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어렸을 때 겪은 얘기를 쓴 적이 있는데, 이번엔 예고한 대로 귀신을 본 얘기를 하렵니다 ㅎㅎ 우리 동네에 공원이 있는데, 지금은 발도 들여놓지 않지만 전에는 바베큐하러 가기도 하고, 예쁘고 평화로운 느낌도 들어서 가끔 머리식히려고 가기도 했음. 낮에는 그렇게 이쁘고 평온할 수가 없었음 ㅎㅎ 가서 그냥 벤치에 앉아있거나 풀밭에 앉아있으면 참 기분이 좋았는데, 그 모든 게 공포로 바뀌는 일이 있었음. 여름이라 덥고, 할 일도 없고, 무료해서 친구 세명과 함께 동네를 방황하고 있었는데, 그 중 종교가 고대 유럽의 종교인 친구가 얘기를 꺼냄. 이 동네에 진귀한 곳이 두 곳 있다고. (둘 다 공원인데, 하나는 제가 위에서 말한 그 공원이고, 다른 하나는 또다른 공원입니다.) 그래서 심심하니 공원 산책이나 하자고 생각해 넷이서 공원을 가기로 함. 나는 잘 믿지 않지만 기운이 좋다고 동네 태극권 수업도 하는 그런 공원이니, 뭐 별 일 있으랴 싶어서 간건데... 처음 도착했을 땐 저녁쯤이라서 선선하니 풀냄새도 기분 좋고 해서 망아지마냥 뛰어다님 ㅋㅋ 저녁이 되니 반딧불이도 나오고 해서 나무들이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반짝반짝한게 진짜 이뻤음. 그렇게 기분 좋게 놀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공원 저 안쪽에서 끈질긴 시선이 느껴지는것임. 처음엔 아 뭐지? 하고 말았는데 날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시선이 사방에서 느껴지기 시작함... 동시에 같이 온 친구들 중 두명의 표정도 점점 심상치 않아지는데, 참고로 이 중에 하나가 여기 오자고 말을 꺼낸 놈이고 다른 하나는 집안이 아이티에서 온 부두술사 집안(ㅠㅠ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서 나도 몰랐음). 뭔가 슬슬 불안해서 "인제 집에 갈까?" 하고 뒤를 딱 돌았는데 바로 거기 있었음. 내 눈앞이 아니라 정면에 있는 나무 밑에 뭔가 있었는데, 보고 아 제대로 망했구나 싶은 찰나에 공원 분위기가 바뀜. 머리가 길었는데, 남잔지 여잔지 구분이 안가는 모습. 보긴 봤는데 순간적으로 보고 "나는 못봤다. 안보인다. 아무것도 안본거다. 저건 아무것도 아니다. 없다' 이런 식으로 자기 최면을 걸 정도로 괴기스러운 분위기 ㅠㅠ 팔은 키만큼 길어서 손하고 소매가 바닥에 질질 끌리고, 옷은 너덜너덜하고 지저분한데 무슨 에도시대 일본 귀신같은 하얀 옷을 입고있었음. 눈이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내 쪽을 보고있다는 건 확실하게 알 수 있었고, 문제는 하나가 아니었다는거. 그리고 삽시간에 공원은 붉은 분위기가 됨. 붉은 분위기라는게 설명하기가 참 묘한게, 색이 붉은 게 아니라 대기중에 핏빛이 도는 그런 느낌. 심지어 나는 핏빛 달빛이 뭔지도 알 수 있었음. 달이 분명히 저게 느껴지기 전까지는 하얗고 예쁜 보름달이었는데 붉어진거임. 소름끼치고 오금이 저리는 그런 붉은 빛. 무늬만 신앙인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속으로 하느님 오마이갓 저좀 살려주세요 하면서 벌벌 떨었음. 아무것도 안보이는 마지막 한명은 "거기 뭐 있어?" 하면서 귀신한테 제발로 룰루랄라 걸어가쌌고 ㅠㅠ 그래서 거의 막 울면서 가지말라고 빌었음 제일 처음 보인 귀신들 쪽을 향해 서서 뭐가 문제인지 설명하고 있는데 뒤에서 뭐가 내 목을 잡았음. 손이 느껴진 것도 아니고, 딱히 물리적인 감각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분명히 알 수 있었음. 아 이건 더한 놈이구나. 내 눈앞에 보이는 귀신보다 더 지독한 놈이 나를 잡은거임. 진심 바지에 오줌쌀뻔... 그러고는 그 뒤로 어느 정도는 잘 기억이 안남. 친구들 말로는 내가 갑자기 중얼중얼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데 잘 못알아들었다고 함. 누군가한테 너는 왜 그랬냐, 왜 너만 행복하냐 이런 식으로 말을 했다는데 난 그게 기억이 안나.. 내가 기억나는 부분은 어느순간 뭔가 굉장히 안심이 돼서 고개를 들었더니 나를 가운데에 앉혀두고 나머지 애들이 삼각형을 그리고 있었음.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부두술사 애가 내 뒤를 가로막고 서 있고, 공원 가자한 애가 내 앞을 막고 서있는데 둘 다 나한테서 등을 돌리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안보이는 애가 나 오른쪽에 앉아서 내 손을 잡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진정이 됨. 그러면서 갑자기 개빡치기 시작 ㅡㅡ 하다못해 귀신도 나를 호구로 보나 ㅡㅡ 하는 생각이 들자 엄청난 분노가 몰려옴 ㅋㅋ 속으로 여태껏 살면서 싫어했던 놈들 생각하면서 찰지게 쌍욕을 퍼붓기 시작했음 ㅋㅋ 아직까지 시선이 느껴지는 쪽에 정신을 집중하고 "피부를 한포씩 떠버릴라", "차라리 성불했으면 좋았을껄 싶도록 껍질을 벗겨버린다" 하면서 있는 욕, 없는 욕 다 함. 글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욕을 막 함. 원래 부모님이 엄청 엄하셔서 속으로도 욕하고 하는게 스스로 껄끄럽고 했는데 열이 받으니까 온갖 한을 담아서 퍼부었음. 그러니까 갑자기 시선이 좀 더 멀어짐. 전처럼 막 지척에서 쳐다보는 게 아니라 멀리 도망간 것 처럼. 그러자 고대종교 애가 "이때다!" 해서 우리 넷 다 잽싸게 짐 챙겨들고 뛰었음. 가방 매고 뛰는데 뒤에서 뭔가 막 쫓아오는 느낌이 남 ㅠㅠ 파도 덮쳐오듯이 ㅠㅠㅠㅠ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우오아아아아아아아ㅏㅏㅏㅏ 하고 제일 앞장서서 뜀 ㅋㅋㅋㅋ 길도 아닌데 다 뚫고 지나감 (이래서 공원에서 나와서 길 잃어버림....). 그러고 한참 달리다가 숨이 턱끝까지 차서 멈춰서 하늘을 봤더니 달이 멀쩡... 와 내가 홀렸나 싶어서 방금 뛰쳐나온 쪽을 봤는데 그 위만 하늘이 아직도 좀 불그스름함. 그래서 넷이서 사람 많은 번화가까지 도망갔음 ㅇㅅㅇ 그러고는 우리는 여태껏 그 공원 안 감 끝이 쫌 허무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