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런데, 아이는 다른 아이와는 다르게 자랐다 일어설 때가 되어도 아이는 일어서지 못했다 머리가 유난히 무거운 탓이었다 늘 창백한 얼굴로 누워지내는 아이라도 부모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아이였다
어느 날 아이는 일어서려 비틀대다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놀란 엄마가 달려갔을 때 아이는 거의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아이를 일으켜 보듬던 부모는 아이의 상처를 살피다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상처에는 피 대신에 무언가 빛나는 것이 붙어 있었다
부모의 손에 묻어나오는 것은 뜻밖에도 작은 금조각이 아닌가? 아이의 머리는 금으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부모는 비밀히 아이를 키웠다
장성하면서 아이는 그래도 일어설 수가 있었다 그리고 소년은 청년이 되어 갔다 때가 이르렀다 생각한 부모는 청년이 된 아들에게 비밀을 밝힌다 이만큼 길러주었으니 얼마쯤 주어도 되지 않겠냐는 제안을 보태기도 했다 청년이 된 아들은 서슴없이 머리를 부딪쳐 금조각을 꺼내 주었다 만족하여 입이 벌어지는 부모를 뒤로하고 청년은 길을 떠난다
이제 청년에게는 무한정한 재산이 있었다 청년은 사람들과 어울려 돈을 아낌없이 썼다 청년의 곁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떠들썩한 모임과 파티가 계속되었다 비밀을 아는 이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그의 금을 조금씩 얻고자 했다 어느 날은 술에 취해 자고 있는 그에게서 머리 속의 피 묻은 금조각을 훔쳐 도망가는 이도 있었다 그는 그렇게 쓸쓸하게 머리를 비우고 조금씩 피 흘리며 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의 머리는 점점 가벼워지고 있었다 어느 흥성한 파티가 끝난 날 밤 청년은 다소 어지럼증을 느꼈다 조금씩 피 묻은 금을 파내어 그의 머리에 이제 금이 거의 남지 않은 것이다
이제 청년은 새롭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의 머리 속에는 금이 더 이상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남들과 같이 일을 하고 돈을 벌면서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청년은 아무도 그를 알지 못하는 먼 곳으로 떠났다 청년은 새롭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소녀가 있었다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이 소녀를 청년은 사랑했다 그 소녀를 위해 무언가를 해 주고 싶었다 소녀의 소원은 읍내 구두집에 있는 푸른 비단 구두였다 아름답지만 너무나 값비싼 그 구두를 소녀는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아름다운 이 구두를 소녀에게 꼭 사 주고 싶었지만 그만한 돈이 없었다 구두집을 지날 때마다 그들은 한참이나 서서 푸른 비단 구두를 바라보곤 했다 그러나, 사랑하면서도 아무 것도 줄 수 없는 청년의 곁을 소녀는 떠나고 말았다
소녀가 떠난 날, 슬픔으로 술에 취한 청년은 다시 구두집 앞을 지나고 있었다 한참이나 정신 없이 푸른 비단 구두를 바라보던 청년은 구두집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들어섰다 이 구두를 사야 한다 주인을 찾는 소리에 나오던 주인은 소스라치고 말았다 한 사나이가 피투성이의 모습으로 무언가 피 묻은 덩어리를 한 손에 들고 한 손에는 푸른 비단 구두를 들고 서 있었다 백지처럼 창백한 얼굴을 한 그 남자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