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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장교들에게 드리는 글 (15) - 군대는 사람을 단순하게
게시물ID : military_155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중대장
추천 : 18
조회수 : 1109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2/22 22:51:05

초급장교들에게 드리는 글 (15) - 군대는 사람을 단순하게 만든다.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게끔 되어있는지라 힘들고 단순한 상황이 반복되면

사람도 비슷하게 단순해진다.

 

사회에서 성인이 되어 입대한 훈련병들이 식당에서 김치 한조각을

허락없이 뺏어 먹었다고 으르렁댄다. 뺏어먹은 놈은 장난인데 뺏긴놈은

그게 아니니 탈이 나는 것이다.

 

장교라고 다를까. 상황이 조금 낫다뿐 본질은 다르지 않다.

 

초군반 훈련중에 있었던 일이다.

 

교관중에 독사라 불리우던 아주 악질 교관이 있었는데 하도

교육생들을 갈구어대니 아주 죽을 맛이었다. 이를테면 강의중

자세가 조금만 느슨해져도 온종일 얼차려를 주는 식이었다.

 

그때는 표면적으로는 구타 가혹행위 금지라도 구타가 공공연히

있을 때였고 아무리 장교 계급장 달고 왔다 하더라도 초군반

교육생의 신분이라 장교고 나발이고 수틀리면 바로 군홧발이

날아왔다. 아니 병사보다 훨씬 심했다.

 

동기중에 어금니가 시원찮았는지 종종 입을 다물고 입술 가장자리를

조금 여는 동시에 츱! 하고 잇빨 사이를 빠는 소리를 내는

장종훈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아주 습관이 되어서 수시로 그런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멀끔하게 잘 생긴 친구가 하루종일 츱츱거리고 다니니 좀 지저분

하기도 했지만 그런 것 신경쓸 상황이 아니었다.

 

보통사람도 식사 후 어금니 사이에 무엇인가 이물감이 있을때 츱츱

거리며 이런 동작을 한다. 이 글을 읽는 제위께서도 무슨 소리인지

짐작이 가실 것이다.

 

이 친구가 하필이면 독사가 이론강의를 하고 있는데 부지불식간에 츱!

소리를 내고 말았다.

 

독사가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 나와.

 

소리를 낸 이 친구는 워낙 무의식중에 하는 습관이라

교관이 왜 저러는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냥 앉아 있었다.

 

야외 강의장은 찬물뿌린 듯 조용했다. 분위기 안좋은데 잘못걸리면

곡소리 나는 것이다.

 

- 이것들 봐라? 안나와? 양심불량하지.

 

소대장 하던 친구가 용기를 내서 발언을 했다.

 

- 교관님! 누구를 나오라는 것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 신성한 강의시간중에 잡소리 낸 놈 나오란 말이야!

 

그래도 소대장 완장찼다고 소대장 동기가 쎄게 나간다.

 

- 아무소리도 못 들었는데 무슨 소리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저새끼 왜저러냐 저러다 독사한테 죽을려고.. 속으로 불안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 방금 "츱!" 한놈 나오란 말이야! 너! 장종후이! 안나오나?

 

문제는 장종훈 소위는 자신이 워낙 무아지경에서 인식을 못하는 상황에

소리가 나와버린 것이라 자신이 그런 소리를 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선 장종훈이는 뭘 잘못 먹었는지

의외로 강경했다.

 

- 교관님 저 ^"츱!"^ 안했습니다.

 

- 너 ^"츱!"^ 했잖아! ^"츱!"^ 해놓고 ^"츱!"^ 안했다고? 너 분명히

  ^"츱!"^ 했어!

 

- 교관님이 ^"츱!"^ 했다고 하시는데 저는 정말 절대로 ^"츱!"^ 안했습니다!

 

- ^"츱!"^ 했다고! 안나와? ^"츱!"^ 해놓고 ^"츱!"^ 안했다고 우기면

  ^"츱!"^ 안한게 되나? 존말할때 안나와?

 

독자들도 아시겠지만 사람은 말을 할 때 숨을 내쉬면서 말을 하는데

"츱!" 은 숨을 들이쉬어야 하니 "츱!" 앞뒤로 0.5초의 간격이 필요하다.

 

때문에 그렇찮아도 흥분한 상태에서 대화가 빠르게 나가다가 잠시 반박자

쉬고 "츱!" 이 나온 다음에 문장이 나오니 저게 대화인지 랩인지

아주 장단이 자진모리로 척척 맞는 것이 요즘 애들이 하는 랩배틀도

저보다 재밌지는 않을 것이다.

 

"츱!" "츱!" "츱!" 하는 소리가 대화속에 박자를 척척 맞춰서 계속 나오는데

개그도 이런 개그가 없다.

 

교육생들의 얼굴은 웃음을 참느라 점점 일그러져가고 있었고 나도

역시 웃으면 죽는다는 일념으로 겨우겨우 웃음을 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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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입대하면 짧게는 일주일에서 보름정도 똥을 못 누는 변비를

겪는다.

 

갑자기 바뀐 식습관과 긴장의 연속인 일과, 피곤한 육체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것은 장교들도 마찬가지 초군반 훈련을 들어가면 처음 보름동안

큰 볼일을 못 보는데 아랫배는 묵직하니 갑갑하고 모처럼 시간이

나 화장실에 가 쪼그려 앉으면 뭐가 걸렸는지 나오지는 않고

그렇다고 화장실에 오래 있을수도 없고 아주 미칠지경이었다.

 

이렇게 한 일주일이 흘렀나

이제 동기들끼리 안면도 트고 같은 내무반 동기들끼리는 제법

친해졌는데 하루는 저녁식사 후에 개인정비 시간인데 동기놈

한놈이 아주 희색이 만면해가지고 내무반에 들어섰다.

 

- 야 나 오늘 똥쌌다!

 

바지에 쌌다는게 아니고 모든 이의 열망인 변비해결을 했다는

뜻이겠다. 군대 와서 사람이 오죽 단순해졌으면 똥싼게 자랑이

되겠냐마는 진짜로 진심으로 그때는 내무반에서 탄성이 흘러

나왔다. "와~~~"

 

솔직히 나도 그시끼가 되게 부러웠다.

 

- 똥이 아조 그냥 이-따만하게 굵은 놈으로 나오는데 아조 그냥!

 

그친구는 팔뚝을 걷어부치면서 아예 구연동화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꼭 어깃장을 놓는 놈이 있으니... 한 동기놈이

찬물을 끼얹었다.

 

- 야 저새끼 뻥이야.

 

똥싸고 온 놈은 온 내무반의 부러움을 받다가 느닷없이 나온 진실성

시비에 상처를 받았다.

 

- 야 새끼야 니가 어떻게 알어? 나 진짜로 똥 쌌다고!

 

- 병-신! 야 이세끼 다 뻥이야. 저세끼 내 옆사로에서 똥싸던데

  아무소리도 안 났다고!

 

- 뭐 이새끼야? 그럼 내가 똥 못싸고 와서 지금 똥쌌다고 자랑한다는

  거냐?

 

상황이 험악해지고 동기들이 우우 일어나 잡아 뜯어 말려야 했다.

세상에 똥싼걸로 다 싸움이 일어나는 곳이 군대라,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다 나오지만 그때는 진짜 심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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