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한·일병탄 조약 체결 직후 서울 덕수궁 석조전 앞에서 조선총독부 관리와 이완용 등 매국 조약 추진 주모자가 고종과 순종을 앞세워 기념 촬영을 했다.
3대 이상 흥한 ‘대표 친일파’ 후손은 ‘대표 독립운동가’ 후손보다 훨씬 많았다.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흥한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적잖은 친일파 후손이 사회 각계에 포진해 대를 이어 기득권을 이어가고 있었다.
1910년 한·일병탄 뒤 일본 정부에서 훈1등 자작을 수여받은 이근택은 작위를 아들 창훈에게 습작했다. 창훈의 두 손자는 광복 후 교육 분야에 진출해 활약해왔다. 1998년 세상을 뜬 맏아들 이상우씨는 공주대 총장을 역임했고, 동생은 현재 공주대 물리학과 명예교수이다. 이근택의 형 이근호도 1910년 한·일병탄 조약 체결 공로로 남작 작위를 받아 매국형 친일파로 분류된다. 그의 후손은 2005년까지 선대의 친일 재산을 되돌려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9건 낸 적도 있다.
구한말 조선왕족이던 민영휘는 한·일병탄 직전 일제의 조선 병합을 지지하며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친일 매국 단체 간부로 이름을 올리고 활동했다. 그 공로로 병합 당시 일본 정부로부터 자작 작위와 매국공채 5만원을 받았다. 초기에 관직을 이용해 모은 재물을 불려 일제 강점기 조선 최대 갑부 반열에 올라섰다.민영휘의 후손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자리한 휘문고교를 상속받았다. 민영휘의 증손 민덕기씨는 종로구 인사동에 있는 풍문여고를 세웠다. 학교법인 휘문의숙은 민영휘의 증손자인 민인기씨가, 풍문학원은 고손자인 민경현씨가 각각 이사장을 맡았다. 현재 휘문고 교정에는 민영휘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다른 후손의 사회 진출도 화려한 편이다. 막내 아들의 장남인 민병도씨는 제일은행장과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다. 민병도씨의 장남 민웅기씨는 텔레비전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지로 유명한 강원도 춘천의 남이섬 유원지를 소유하고 있고, 둘째 아들도 기업체를 경영한다.
1907년 대한제국 군부대신을 지내다가 한·일신협약 체결로 군대 해산에 앞장선 이병무는 ‘정미칠적’으로 분류된다. 해산된 군대가 의병을 일으키자 강경 진압했던 이병무는 한·일병탄 때는 시종무관장으로서 병탄 조약 체결에 협조해 일제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았다. 이병무의 자작 작위와 재산을 물려받은 이는 입양 아들 이홍묵이다. 이병무의 증손자 이진씨는 5공화국 때 12대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노태우 정부 초기 국무총리 비서실장과 환경처 차관을 역임한 그는 현재 웅진그룹 환경경영담당 부회장이다. 그는 대학과 기업을 오가며 경제와 환경의 통합을 강조하는 ‘친환경 경영체제’ 주창자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이상 너무 많아서 생략. 이 이상은 기사 링크 참조.
눈물납니다.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