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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27세 수연 씨, 유기당하다 下 (BGM)
게시물ID : panic_4766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숏다리코뿔소
추천 : 24
조회수 : 2186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3/05/15 19:33:09







그는 그 후로도 자주 집에 찾아왔다. 그동안 나는 내 넓어진 방을 만끽했다.
비록 집을 벗어 난 것은 아니었지만, 방에 가두어졌던 그 나날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는 스스럼없이 물었다. 먹고 싶은 건 없어요?
가지고 싶은 건 없어요? 필요한 게 있을 텐데요?

그 때마다 난 대답도 못하고 고개만 흔들었다.
그는 엄마 대신의 집의 쓰레기를 가져다 버렸다.
아빠를 대신해 내 끼니를 챙겨줬다.

그가 없었다면, 집에 전기도 끊어졌을 것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컴컴한 방 안에서 홀로 웅크린 채 지냈을 게 눈에 선하다.
쫄쫄 굶으며, 매일 언제 죽을까, 불안에 떨며, 엄마가 돌아오는 건 아닐까,
헛된 희망을 품으며.

정우. 김 정우. 내가 고마워해야 할 사람의 이름이었다.

“오늘은 방을 더 넓혀 보는 건 어떨까요?”

그가 물었다. 그는 평소처럼 나와 식탁에 마주 앉아있다.

그가 손수 장을 봐, 차려진 밥상.
김치찌개며 갖은 반찬들이 총천연색으로 식탁을 수놓고 있다.

방을 더 넓혀 보는 건 어떨까요.
그에게는 무엇이든 협조하고 싶다.

하지만 얼마 전 집 현관 앞의 커튼을 넘어가려던 기억이 난다.
그는 기대에 찬 눈으로 내가 현관을 벗어나는 모습을 바라보았었다.
그의 기대에 못 미치고 깜빡… 해버렸을 때의 그 미안함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의 “괜찮아요. 울지 말아요. 우리 천천히 해요.” 다독이던 따뜻함이 잊혀 지질 않는다.

“이 이상 방을 어떻게 더 넓혀요?”
“사실 얼마 전에 이 아파트 맞은 편 집을 사버렸어요. 어제부로 그분들은 이사를 가셨구요. 이제 이 층의 모든 공간이 저의 집이에요.”

그의 너그러운 웃음이 시야에 가득 찬다. 당신은 정말 기상천외하네요.
당신의 관대함은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네요. 설마 저를 위해서 맞은 편 집을 산 것은 아니죠?
울컥울컥 생목오름 하는 말들이 많았다. 보답하는 길은 어서 빨리 그의 집에서 떠나주는 일 뿐이다.

“밥 천천히 먹고 우리 해봐요.”

그는 천천히 라고 말 했지만, 밥을 뜨는 수저가 바빠져 있었다.
그와 난 식탁도 정리하지 않은 채 커튼 앞에 섰다.

“문 치운다고 방 안으로 사라지면 안 돼요?”
“…알았어요.”

그가 현관을 커튼을 치운 순간이었다.
현관 앞의 커튼이 사라지는 그 순간 또 깜빡… 하고 시야가 멀어졌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그와 나의 방이었다. 그가 가만 엄지를 들어 내 뺨을 훔쳤다.
흘린 줄도 몰랐던 눈물이 그의 엄지에 넘치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울 것 없어요. 시간은 충분해요.”
“아니에요. 저 때문에….”

그는 빙긋 웃었다. 그가 고갤 숙인 내 얼굴을 빤히 보려고 내 얼굴 밑으로 들어왔다. 그리곤 말했다.

“커튼을 사방에 칠 순 없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커튼이 없이는 수연 씨가 또 깜빡! 해버리구요. 그만 울어요. 괜찮아요.”

그는 여유로워 보였다. 나를 위해 마련한 실험들로 아직 준비해 놓은 게 많고 많다고,
그렇다고 말하는 여유 같았다. 그는 눈가리개와 이어폰을 내밀었다.

고양이 눈이 동그랗게 그려진 우스꽝스런 눈가리개를 내 눈 앞에 흔들린다.

“이거 한번 차볼래요?”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다. 내가 어디에 있는 줄 모르게 해 볼 생각인가?
하지만 냄새는요? 밖엔 풀잎이 한창 키를 키우고 있는데.
바람의 감촉은 어떻게 가릴 건가요? 봄바람 따뜻한 기운이 다 느껴질 텐데.

“해볼게요.”

그의 실험에 의문을 품는 것은 그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진지했고, 나를 위한 선의로 가득했다. 안대를 쓰려는 데 긴 머리칼이 방해다.
그는 선 듯 내 귀 옆의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나는 넘어가는 머리칼을 따라서 안대 끈을 정리했다.
그와 손이 닿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그와 한 집을 쓴 시간이 쌓여서 그런 것인지, 그가 내게 해 될 만한 사람이 아니라서 인지,
나도 이유는 잘 모르겠다. 곧 이어 이어폰도 귀에 걸었다. 그는 이어폰에 연결 된 핸드폰을 내 손에 쥐어줬다.

“제 말이 안 들릴 만큼 소리를 키워 봐요. 소리로 감지되는 공간감각을 차단하는 게 도움이 될 거에요. 분명히. 음악 취향은 잘 몰라서, 아무 노래나 넣었어요.”
“음악 잘 몰라요. 아무거나 들어요. 그냥.”
“그래요? 저랑 같네요. 그럼 이제 소리를 키워 봐요. 제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음악에 그의 목소리가 가려졌다. 이제 어찌하면 될까요? 물었지만, 대답이 들릴 리 없다.
가만 기다렸다. 내 손을 잡아 이끌지도, 정중히 허릴 감아올지도 몰랐다.

진중한 왈츠가 귀를 꽉 메운다. 약간 귀가 아파올 만치 소리를 더 높였다.
쿵짠짜 쿵짠자 하는 리듬감이 기다리는 마음을 괜히 울렁이게 만든다.

조금 기다리니 그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어깨를 건드린 방향으로 돌아서려는데, 허벅지와 등으로 갑작스런 힘이 느껴졌다.

헛바람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는 나를 손으로 이끌지도, 등에 업지도 않고 그대로 들고 다닐 생각인 것 같았다.
몸의 무게 중심이 그의 가슴께로 자꾸만 몰렸다. 손을 어디다 둬야할지 민망했다.
그의 목을 감자니 괜히 쑥스럽고, 가만 내 품에 모으고 있자니 그가 불편할 것 같았다.

가린 안대에 의해 그는 보이지 않았지만, 연한 숨결이 손등으로 떨이지고 있었다.
그가 어디론가 걸어갈수록 그의 품에 깊게 안기는 모양이 되어간다.

그가 나를 들고 회전하는 느낌이 들 때마다 마치 왈츠를 추고 있는 기분이었다.

빙글 또 빙글 하고.

스산하고 습한 시멘트 냄새 비슷한 것이 느껴지더니 곧 밍밍한 철가루 향이 느껴졌다.
그가 나를 이끄는 곳이 어딘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혹시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니 부끄러워서 고갤 들 수가 없다.
얼굴에 핏기가 돌아 화끈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안대를 쓴 게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어디까지 갈 거예요?”

당연히 대답은 들리지 않는다. 햇볕에 바싹 말라가는 풀잎 향이 느껴졌다. 어디 즘일까.
머리로 주위의 풍경을 그려보려 했지만 키 작은 풀이 담장을 두른 아파트 단지 밖엔 떠오르질 않는다.

바람이 머리칼을 한 번 훑고 지나갔다.

들썩이는 머리칼 밑으로 시원한 바람이 통하는 것이 너무나 쾌청한 느낌이다.
그냥 이대로 시간을 보내기만 해도 좋겠다.

지금 이대로. 그가 나를 어딘가에 가만 내려놓았다.
손으로 바닥을 더듬자 차가운 나무가 만져진다. 그는 내 이어폰을 벗겼다.

“아무래도 성공인가본데요?”
“여기, 어디에요?”

그의 코웃음 소리가 들린다.

코웃음 따라서 풀잎이 산들산들하고 사부작사부작하고 흔들리는 소리도 들렸다.

봄 냄새가 맡아진다.

“걸어 볼래요?”
“눈 가리구요?”

그가 내 손을 빼앗아 잡았다. 덥석 부여 잡힌 내 손이 그의 손 안에 전부 들어가는 듯하다.
흠칫 놀랐지만, 순순히 그를 따라 걸었다. 맹인이 된다면 이런 느낌일까.
안내 받으며 길을 걷고, 부축 받아 집을 나서고. 어쩌면 평생이 이렇게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평생 눈이 멀어 병들고 털도 다 빠져버린 버려진 개처럼, 이 사람에게 부축 받으며.

그는 정처 없이 나를 이끌었다. 내 보폭을 맞춰 걷는 그의 곁에서 왠지 재활치료를 받는 기분이다.

“아직 눈은 뜨지 말아요.”

그가 안대를 벗겼다. 안대 밑에 있던 콧잔등이 시원하다.

“지금,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기 직전이에요. 눈 한 번 떠볼래요?”

깜빡…하지 않는다. 한참을 어둠 속에 있었던 탓인지 눈이 시리다.
아파트 담장과 푸른 나무들이 반갑다고 손을 흔든다. 오랜만이야, 하고.

“단지만 벗어난다면, 해결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해봐요. 우리.”

그와 맞잡은 손에 점점 땀이 차고 있었다. 안대를 벗고 나니 저절로 숨이 가빠왔다.
세상에 공기가 반절로 뚝 줄어 든 것만 같다.

숨을 쉬기 위해 애쓰지 않으면, 질식할 것 같다. 숨소리가 거칠어지자, 그가 물었다.

“힘들어요?”
“아니요. 좋아요. 너무 좋아요.”

밖에 나왔다는 감각보단 꿈을 꾼다는 감각이었다.
숨은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져 있지만 그래도 적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아니, 믿었다. 그리고 잠깐사이였다.

깜빡…

팔에 통증이 왔다. 그와 잡고 있는 손이 뒤틀렸다.
팔을 따라 바라본 곳엔 그가 있었다. 방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아직 아파트 담장 앞이다. 나는 그를 등지고 서있다.

그와 잡은 손에 의해 팔이 꺾인 채.

“어떻게 된 거에요?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예요?”

그에게 물었다. 그의 게슴츠레 한 눈이 말한다. 이럴 리가 없다, 분명, 하고.
그의 흔들리는 모습이 지진처럼 느껴진다. 내 세상을 모두 뒤흔드는 지진.
내 근간이 모두 금이 가고 깨져나가는 지진.


***


수연 씨가 돌아보며 물었다. 당황한 기색이 얼굴에 자욱하다.
수연 씨의 팔을 놓이지 않도록 반대 손으로 수연 씨를 잡으며 꺾인 팔을 다시 정리해주었다.

“돌아서셨어요.”
“돌아서요?”
“예, 수연 씨, 돌아서셨어요.”

수연 씨의 부모님이 처음 날 찾았을 때. 그 날의 당혹감을 잊지 못한다.
수연 씨 부모님은 수연 씨를 병원까지 끌고 오지도 못 했다.
증상을 알리기 위한 핸드폰 동영상만 소중히 가슴에 끼고 오셨다.

세상에 이런 증세를 보이는 사람도 있을까. 정신과 의사를 하며 10년을 지냈지만,
그녀와 같은 증상은 처음이었다.

말로만 설명을 들었을 땐 단순한 방구석외톨이의 전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설명과 동영상은 판이했다.

“방에서 나오질 못 해요.”

수연 씨의 어머니가 호소했었다. 방에서 나오지 못 한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 싶었다.

말 그대로였다.

수연 씨 어머니 손에서 재생되는 동영상 속 수연 씨는 방문턱을 넘는 것과 동시에 휙 하고 자리에서 회전하며 돌아섰다.
눈을 꼭 감은 채. 동영상 속 수연 씨는 말했다.

“세상 모든 불빛이 깜빡…한다.”

하지만 그녀는 단순히 눈을 감아버리는 것일 뿐, 괴현상 따위가 아니었다.
그녀 스스로 이 현상을 괴현상이라 느끼는 것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순식간에 기억을 잃을 수 있는 것인가?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고 뒤를 돌아서며?

도대체 왜?

“고쳐주세요. 선생님. 제발 부탁입니다.”

수연 씨의 아버지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가슴이 아렸다.
아린 것은 아린 것이지만, 이런 증세의 원인을 짐작 할 수가 없었다.
왜 이런 형태로 외출을 거부하는 것인지도.

수연 씨의 부모님도 그 원인을 알 수가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어디가 아픈 줄도 모른 채 사람을 치료한 다는 것이 가능할까.

시도는 해 볼 수도 있겠지.

그래도 실마리를 얻기 위해 오랜 시간 수연 씨의 부모님과 대화를 했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이해해보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행적을 부모님의 기억에 한해 모든 것을 들었다.
도무지 이런 증상을 보이는 환자라 짐작 할 수 없는 평범한 여자의 인생에 대해 장시간 설명을 들어야했다.

쾌활하고, 친구를 좋아하고, 평안한 가족 밑에서 평범하게 자란 여자.

방구석외톨이가 외형적 콤플렉스에서 찾아오는 일도 많았지만,
그녀의 외모는 평범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 되려 미인이라고 하는 게 그녀에겐 걸 맞는 평가였다.

세상에 벽을 치고 사는 이유가 도대체 뭐야. 부모님의 설명을 듣고 있자면, 궁금증은 깊어만 갔다.
혹시나 강간을 의심해 봤으나, 부모님은 극구 부정했다.
강간을 당한 듯한 기미가 없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기미는 없을 수 있다.

남들에게 숨기고 싶은 것부터 마음의 병이 찾아 왔을 수 있다.
그것을 염두하며 수연 씨의 부모님의 설명을 계속해 듣던 중,
전혀 의외의 장소에서 실마리는 튀어나왔다.

어떻게 받아들이려 노력 해보아도 이야기가 부자연스러운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직장에 며칠씩이나 출근을 안는데, 연락이 한 번 밖에 오지 않았어요?”
“예….”

바보 같은. 그런 직장이 세상천지에 있는가?
10분만 무단으로 지각하더라도 전화통에 불이 나는 게 보통 아닌가?

“수연 씨가 이 일이 있기 전에도 무단결근을 자주 했었나요?”
“아니요. 성실히 매일 출근했었어요. 휴일에도 출근해서 일 하기도 마다치 않았는걸요.”

강간이란 짐작은 속단이었다. 그녀의 인생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숨기고 싶은 게 있었다면, 그 것은 몸을 유린당한 것이 아닐 것이란 추정을 다시 내렸다.
새로운 짐작은 강렬하게 머리를 때렸다. 겨우 연락 한통? 그것도 퇴사 통보만?

그런 회사는 없다.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다. 내가 알고 있는 한으로는.

어렵게 그녀의 회사 동료와 접촉할 수 있었다.
동료의 말을 들으며 짐작은 확신으로 확신은 다시 확인으로 변모했다.
수연 씨의 부모님에게 물었다.

“수연 씨가 친구가 많은 편인가요?”
“예, 어릴 때부터 친구들을 우르르 끌고 다니는 아이였죠. 인기가 좋은 아이였어요.”
“수연 씨가 직장을 다닌 것이 몇 년이나 됐죠?”
“전문대 졸업하고, 얼마 있지 않아서니까 4년? 5년?”

짧아도 4년. 왜 이토록 무모하게 회사를 다녔을까.
그녀의 낮은 학력을 보며 그저 짐작하는 것 밖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을 듯 했다.
그저 내가 생각하기론, 재취업이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고,
그렇게 짐작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수밖엔 없었다.

수연 씨의 직장 동료가 해준 설명에 눈앞이 컴컴해졌다.

“처음엔 그저 거슬린다, 로 시작됐어요. 회사의 그 누구보다 학력이 낮았거든요. 그녀는 실력으로 취직한 훌륭한 케이스죠. 아아, 어느 날인가? 부장님이 수연 씨에게 그러는 거예요. 수연 씨는 얼굴로 취직했구만? 당연히 농담이었죠. 짓궂지만 다들 알아들었어요. 짓궂은 칭찬이라고. 제가 듣기에도 그랬어요. 얼굴이 참하고 예쁘다는 칭찬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왜였을까요. 그게 신호탄이 됐어요. 수연 씨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사람이 있던 모양이에요. 그게 누구였는지는 저도 잘은 모르겠어요. 어느 순간 시작된 거죠. 수연 씨를 미워하는 목소리가. 이후론 걷잡을 수가 없었어요. 산불이라도 난 것처럼. 수연 씨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식이었죠. 수연 씨가 일을 열심히 하고 잘하면,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했어요. 그저 미움의 대상이 되었죠. 남자 직원들에게 은근히 인기가 있는 것도 한 몫을 했어요. 여자 직원들 전체가 수연 씨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봤죠. 정작 수연 씨는 열심히 일만 했지만요. 수연 씨는 작은 잘못도 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어요. 잘 아실지도 모르겠네요. 수연 씨가 작은 실수를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이 가세요? 얼마나 가차 없고, 신랄한 비판이 쏟아질지. 하지만 대놓고는 표시하지 않죠. 꾸준하고, 집요하게 그녀를 괴롭히는 거예요. 사소한 명목을 만들어서. 계속해서 끊임없이. 출근한 마지막 날이요? 수연 씨가 회의 자료를 집에 두고 오는 일이 있었어요. 그 바람에 미팅이 지연됐죠. 별일은 아니었어요. 하루정도 미뤄서 회사 일에 지장이 있는 일이라면, 수연 씨를 집에 돌려보내 자료를 찾아오게 시켰겠죠. 간부들은 사람이 일하는 것이니 그런 실수도 할 수 있다는 반응이었어요. 평소 수연 씨를 좋게 본거죠. 하지만 동료직원들의 반응은 달랐어요. 그날따라 수연 씨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 난 것처럼 굴었어요. 왜 그날따라 그랬냐구요? 저도 잘은 모르죠. 하지만 그때가 타이밍 이었던 거예요. 수연 씨는 웬만해선 실수 같은 거 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명목에 목마른 사람들이 그 기회를 놓일 리 없는 거죠.”

4년간 직장에서 따돌림을 당하며 지낸다는 것은 어떤 기분이지.
한 치의 실수도 범하지 않으려 사는 삶이란 어떤 삶이지?

수연 씨를 알기 위해 받아온 사진들이며, 일기들 친구들의 녹취자료.
도저히 어디 한부분에서도 그녀의 따돌림에 대한 흔적이 없었다.

전화가 한통 밖에 오지 않았다면, 수연 씨의 가까운 상사가 그녀를 따돌리는 주축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다 함께.

강간을 당하지 않았다는 짐작도 속단이었다.

평범하고 활달했던 그녀에게 4년간의 견딤은 평생 처음 겪는 고통이었겠지. 차라리 강간이란 말이 어울린다.

따돌림, 그렇게 쉬운 말로는 망가져버린 수연 씨 병의 근간을 설명하기에 너무 보잘 것 없게만 보였다.
겨우… 따돌림. 따돌림이라는 말이 너무 가벼운 것일까. 강간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영혼의 강간. 아니 살인이 더 맞는 것이다. 난도질 살인.

인격을 난도질당하며 축적 된 스트레스가 어느 날 갑작스런 형태로 바로 지금 수연 씨의 증상으로 나타났다.

결론이 지어졌다.

문제는 치료가 시작되는 지금부터였다. 이 상처를 덮어 자연스런 치유를 기다리는가,
아니면 상처 위에 소독약을 끼얹고 실, 바늘을 들어 봉합 하는가….

주변에 한 번도 내색하고 싶지 않았던 수연 씨였기에 전자를 택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핸 그녀가 나를 정신과 의사로 판단해선 안 됐다.
그녀를 그 좁은 방에서 구조해내고, 그녀를 치유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

이 방법에 대해 병원 선배는 주의를 주었다.

“너무 환자에게 거리를 가깝게 두지 않는 게 좋다는 건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기본이야 기본.”

거리를 유지해라. 동시에 그녀를 구출하라. 부모님의 협조를 요청하자,
수연 씨의 부모님은 적극 찬성하며 두 손 두 발을 다 벗고 나섰다.

부모님과의 단절, 스스로가 버려졌다고 느끼는 과정, 집을 잃었다는 확신을 주고.
그리고 그녀의 공간을 재배치한다. 조금 씩 더 넓게, 더 밖을 지향해서.

세상 밖으로 그녀를 구출하자.

“돈 따위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선생님 말씀만 따르겠어요!”

수연 씨, 아버님의 열의가 강했다. 어머니께선 의문이 있는 듯 했지만,
아버님은 내게 의문을 던지지 못하도록 어머니를 만류했다. 다행이었다.

어머니께서 “이 방법이 통할까요?” 묻는다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는 답 밖에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환자는 처음이었다. 학계 어디에서도 이런 증례는 없었다.

이것을 치료라고 말 할 수 있는지도 불분명했다. 그저 구조라고 칭하는 게 맞았다.






-下편 끝... 최하편은 가능한 빠른 시간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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