던진 것도 아닌데, 그게 무척이나 아팠다. 너무 아파서 숨 쉬기 곤란할만큼.

또 눈덩이가 하나 날아왔다.


툭.


참 이상하다. 그녀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데 나는 그녀의 말이 전부 들린다.

또 날아온다.


툭.


그녀의 말이, 그녀의 마음이 아프게 날아온다.

그녀에게 한 걸음 내딛었다. 다시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툭.


나는 눈덩이를 던지려던 그녀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기운이 내 손으로 전해져 왔다.


"아이~ 이것 봐. 손이 얼음장이잖아. 이러다 손 망가지면 어쩔거야~. 손가락 동상 걸리면 나중에 늙어서도 고생한다고."


나는 그녀의 머리와 어깨 위에 쌓인 눈을 툭 툭 털어냈다.

그 와중에도 나는 한쪽 손으로 그녀의 손을 꽉 붙들고 놓치 않았다.


"희진이가 아이스크림 먹고 싶데."


"뭐?"


3년만에 듣는 목소리. 술집의 시끄러운 소음에 가려진게 아닌 그녀의 툭 툭 대는 목소리.

하하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았네.


"아니, 걔는 이 겨울에 뭔 아이스크림이래?"


"몰라. 술 취해서 나보고 사오라고 막 등 떠미는 데 어떡해 그럼."


나는 슬그머니 그녀의 손을 내 주머니로 넣으면서 말했다. 그녀도 괜히 모른 척하면서 손을 빼지 않는다.


"자~, 편의점이 어디었더라? 이쪽이었지 아마?"


"근데 너 아직도 담배 못끊고 그러고 있냐?"


"뭐어? 아... 아하하... 그.. 그게...."


툭 툭 거리면서도 맞잡은 내 손을 힘주어 잡는게 느껴진다.


눈 쌓인 거리 위로 나란히 이어지는 우리 두 사람의 발자욱이


하나 둘 툭 툭 늘어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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