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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게 탄생을 축하하며 옛날 제글 하나 올립니다- BA349나터르 스토리
게시물ID : military2_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초롱이아빠7
추천 : 12
조회수 : 684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6/08/31 01:3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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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진정한 밀리터리 게시판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그런 의미로 옛날에 제가 작성했던 글을 조금 손 봐서 다 올려봅니다.

어차피 오유에는 처음이고...인터넷으로는 15년전 쯤 디시 밀게에 올렸던 글인지라....^^

제가 가장 좋아했던 2차대전 독일의 삽질 비밀무기중 하나인 BA349 나터르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그럼 시작 해 볼까요?


디시에도 올려보긴 했느데...
전 개인적으로 BA 349 Natter을 좋아합니다.
ㅋㅋㅋ
심플하고 군더기 없고 딱 필요한 것만 갖추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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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hem BA349 Natter(File NO.01)

"폰 브라운의 컨셉에서 힌트 얻어 탄생"

2차대전당시 독일의 과학자들은 새로운 공격용 비밀병기를 만들어 내기위해 꾸준한 연구를 계속했다. 그 중에서도 BA349 Natter(나터르=독사란 의미의 독일어)는 규모가 제법 큰 기발한 항공기였다. 

1944년 8월 1일 독일공군 병기개발부장 크네마이어 소령은 상부로부터 한 가지 과제를 받았다. 당시 연합군의 폭격기는 독일을 맹폭격하고 있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새로운 대책을 강구해야만 했다. 크네마이어 소령의 과제는 적의 공중에서 때려 부술 수 있는 병기를 만들라는 것 이었다. 이것에는 비용이 덜 들고 손쉽게 만들 수 있으며 동시에 충분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이만저만 무리한 조건이 아니었지만 크네마이어는 이 목적에 들어맞을 병기의 설계도를 깡그리 모아 검토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발탁 된 것이 바로 ‘나터르’였다. 사실 나터르는 1939년, 로켓의 선구자인 폰 브라운 박사가 로켓 요격기로 구상한 것이 시초가 됐다. 

당시로는 이미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수직발사대에서 발사한다는 구상이었지만 독일공군에게 퇴짜 맞은 아이디어였다. 

나터르의 기본 아이디어는 간단했다. 우선 로켓 추진식으로 음속에 가까운 속력을 내는 비행기를 만들어 여기에 로켓탄을 장비한다. 이어 적의 폭격기 편대의 진로에 로켓탄을 일제히 발사하고서 조종사는 낙하산으로 탈출, 기체도 낙하산으로 회수한다는 구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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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hem BA349 Natter(File NO.02)

"초기 발주량은 200기", "일본도 라이센스 생산 고려"

1944년 끝 무렵, 뮌헨에서 서쪽으로 130km 떨어진 바르트제에 있는 바히엠 공장에서 나터르의 연구가 시작됐다. 종전까지 이 공장은 SS 친위대로부터 150대, 공군으로부터 50대 이상의 나터르의 주문을 받았다. 수량으로 추측컨데 아무래도 본격적인 요격기로 인정해 채택 했다기보다는 일단 사용해보고 쓸만하면 더 주문하겠다는 심산이 강했던 셈이다. 

설계기사들은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전문팀을 만들었다. 크네마이어 소령 이외에 피젤라 비행기제조회사의 기술고문이었던 바히헴과 도르니에사에서 일하던 기술자인 네덜란드인 보테다가 있었다. 이후 바히헴의 공장은 해산됐지만 바히헴은 그대로 바르트제에 머물렀고 보테다는 이 나터르의 4기종 중 1기와 함께 장크트 레온하르트라는 곳으로 옮겼다. 

이것이 1945년 5월, 즉 종전 때였다. 보테다는 이곳에서 미군에게 잡혀 그 결과 나터르의 진상이 환히 드러났다.

보테다에 따르면 나터르계획을 위해 일한 사람은 전체 300여명, 그중에서 60여명이 기술자였다. 나터르는 자재와 숙련노동자가 무척 부족했기 때문에 원료의 질이 나쁘고 병기로써의 내구성도 약한 조잡한 실험병기였다. 특히 기체를 만들 때 저질의 값싼 목재와 나쁜 금속 재료가 사용되었다는 것이었다. 대전 말기 독일의 만성적인 원료부족을 고려한다면 이 같은 현실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종전 직전에 나터르를 일본에 팔 계획이었으며 일본은 이것을 라이센스 생산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당시 일본도 B29의 고공폭격에 무척 시달리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어쩌면 당연한 심정이었을 듯.

보테다는 나터르계획의 중심인물에는 이 외에도 글라이더 전문가인 로타 지베르트라는 테스트 파일럿과 로켓 개발의 전문가인 그란츠오, 그리고 나찌당원인 G. 샤러라는 총 감독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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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hem BA349 Natter(File NO.03)

"지상레이더로 자동 조종, 착륙은 낙하산" 

나터르는 최종계획에서 1인용 로켓 추진식 요격기로서 제작됐다. 수직발사대에서 발사돼 지상 레이더관제소에서 자동으로 조정돼 침입해오는 폭격기와 만나는 장소까지 날아간다.

이후 적기편대가 시계에 들어오면 파일럿은 즉시 수동조종으로 변환해 목표에 수백m까지 접근, 마주 오는 폭격기편대에 한꺼번에 24발의 R4 73mm 
로켓탄을 발사하고 자신은 그대로 급선회하면서 전장에서 이탈한다. 

전장에서 이탈한 파일럿은 기수 앞부분 로켓탄 싣는 부분을 수동으로 떼어버리고 그대로 시속 240km/h로 활공시켜 적정고도에서 낙하산으로 탈출하도록 되어있다.

나터르의 중량은 2,177kg 이며 그중 635kg이 연료였다. 전체 길이는 6.5m, 폭 3.6m, 높이는 2.25m의 소형이었다.

나터르를 수직발사대에서 공중에 날리는 역할은 추력500kg을 갖고 있던 슈미딩 로켓 4기였다. 나터르 동체 양옆에 2기씩 장착된 이 로켓의 연소시간은 약 10초였다.

하지만 주 동력은 Me163 코멧에 사용된 액체연료를 쓰는 발터509A로켓이었다. 추력은 1700kg였다. 

공격용으로 장비된 R4로켓은 무게가 약 2.6kg이었으며 이중 탄두에 400g의 화약이 장전돼 있어 제대로 명중된다면 대형 폭격기에도 심각한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다. 나중에는 이 로켓탄의 화력은 2배로 증강시키려고 계획했으나 실제로는 제작되지 않았다.

나터르의 수평비행중의 최대 속도는 시속 약 800km/h이며 항속거리는 약 40km였다. 기체는 목제로 못과 아교로 제작됐다. 그렇지만 6G 까지는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나터르 1대를 제작하기에 필요한 시간은 약 1천시간으로 계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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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hem BA349 Natter(File NO.04)

"유인 비행실험은 처참한 실패로, 계획종료"

기본적인 기체설계를 실험하기 위해 수십차례에 걸쳐 활공실험이 실시됐으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마침내 이번에는 유인 비행실험을 할 단계에 이르렀다.

앞서 설명한 대로 나터르 파일럿은 목표를 향해 로켓탄을 발사한 후 기체를 급강하 시켜서 안전착륙지역을 향해 활공한다. 이후 파일럿은 몸에 맨 벨트를 풀고 탈출준비를 완료한 후 로켓탄을 장비했던 기수부분과 캐노피를 기체에서 떼어버린다. 이것으로 앞쪽에 탈출의 방해물이 없어져 파일럿은 기류에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다음에는 제2레버를 잡아당겨 기체 뒤쪽에 장비된 대형 낙하산을 펼친다. 그러면 순간적으로 기체의 낙하에 제동이 걸리게 돼 이 반동으로 파일럿은 앞으로 내던지게 되는 것이다. 

이후 파일럿은 개인낙하산으로 지상에 착륙하고 나터르 자체도 낙하산으로 지상에 떨어져 다시 회수해 재사용 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실제로 작전상황을 가상하고서 실시된 유인비행실험은 1945년 2월 28일 단 한차례 뿐 이었으며 그나마도 기체는 산산조각이, 파일럿도 사망하게 되는 처참한 실패를 거두게 된다.

수직발사대에서 발사된 나터르는 150m쯤 올라갔을 때 제대로 접착(혹은 세팅)이 안된 캐노피와 조종석의 헤드레스트가 떨어져 나갔다. 이후 나터르는 15도 각도로 기울어져 지상의 컨트롤을 잃은 채 500m까지 올라가 그대로 나선형을 그리며 추락, 땅에 격돌했다.

기체는 말할 것도 없고, 테스트파일럿인 지베르트도 즉사했다.

이후 연합군의 폭격이 심해졌기 때문에 그 이상의 유인비행실험은 하지 못했다. 결국 나터르계획은 실험단계에서 종지부를 찍은 셈이었다. 

하지만 다른 기록에는 3월에 또 다른 지원자가 나서 3대의 나터르를 발사실험에 사용했다는 사실이 언급되고 있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도 정설은 ‘1회 유인비행실험-실패로 종료’가 유력하다. 

이리하여 독일의 가장 모험적인 계획의 하나는 일장춘몽으로 덧없이 사라져 갔다. 전쟁에 사용하기에는 너무나 늦었던 것이다. 

실패의 가장 결정적인 요인으로는 앞서 언급한 것 처럼  수직발사대에서 발사된 나터르가 풍압에 못이겨 캐노피의 조종석 헤드레스트(머리받이)가 떨어져 나간것으로 이는 당시 전쟁말기 물자부족으로 인한 저급한 접착제를 사용해 일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이를 개선해 재차 테스트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약 2개월 후 전쟁에 완전히 졌으니...

전 세계에 현존하는 나터르는 2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뭰헨에 있는 2차대전 박물관에 전시된 무인 테스트기가 그중 하나이며 나머지 1대는 미군에 나포돼 전후 미국 국립항공박물관에 전시된 기체 넘버 T2-1 이 그것이다.

최근에는 독일의 한 매니아가 나터르를 스케일 다운시켜 RC로 제작, 실제 로켓 부스터를 장착해 발사에 성공시켜 항공계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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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나게 읽으셨나요?

워낙 실전도 없는 마이너 아이템인지라  ^^

그밖에 저의 밀리터리 게시물을 읽으시려면 아래 일람표를 참고 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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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제가 직접 작성
사진은 google.com에서 BA349 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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