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1/11/2008011101058.html [송희영 칼럼] 허망한 꿈을 팔기보다는…
송희영 논설실장
새 정권 출범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희망에 부풀어 있다. '경제 대통령'을 뽑아 놓았으니 그동안 안 보이던 일자리가 솟아나고 수입마저 더 좋아질 듯한 기대가 넘치는 분위기다.
이명박 경제팀은 이런 기대가 부담이 됐는지 올해 경제성장(GDP) 목표치를 7%에서 6%로 낮춰 잡았다. 하지만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났다.
노무현 경제팀은 4.8% 전망을 고집스럽게 밀고 간 반면, 5% 안팎의 성장이 합리적이라던 이코노미스트 중 일부가 7% 성장도 가능하다고 입을 바꾸기 시작했다. 권력자가 바뀌면 경제 전문가의 통계 수치도 하룻밤 사이에 바뀌는 나라가 바로 세계 7대 경제 선진국으로 가겠다는 코리아다.
한국인들은 세계화 파도에 휩쓸린 탓인지 큰 판단 착오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성장 목표를 설정하고 열심히 뛰면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착각과, 성장 목표가 달성되면 그 열매가 많은 서민들에게 어느 정도 분배될 것이라는 착각이다.
정권을 잡은 입장에서는 뭔가 숫자로 약속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는지 모르겠으나, 사실 미국, 일본, 유럽의 선진국 어느 나라도 대통령이나 총리가 성장 목표치를 약속하지 않는다.
이러는 데는 이유가 있다. 글로벌화의 파장으로 어느 나라 경제든 외부의 영향을 과거에 비해 너무 많이 받기 때문이다.
뉴욕의 주식 시세, 원유 가격, 금값처럼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엄청난 외부 압박이 국가 경제 운용에 워낙 강하게 미치는 시대여서 대통령이 함부로 몇% 성장을 약속하기 어려워졌다.
게다가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서 정치 시장의 소비자, 즉 유권자들의 관심도 달라졌다. 국가 경제가 몇% 성장하든 중요한 것은 '나라'가 아니라 '나'이다. 예를 들어 내가 산 펀드 수익률이 하락하면 경기침체고, 통근 지하철 조명이 사전 속 잔글씨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밝아지면 '세상이 좋아졌다'는 식이다.
내 직장이 없는 실업자에게 7% 성장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내 집이 없는 무주택자에게 국민소득 4만 달러가 어떤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겠는가.
새 경제팀이나 국민들이나 국민 소득 2만 달러, OECD 회원국가 수준에 맞는 경제관을 가져야 한다. 경제 성장이란 정부와 기업, 개인이 한해 동안 경제 활동을 한 결과물을 모아놓은 숫자일 뿐, 강한 의지로 정복 의욕을 불태워야 할 히말라야 같은 고지(高地)가 아니라고 마음 편하게 생각해야 한다.
고도 성장으로 일자리가 공급되면 그것이 최상의 분배 정책이라는 착각에서도 탈출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7% 성장이 매년 60만개의 일자리를 뽑아내는 자동판매기는 아니다.
큰 기업들이 투자를 몇십%씩 늘리면 한 식구 먹여 살릴 만한 일자리가 쑥쑥 늘어날 것 같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세계 최고층의 빌딩을 건설중인 삼성물산의 두바이 타워 공사 현장에 한국인은 고작 20명 안팎이다. 현장 사원의 숫자가 최대 5800명까지 늘어났던 시절에도 한국인이 차지한 일자리는 그 언저리에 머물렀다고 한다. 나머지 대다수 일자리는 인도와 네팔, 파키스탄의 노동자들로 채워졌다.
그런데도 물정을 알 만한 어느 은행장마저 며칠 전 당선자와 면담에서 은행 지점마다 1명씩 더 채용하면 7700개의 정규직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식으로 꿈 같은 제언을 했다. 국내 은행의 지점 숫자만 헤아려 보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시야를 넓혀 보면 전혀 다른 세계가 보인다. 지난 80년 중국이 개방정책을 채택한 직후 10년 사이 6억명의 저임금 근로자가 쏟아져 나왔다. 앞으로도 인도와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무려 20억명 이상의 값싼 노동력이 전세계 인력 시장에 공급될 전망이다.
한국의 수백만 비정규직은 이런 커다란 노동자 쓰나미 속에서 형성된 부실 집단이지, 딱히 노동 관련 법의 특정 조항이 잘못되거나 기업이나 정부가 잘못해 탄생한 것만은 아니다. 이 때문에 어떤 정권이 만능 방망이를 휘둘러 비정규직을 줄이려고 아무리 몸부림쳐 본들, 글로벌 노동 시장에 이처럼 엄청난 저임금 근로자가 계속 공급되는 한 우리 힘만으로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새 정권은 감당하기 힘든 꿈을 파는데 열중하기보다는 글로벌 경제의 냉엄한 현실을 먼저 설명해야 한다. 국민들도 신기루를 쫓다 헛물켜는 일이 더 이상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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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참. 이 신문이 얼마 전에도 무슨 선의의 거짓말은 이해해야 한다 뭐 이러던 바로 그 신문이죠.
MB도 참 그렇죠.
그럴 거면 애초에 "몇% 성장" 공약을 내걸지 말던가. (이건 이명박 뿐만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에 해당)
아니면 선거할 때는 몰랐는데. 당선되고 나서 자세히 살펴보니까 어이쿠 안되겠구나. 뭐 이런 걸까요.
신문도 참 그렇죠.
한 달 전에는 몰랐거나 아예 관심이 없다가 당선된 다음에 살펴보니까 이거 안되겠네 싶었을 리는 없고.
결국 이런 얘기를 이제 와서야 꺼내놓는 건 뒷북이며 당선자를 위한 핑계 만들기로밖에 안 보여요.
결국 제가 보기엔
"이런 공약들 보고 뽑았겠지만 사실 이러저러해서 원래 안되는 거였어. 알겠지?" 이라는 얘기고.
본문에서 보다시피 아주 세련된 표현과 화려한 수사들을 통해서.
경제라는 희망에 걸고 이명박을 찍었을 수많은 사람들을 바보만드는 건데.
물론 여기 해당 안되는 사람들도 있죠. 이명박 당선으로 인해 정말로 이익을 볼 수 있는 몇몇 사람들.
정작 이 기사를 읽은 수많은 사람들은 알까요.
자신들이 바로 본문에서 말하는 "세계화 파도에 휩쓸려 큰 착각을 하고 있는 한국인들" 이라는 걸.
그리고 자신들은 이명박 당선으로 인해 정말로 이익을 볼 수 있는 몇몇 사람들이 될 수 없다는 걸.
대선 끝나고 여기저기서 유행하던 이른바 '국개론'을 이 칼럼에서 보는 것 같아 참 느낌이 묘해요.
왜 대통령 하겠다고 나왔던 사람들 모두 "감당하기 힘든 꿈을 파는 데만 열중"했던 걸까요.
왜 "글로벌 경제의 냉엄한 현실을 먼저 설명"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걸까요.
대선에 나와서 '증세'내지는 '복지예산 확충'을 말하면 표를 받을 수 없을까요?
대선에 나와서 '4% 성장' 내지는 '우리 수준에 맞는 성장'을 말하면 표를 받을 수 없을까요?
저~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나라 국민들의 수준은 대충 근사한 공약으로 속여넘기면 되는 수준일까요?
실제로 그러한 걸까요? 그들은. 아니 저까지 포함해서 우리들은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걸까요?
본문 내용이야 다 맞는 말이긴 한데.
좀만 생각해 보면 다 알만한 얘기들을 대선 끝나고 나서야 하고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 얘길 하는 주체가 지금까지 그래 왔고 또 앞으로도 당선자와 손발이 척척 맞을 신문이라는 것이.
우습네요.
그리고 글 쓰면서 또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너무너무 슬프네요.
사족) 조선일보 칼럼을 놓고 쓴 글이니 저도 모르게 색안경을 끼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욕만 아니라면 제가 알아들을 수 있는 모든 지적, 반박, 가르침은 환영이에요.
(뭐, 개인적인 감상문에 불과하긴 하지만...-_-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