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는 1911년 서간도(길림성 류하현)에서 개교한 독립군 양성 기관이다. 신흥무관학교는 1920년 일제 탄압으로 문을 닫을 때까지 3,500명의 독립운동가를 양성하였다. 배출된 독립군은 청산리전투, 봉오동전투 등 독립전선 각 분야에서 주역으로 활동하였다.
신흥무관학교는 상해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용과 우당 이회영, 성제 이시영 일행이 설립한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다. 그들은 한민족의 젊은이들의 핏줄 속에 민족혼을 함양을 진작시키기 위해 충심으로 모든 것을 다 바쳤다.
신흥무관학교 교가
신흥무관학교 교가 (가사 : 석주 이상용)
< 1절 > 서북으로 흑룡대원 남의 영절의 / 여러 만만 헌원자손 업어기르고 동해섬 중 어린 것들 품에다 품어 / 젖먹여 기른 이 뉘뇨 우리 우리 배달 나라의 / 우리 우리 조상들이라 그네 가슴 끓는 피가 우리 핏줄에 / 좔좔좔 결치며 돈다
< 2절 > 장백산 밑 비단같은 만리낙원은 / 반만년래 피로 지킨 옛집이어늘 남의 자식 놀이터로 내어 맡기고 / 종설움 받는 이 뉘뇨 우리 우리 배달 나라의 / 우리 우리 자손들이라 가슴치고 눈물 뿌려 통곡하여라 / 지옥의 쇳문이 온다
< 3절 > 칼춤추고 말을 달려 몸을 단련코 / 새론 지식 높은 인격 정신을 길러 썩어지는 우리 민족 이끌어 내어 / 새 나라 세울 이 뉘뇨 우리 우리 배달 나라의 / 우리 우리 청년들이라 두팔 들고 고함쳐서 노래하여라 / 자유의 깃발이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