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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이가 5.18 학살을 하게된 배경~!!!
게시물ID : humorbest_4755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컴백음슴
추천 : 46
조회수 : 5143회
댓글수 : 0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2/05/18 18:30:20
원본글 작성시간 : 2012/05/18 14:50:10
이 글은 5.18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전 전두환이의 5.17쿠데타배경에 대해 쓴 글입니다.
오늘 5.18광주 민주화운동 32주년...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수 많은 민주투사들이 지하에서 통곡하고 있고 전두환이는 껄껄거리며 살아움직이는걸 보면
참으로 비참한 마음을 아니가질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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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님의 삶을 통해본 역사시리즈.

출처 : "만화 김대중"(거의 베낌..^^), 웹서핑, 블로거등

6편. 12.12쿠데타와 전두환의 화려한 등장~~!!

http://blog.daum.net/marine6961/?t__nil_login=myblog

7편. 권력을 탐하는 전두환의 계략과 안개정국
1980년 3월 초순 보안사

전두환과 강창성이 만났다.
강창성은 1973년 "윤필용 사건"때의 보안사령관이었다.
10.26뒤 해운항만청장직에서 해임된 후 쉬고 있었다.

*윤필용 사건 : 1973년 수도경비사령관 윤필용 소장이 술자리에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게
"박정희 대통령이 노쇠했으니 형님이 후계자" 거론한 발언이 문제가 되어, 
윤필용과 그를 따르던 하나회 후배들이 쿠데타를 모의한 죄로 대거 구속된 사건.
전두환과 함께 하나회를 이끌었다. 1975년 석방이후 전두환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제4대 한국도로공사 사장, 한,미 친선회 이사, 한국전매공사 이사장 한국담배인삼공사 사장
등을 역임

전두환
"정국이 점차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선배님은 현 시국을 안정시킬 수 있는
묘안이라도 갖고 계십니까?"

강창성
"10.26이라는 갑작스러운 정변으로 일시적 혼란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겠소
높아진 국민 수준을 믿고 인내하면서 시간을 갖고 안정시켜 나간다면 수습이
잘 될 것으로 믿습니다."

전두환
"3김, 저것들이 설치고 있는데, 저 사람들 가지고 어디 되겠습니까?
"김종필은 흠이 많고 경솔하며 김영삼은 아직 어려서 능력이 부족한 것 같고
김대중은 사상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요."

강창성 
"그래도 좀 시간을 두고 시국을 수습하면서 시류에따라 3김씨, 또는 그 밖의
다른 사람일지라도 이번만은 국민이 자유롭게 직접 뽑은 문민정치인에게 정부를
이양하는 편이 가장 현명한 줄 아오."

열받은 전두환
"그러나 선배님, 많은 사람이 저에게 군이 당분간 정권을 맡아줘야 한다고 졸라댑니다."
심지어 지도급에 있는 몇몇 야당 정치인까지 저를 찾아와 제가 직접 대권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박종규 실장(전 경호실장)도 저를 찾아와 내가 아닌 다른사람이 정권을 잡겠다고 나서면
쥐도새도 모르게 없애버리겠다며 저를 적극 지지하겠다는 겁니다."

경악을 금치못하는 강창성
"우리 한국군의 대부라 하면 누구나 *이종찬 장군을 꼽아왔는데, 그것은 그분이
군의 정치적 중립을 표방했고 또 그 원칙을 실천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소"

*이종찬 : 1952년 대통령 이승만이 직선제 개헌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경남, 전남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병력 출동을 지시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고 군의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는 훈령을 내렸다. 이 때문에 그해 7월 참모총장에서 해임되고, 1953년부터
7년간 육군대학 총장으로 재직하다가 1960년 육군중장으로 예편했다.
1937년 일본육사졸업(49기)
1945년 뉴기니 독립공병 15연대장 대리(일본군소좌)
1949년 육군대령임관
1951년 육군참모총장
1960년 허정과도정부 국방부장관
대령복귀와 출세가도, 이승만의 신임, 이종찬 신화의 시작,
군의 정치개입반대, 4.19, 한때 국방장관으로~!! 

전두환의 버럭에 열받아 더욱 더 몰아부치는 강창성
"또 다시 전 장군이 군인으로서 정권을 잡는다면 그 이상 가는 실패나 불행을
당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꼬라쥐가 날때로 난 전두환
"야~!! 허화평 실장...손님 가신다.....썅~!!"

한편 김영삼, 김대중, 양 김씨는 결별의 길로 치닫고 있었다. 김대중의 신민당
입당 논의로 분란을 일으켰던 야당진영은 당권을 쥔 김영삼 총재 측이
"재야"(김대중)의 입당 때 심사하겠다고 나서 김대중과의 골은 더욱 깊게 패이고 있었다.

결국 김대중은 성명을 발표하고 신민당 입당을 포기했다.

"우리는 신민당이 재야인사를 받아들일 의사가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유신체제와 싸워온 재야 인사들을 어떻게 심사하겠다는 것인지 이해 할 수 없다.
신민당에 입당해 정치생활을 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4월초 정치문화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 3김중에 김대중의 지지도가 제일 높게나왔다.
즉각 동교동의 외곽조직이 가동되었다.

한국정치문화연구소(소장 김상현) 민주헌정동지회(이사장 김종완) 
민주연합청년동지회(장남 김홍일)

비서실과 정책실, 기획팀도 가동되었다.

비서실장 예춘호(6,7,10대 국회의원) 비서실 차장 김재위(4,6대 국회의원)
대변인 : 정대철, 부대변인 : 이협, 비서총괄 : 권노갑, 총무 겸 의전 : 김옥두
경호 : 함윤식, 외교홍보 : 유훈근, 대외 : 김형국, 정책 전문위원 : 한화갑
기획위원 박종률, 김상현, 노승환, 이용희, 조연하, 김녹영, 이중재 등

1980년 4월 14일

한편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합동수사본부장인 전두환이 보안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전두환은 중정부장을 겸직하게 되어 쿠데타라는 비행기에 젯트엔진을 달은 꼴이 된것이다.

김대중
"예..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이번의 겸직은 국민이 우려할 일입니다.
민주주의의 앞날이 걱정입니다."

공화당
"전두환 장군의 겸직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신민당 박영록 부총재
"전두환 장군은 경계해야 할 인물입니다. 겸직 반대 성명이라도 냅시다"

김영삼
"전두환 장군은 모범적인 군인이고 평이 좋아요. 같은 경상도 사람인데 내가
그를 잘 알아요. 시국 돌아가는 것을 그렇게 모릅니까?
이번 겸직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반드시 실현됩니다.
그렇게 되면 정권은 우리에게 옵니다. 이것이 옳은 수순입니다.
민주주의의 실현을 의심하는 인간은 소신이 없는 자들입니다."

전두환은 허허..라며 코웃음 치고 김대중은 김영삼의 뇌없는 발언에 놀라움을 금치못한다.

김대중
"뭐라고? 내가 소신이 없다는 말인가?
도대체 군부와 권력의 속성을 알기나 하고 하는 소린가?"

"안개정국" 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김대중의 정국 진단은 빗나가지 않았다.

8편에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촉발시킨 전두환의 5.17쿠데타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또한,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전두환계략이 낫낫히 밝혀집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축이다.

대한민국 제 1 대 대통령 김 대 중
대한민국 제 2 대 대통령 노 무 현

반만년 역사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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