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벨리공공지원센터에서 열린 소프트웨어중심사회 실현 전략보고회에 참석,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가뜩이나 컴퓨터에 미쳐서 학교, 유치원에 다녀오면 밖에 나가지도 않는데 학교에서마저 소프트웨어 교육을 시킨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초등학교 2학년, 유치원생 두 아들을 둔 이향미(39)씨는 최근 정부가 소프트웨어 교육을 초등학교 교과 과정에 도입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분통을 터뜨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23일 판교 테크노밸리에서 열린 '소프트웨어 중심사회 전략보고회'에서 입시에 소프트웨어 과목 적용을 시사한 데 이어 교육당국이 초중고 교과과정에 소프트웨어 교육을 강화하는 계획안을 내놓자 학부모와 교사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28일 교육부에 따르면 초등학교 정보관련 교과 내용은 소프트웨어 기초소양교육으로 바뀌고, 중학교는 정보관련 교과를 소프트웨어 교과목으로 대체할 계획이다. 교육부는 또한 정보화고 등 일부 고교에서 심화과목으로 배우던 정보 교과를 소프트웨어 교과로 전환, 일반고 선택과목으로도 확대할 예정이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소프트웨어 교육을 굳이 교과과정에 정식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초등학생 자녀 둘을 둔 김병구(43)씨는 "소프트웨어 교육 강화는 컴퓨터나 스마트폰 게임에 빠져 사회성이 저하된 아이들을 말릴 명분을 없애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박범이 참교육학부모회 회장은 "소프트웨어 교육은 이미 따로 할 필요가 없을 정도"라며 "창의성을 길러주려면 아이들 스스로 할 수 있게 두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말했다.
학원가마저 부정적인 반응이다. 입시업체 관계자는 "소프트웨어 과목을 수능에 넣으면 아이들의 입시 부담 경감 추세를 거스르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한 마디 했다고 바로 교과목에 넣겠다고 나서는 교육부의 태도는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교사들은 "얼마 전에는 역사 교육을 강조하더니 이번에는 소프트웨어 교육이냐"라며 상명하복식으로 이뤄지는 교과 개편과정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김진우 좋은교사운동 대표는 "교과과정은 수 년간 면밀한 사회적 논의를 거친 후에야 바뀔 수 있는 것"이라며 "이런 식으로 위에서 툭 던지듯 하면 교육환경이 교란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에 불과한 창의적 체험활동시간에 수업을 넣으면 형식적일 수밖에 없고, 제대로 바꾸자면 교과과정 전체를 흔들어야 하는데 새로운 교사 양성, 기존 교과목 축소 등 복잡한 퍼즐을 풀기엔 논의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IT 종사자들조차 공교육에서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것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입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공부한 아이들이 과연 소프트웨어 산업을 자신의 진로로 선택할지 모르겠다"며 입시 반영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교육부는 "소프트웨어 교육의 방향을 정할 태스크포스(TF)를 이달 말 꾸리고 교과과정 개발 연구진이 오는 9월부터 약 1년간 관련 연구에 들어갈 예정이다. 대입 적용 여부에 관해서는 내년쯤에나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