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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붉은책 -3
게시물ID : panic_476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oxin
추천 : 8
조회수 : 92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5/15 11:36:13

막상 문앞에 서자, 내 마음을 갈등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마치 5년전 그날, 입장이 서로 뒤바뀐 것만 같았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철민은 돈이 필요 했던거고.. 나는 그래봐야 책 한권..


아니.. 책은 왜 필요한거지?


아직 그녀는 살아있는데.. 


아니다. 그 책에 분명히 7일 이내라고 씌여있었어.. 분명히...


준비할 시간이 필요해...


그녀를 살릴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해야해!!


온갖 생각이 뒤죽박죽으로 내 머리속을 좀먹어갔다.


"철컥"


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위를 쳐다보았다. 센서에 의해서 등이 켜져있었다.


"누구..."


철민의 말은 내 얼굴을 보고서는 이어지지 않았다.


"....."


".. 들어와"


한참의 침묵을 깨고 철민은 말하였다.


'쪼르르'


내 앞에 놓인 컵에 차가 따라지는걸 보다가 나는 시선을 끌어올려


철민을 바라보았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단지.. 울상이었던 표정이 무표정으로 변했다는것뿐..


"그래, 무슨일로 찾아온거야?"


갑자기 걸어온 말에 나는 흠칫 놀랐지만 티내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으..응...그게..."


맙소사, 이걸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생각을 하느라 정작 철민이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쩌지? 나도 빌어야되나? 


아니야.. 아마 나를 증오했을텐데.. 들어줄리 없어.


농담처럼 가볍게 책좀 달라고?


아니야.. 이유가 없잖아..


어서 무언가 대답을 해야하는데, 철민과 눈만 마주치고 있을 뿐,


내 입을 누가 꿰메놓은듯 도저히 떨어지지 않았다.


한참이 대답이 없자 철민은 내 맞은편 자리에 풀석 앉았다.


"... 얼마전에 너 이야길 들었어.."


"......"


"그래.. 많이 힘들지?"


한마디에 많은 뜻이 담겨져 있는것만 같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철민의 눈을 바라보았다.


옛날과 같은, 아주 맑은 눈이었다.


악감정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지난일은 잊고 내 아픔을 이해해주는건가?


"쿵!! 쿵!!"


반사적으로 우리 둘다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천장, 2층이었다.


"아.. 현선이가 나를 부르는 모양이야.. 요새는 말로 하기도


귀찮은 모양이야.."


힘없게 웃는 철민을 바라보니 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 현선이는 나때문에 장애인이 되었어. 


내가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녀석이 부처,하느님이라고 해도 내가 한 행동은 


용서하지 않을거다.


방해를 하면 했지.. 순순히 도와줄리가 없다.


"자.. 그럼 잠깐 2층좀 갔다올게.. 편히 쉬고있어"


일어나 2층으로 향하는 철민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철민의 발소리가 멀어졌을때,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 서재로 향했다.


"......."


희미하게 철민이 말하는 소리가 들릴때마다 나는 숨을 죽였다.


끼~이익...


소리가 최대한 안나게 서재문을 열고 들어갔다.


조심스럽게 스위치를 올리니 금세 어두웠던 서재안은 밝아졌다.


오랫동안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듯, 이곳 저곳에 먼지가 쌓여 있었다.


'아마.. 그 책이..'


소리를 없애기 위해 평소엔 바퀴로 굴려 옮겼던 사다리를 젖먹던 힘을 다해


두 손으로 들어 옮기기 시작했다. 


'여기 근처에...아!!'


다행히 기억은 틀리 않았다. 


특유의 기묘한 붉은색을 봄내며 그 책은 그 자리 그대로 꽃혀 있었다.


책을 살짝 꺼내 사다리를 내려와선 티가 안나게 서재를 원상복구 시켰다.


이제 가지고 나가는것이 문제였다.


책이 두꺼운 편이었으므로 옷 속에는 숨길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서재를 나와서 문을 살짝 닫은뒤 2층에서는 안보이는 방향으로 책을 몸 뒤에


숨긴후 살금 살금 밖으로 향했다.


"가려고?"


심장이 멎을뻔 했다.


나는 가까스로 표정관리를 하고 철민을 쳐다보았다.


"응.. 가볼게.."


철민은 나를 잠시 보다가 다시 현선이 있는 방으로 향하는것 같았다.


"철민아"


철민의 발소리가 멈췄다.


".. 그땐.. 그땐.. 미안했다."


나는 고해성사를 하듯 사과를 내뱉고 도망치듯 내 차로 돌아왔다.


'두근..두근...'


아직 심장은 미친듯이 뛰고 있었다.


'아냐.. 이럴때가 아냐..'


그렇다. 시간이 없었다.


문제는 번역이었다.


혹시라도 그녀가 숨을 거둔다면, 일주일 이내에 책에 있는 내용을 


수행해야 할텐데, 번역할 시간이 택도 없이 부족했다.


집으로 돌아간뒤, 난 그녀의 방으로 찾아가 손을 꼭 붙잡았다.


"다영아.. 이제 걱정마..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아도, 난 그것에 


굴복하지 않을거야.. "


읆조리듯이 혼잣말을 하고는 난 그녀의 옆에서 잠을 청했다.


내일 아침부터는 바쁠테니까..


'.....'


철민의 집에서 붉은책을 훔쳐온 다음날, 아침부터 나가서 프랑스어 사전을


사온 뒤, 방에 처박혀서는 번역에만 몰두했다. 


가끔씩 그녀를 한번 보러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물과 음식도 최소한으로 섭취했다.


그렇게 체력의 한계를 돌파하며 번역을 하고 있을때였다.


"...."


"오빠..."


나는 흠칫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너... 너... 어..어떻게..."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일어난것이다.


난 얼른 뛰어가선 그녀를 꽉 안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리고선 눈을 떴다.


책에서 얼굴을 떼고 눈물을 닦았다. 글자가 번질수도 있으니 책에도 


뭍은 눈물을 서둘러 닦아내었다.


나도 모르게 깜박 졸은 모양이었다. 아마 3~4일은 잠을 안잤을 것이다.


하지만 잘 수가 없었다. 시간은 부족한데, 애초에 프랑스어를 모르는 내가 번역하기엔 


너무 많은 분량이었던 것이다.


번역가를 고용할 생각도 해보았지만, 이내 마음을 접을수 밖에 없었다.


내용 자체가 기괴한것은 상관이 없지만, 책 안의 그림을 둘러봤을때


삽화를 보거나 책 앞쪽의 일부 내용에서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의식을 위해서는, 여러가지 재료가 필요하지만.. 결국 인간이 


필요하다는걸..


아직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만일의 경우가 있지 않은가.


어짜피 그녀가 세상을 떠나면 나도 따라서 죽을 생각이었다.


어떤 짓이라도 할 각오를 가지기엔 충분했다.


책에 있는 내용을 따라하기에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 생각을 하던중에 문득 그녀가 보고 싶어졌다.


"....!!!!"


그녀를 보자마자 이변이 일어났다는걸 알 수 있었다.


"다영아!!! 다영아!!!!!!"


닦은지 얼마 되지않은 얼굴에 눈물이 또 왈칵 쏟아졌다.


비록 움직이진 않았지만 따듯했던 손은 이미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몇시간을 미친듯이 울었다.


몸안의 수분이 모자라 눈물조차 안나올때쯤,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젠 정말 시간이 없어..!!'


서둘러 다시 번역하던 방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내 절망감이 나를 감쌌다.


4일밤을 꼴닥 새서 한 번역량은 10분의 1도 채 될까 말까한데..


앞으로 남은시간은 7일이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머리속을 채웠지만, 난 금방 자리에 앉아서 


다시 변역을 시작했다. 


고민하는 시간조차 아까웠으니까.


3일후.. 


난 책을 집어던지며 외쳤다.


"이게 뭐라고!!! 으아아아악~~~!!!"


한참을 씩씩거리던 나는 다시 책을 집어들었다.


남은 시간은 4일이 채 되지 않는다. 


반도 번역하지 못했다. 


이책의 주술을 따라한다고 해도, 그녀를 무조건 다시 만날수 


있다고 할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것이 문제였다.


나는 발작적으로 부엌에서 칼을 하나 꺼내 칼날을 내쪽으로 하고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다영아 미안해.. 오빠가 부족해서.. 이런것 조차 못해줄것 같구나..


그동안 외로웠지? 이제 금방 오빠가 따라갈게..'


막 손에 힘을 주고 목으로 찔러 넣으려는 순간, 어떤 생각이 들었다.


"어? 철민아 그거 그때 읽던 책 아니야?"


"어~ 야..동욱아 넌 제발 끈기좀 가져봐라.. 난 뒷내용이 궁금해서


시간날대마다 다 읽었지롱..헤헤"


그렇다. 철민이는 호기심이 동하면 그것을 다 볼때까지 붙잡던 아이였다.


혹시.. 번역도..?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난 식칼을 내팽개치고 핸드폰을 찾았다.


어짜피 목숨을 끊는거야 나중에 해도 된다. 


혹시라도.. 번역본이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 늦게 따라 가는것은 그녀도 이해해 줄것이다.


"제기랄!!"


난 신경질적으로 휴대폰을 벽에 던졌다. 


번역하느라 신경쓰지 않았더니 방전이 된것이다.


나는 다시 시선을 돌려 차키를 집었다.


'그래.. 직접가서 부탁하는게 나을지도 몰라'


어짜피 죽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어느정도 편안해졌다.


"...."


하지만 역시 철민의 집에 섰을땐, 어느정도 망설여 졌다.


그래도 멈출수는 없었다. 


"딩동"


용기를 내어 초인종을 누르자 얼마뒤 철민이 문을 열고 나왔다.


철민을 보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털썩'


나는 무릎을 꿇었다.


그래고 말했다.


"철민아.. 제발... 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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