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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시카고의 깊은 밤
게시물ID : humorstory_3654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Estudiante
추천 : 2
조회수 : 23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2/22 18:21:21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의 실화입니다.

제가 92년 여름에 겪었던 믿을 수 없는 실화를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박장대소를 하고 웃을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난 너무도 심각했던 일생 일대의 위기였습니다.

 

당시 대학교 2학년이었고 형이 두명 모두 미국에 유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방학을 이용해서 한달간 미국에 여행을 간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한달간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잊지 못할 일들도 많이 겪었지만,

영어로 이야기하고 들어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너무나 시달린 상태였습니다.

즐겁던 시간이 모두 지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이었습니다.

 

시카고에서 KAL로 갈아타려 하는데 비행기가 24시간이 연착이 되는 바람에

나는 한국에 돌아왔을 때 거의 이틀 밤을 제대로 자지 못한 상태였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막 자려고 하는 순간 전화가 울렸습니다.

그 전화는 너무도 오랜만인 절친했던 옛친구였습니다.

그 친구는 내가 미국에 갔던 사실도 알지 못했고 그러므로 지금 돌아와서 무척 피곤하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단지 너무 반가운 마음으로 나를 나오라고 했기에 난 거절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몸따로 마음따로인 나는 강남역으로 가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나도 친구가 반갑고 해서 좀 마시다 보니 피곤한데다가 점점 맛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포장마차에서 소주까지 한잔하고 나니 이미 나의 모습은 한 마리의 개였습니다.

 

술자리를 마치고 전철을 탔는데, 당시 우리 집은 가락시장 근처였기 때문에 잠실역에서 버스를 타야 했습니다.

전철 안에서 나는 우리집 안방 인줄 착각하고 뒹굴고 있었는데

나의 반경 3미터 이내에는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았던 것을 그때는 참 이상하게 느꼈지만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누울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었습니다.

그때에 어떤 용감한 시민인 듯한 아저씨가 나를 부축하고 자리에 앉힌 후 인생에 대해서 설교를 해 주셨는데

그 내용은 지금 기억이 안 나지만 그 당시에는 참 진지한 태도로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서로 처음 보는 사람의 손을 부여잡고 대화를 나누었던 걸로 봐서 그분도 많이 맛간 상태였던 걸로 기억됩니다.

잠실역에서 내려서 롯데월드앞 벤취에서 난 다시 대자로 누워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얼마나 잤을까? 어느 아저씨께서 날 깨울 때 난 빨리 버스를 타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아무 버스를 타고 말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버스만 타면 집에 갈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다시 누군가가 날 깨웠을 때 그곳은 생전 내가 처음 보는 으슥한 밤거리였고 주위에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난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적막한 밤거리는 지난 한달 동안 있었던 미국을 연상케 했습니다.

난 순간적으로 착각하고 말았습니다.

"큰일났다!!! 난 지금 시카고에서 길을 잃어 먹었다!"

 

난 굉장히 처량한 마음으로 터벅터벅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역시 미국의 밤거리는 사람도 없고 차도 없구나... 이제 우리집 가락시장을 찾아가는 방법을 모색해야지....명색이 대학을 다닌다는 놈이 집하나도 못 찾아간다는 건 말이 안되지.....'

그때 저쪽에서 동양인 아저씨 한 분이 오고 있는걸 발견하고 난 정신없는 정신을 최대한 가다듬었습니다.

그리고 아저씨에게 다가가서
"익쓰큐즈미. 웨얼이즈더 가락시장?"
아저씨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에이 X발! 술먹었더니 영어 X나 안되네'


한참을 걸었습니다. 큰길이 나왔습니다. 그때 너무나 반갑게도 택시 한대가 오고 있었습니다.

난 이걸 놓치면 정말로 끝이란 생각에 한 손으로는 엄지 손가락을 들고 "헤이 탁씨!!" 라고 외치면서 팔짝팔짝 뛰었습니다.

택시가 서길래 난 "땡스!"라고 말하며 아저씨를 보는 순간 이 동네는 참 동양인이 많이 사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행선지를 말한다는 게 너무 흥분한 탓인지 그만 "아이 원트 가락시장!"이라고 크게 외쳐 버렸습니다.

그러고는 속으로 되게 쪽팔렸습니다.

아저씨는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조심스럽게 "카락쉬쟝?"이라고 되물었습니다.

`참 이 아저씨는 사려 깊게도 틀린 영어에 대해서 뭐라 토달지 않고 새겨들으시는구나.'

아마도 나를 교포2세나 뭐 그런 종류 인줄 알았나 봅니다.

지금부터는 대본 형식으로 하겠습니다.

나: 에쓰, 카락쉬쟝! 잇이즈 카락마켓! 유 노우?
아저씨: 예쓰바리. 아이 노우 가락마켓. 이뜨이즈 굳 마켓.
나: 아이 게쓰 유아 베리베리 굳 드라이버!
아저씨: 땡큐땡큐. 유아 베리베리 굳 게스트.
나: 유아 웰컴.
아저씨: 화이 유 고우 카락쉬쟝 투 레이틀리? 잇 이즈 클로우즈드 나우.
나: 마이 하우스 이즈 니어 더 카락쉬쟝.
아저씨: 유어 하우쓰 이즈 데어?
나: 야.
아저씨: 훼얼 아유 프롬?
나: 아임 프롬 코리아.
아저씨: (놀라며) 두유 스픽 코리안?
나: 아이 스픽 코리안 베리베리 웰.
아저씨: 너 한국 사람야?
나: 아저씨도요? (너무 놀랐다) 반갑습니다. 나 훼미리아파트 살아요! 아저씨는 어디 사셨어요?
아저씨: 근데 왜 영어해 새꺄! 얼마나 긴장했는줄 알어?
나: 여기 시카고 아녜요?
아저씨: 너 취했구나?

그때 집앞에 다다랐고 난 여기가 한국이라는 사실에 너무너무 기뻐서 집에까지 팔짝팔짝 뛰어왔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 되어서야 내 지갑을 택시 안에 두고 내린 것을 알았다.

그날 난 많은 것을 느꼈다.

  1. 역시 한국 사람은 한국에 살아야 한다는 것.
  2. 술은 적당히 먹어야 한다는 것. (지금도 그 버릇은 못 고치고 있음)
  3. 택시 운전사 아저씨한테는 한국말로 해야 한다는 것.
  4. 카락쉬장이 아니라 가락마켓이라는 것.
  5. 사람 많은 전철에서 부딪끼기 싫을 때, 뒹굴면 사람들이 피해 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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