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넘게 이어진 구타와 가혹행위 끝에 숨진 육군 28사단 윤아무개(24) 일병 사건은 군이 풀어야 할 '오래된 숙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폐쇄성이 강한 최전방 일반전초(GOP)처럼 독립된 소규모 공간에서 소수가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는 '후방 지오피'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 사고가 날 때마다 국방부가 내놓는 말뿐인 병영문화 개선책도 문제로 지적된다.
■ 최전방 아니어도 '지오피'는 있다
윤 일병이 배치됐던 경기도 연천의 28사단 977포병대대 본부포대 의무반은 '부대 안의 섬'이었다. 본부포대 소속이었지만 윤 일병 등 병사 6명과 하사 1명은 다른 병사들이 생활하는 통합막사가 아닌 독립된 장소에서 따로 생활했다. 통합막사와, 의무반이 있던 '찰리 포대'와의 거리는 200m 정도였지만, 관리 책임이 있는 본부포대 간부들의 눈을 피하기에는 충분한 거리였다.
폭력을 주도한 이아무개(26·구속기소) 병장 등 가해 병사 5명과 윤 일병은 24시간 공동생활을 했다. 이곳에서 윤 일병에 대한 구타와 가혹행위는 밤과 새벽 시간대는 물론 낮에도 들키지 않고 지속될 수 있었다. 사고가 난 의무반은 병사와 부사관을 합쳐 모두 7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숨진 윤 일병을 빼고 하사를 비롯해 5명이 가해자로 구속 기소되고 1명이 불구속 기소됐다. 부대원 7명이 모두 가해자 아니면 피해자가 된 사건이다. 가해자들은 윤 일병을 괴롭힐 때 망을 보기도 했다.
이들을 관리해야 할 군의관은 공석이었다. 의무반 병사들을 주기적으로 면담하는 사단 간부가 있었지만, 이 병장이 군림하는 상황에서 이런 '어두운 부분'까지 들춰낼 수는 없었다. 인권단체인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내용을 보면, 지난해 육군의 한 사단 의무대에서도 성추행과 구타·가혹행위가 있었는데, 이곳도 독립된 생활공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사단 의무대는 통상 본부중대와 분리돼 있다. 출입구를 아예 따로 둔 경우도 있다. 그만큼 감시로부터 자유롭다.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지곤 하는 전방 지오피처럼 후방의 소규모 독립부대들도 소수의 일탈이 심각한 인권침해로 이어질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 폭력의 대물림
좁은 공간에서의 폭력과 지휘 부재는 결국 고질적 악습인 '폭력의 대물림' 현상으로 이어졌다. 상습폭행에 가담한 지아무개(22·구속기소) 상병과 이아무개(21·불구속기소) 일병은 주범인 이 병장한테서 폭행을 당한 피해자이기도 했다. 특히 이 일병은 윤 일병이 전입해 오기 전까지 윤 일병의 '대역'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병장은 이 일병에게 치약 한 통을 다 짜서 먹게 하거나, 얼굴에 대고 물을 뿌리는 등 '물고문'을 하기도 했다. 지 상병 역시 후임자 관리를 제대로 못한다는 이유로 이 병장에게 '죽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로'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결국 폭력이 폭력을 낳았다. 지 상병은 어느 때부터인가 이 병장이 휴가를 가고 없을 때도 윤 일병에게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군인권센터 운영위원인 김인숙 변호사는 "병사들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했을 때 이를 어떤 식으로 처리하느냐가 중요하다. 소원수리를 형식적으로 처리하고 가해자·피해자를 한곳에 모아놓고 대충 사과하고 넘어가기도 한다. 지휘관들이 사건을 은폐하고 적당히 넘어가려는 태도가 이런 폭력의 대물림을 낳는다"고 지적했다.
■ 하사가 병장에게 "형님"
이 병장과 윤 일병 등의 내무반 생활을 관리한 '간부'는 유아무개(24·구속기소) 하사밖에 없었다. 하지만 유 하사는 가혹행위를 막기는커녕 이를 방조하고 심지어 직접 폭행에 나서기도 했다. 의무반 최고참으로 폭행을 주도한 이 병장보다 나이가 어린 유 하사는 자신보다 아래 계급인 이 병장을 "형님"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의무반을 관리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병장은 좁은 의무반 공간을 장악한 뒤 '제왕적 권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나이 어린 부사관과 나이 많은 병장의 '갈등'은 종종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관계가 계급이 높고 경험 많은 부사관이 아예 없는 소규모 공간에서 이번 사건처럼 극단적 병폐로 이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