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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어느 중고 컴퓨터 장사의 일기
게시물ID : lovestory_4769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qd
추천 : 7
조회수 : 68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2/11/02 12:50:23

고전입니다.
이제는 못 보신 분들도 많을 것 같아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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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터 아저씨의 이야기 ===


얼마전 저녁때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는 사람 소개로 전화 드리는데요.. 컴퓨터를 구입하고 싶은데...
여기 칠곡이라는 지방인데요.. 6학년 딸애가 있는데...

서울에서 할머니랑 같이 있고요..
사정이 넉넉치 못해서 중고라도 있으면..."
통화 내내 말끝을 자신없이 흐리셨습니다.
82쿡의 어느 분이 소개시켜 주신 것 같았습니다. 82쿡을 모르시더라구요..

당장은 중고가 없었고 열흘이 좀 안 되어 쓸만한 게 생겼습니다.
전화드려서 22만원 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주소 받아적고 3일후에 들고 찾아갔습니다.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어딘지 몰라서 전화를 드리자 다세대 건물 옆 귀퉁이에서 할머니 한 분이 손짓을 합니다.
들어서자 지방에서 엄마가 보내준 생활비로 꾸려나가는 살림이 넉넉치는 않아 보였습니다.
악세사리 조립하는 펼쳐진 부업거리도 보이고...

설치하고 테스트하고 있는데 밖에서 푸닥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 컴퓨터다" 하면서 딸아이가 들어옵니다.
옆에서 구경하는 딸아이를 할머니가 토닥토닥 두드리시며
"너 공부 잘 하라고 엄마가 사주는 거여... 학원 다녀와서 실컷 혀.. 어여 다녀와.."

아이는 "에이 씨~"
한마디 던지고는 후다닥 나갔습니다.
저도 설치 끝내고 그집을 나섰습니다.

골목길 지나고 대로변 들어서는데 아까 그 아이가 정류장에 서 있었습니다
"어디로 가니"? 아저씨가 태워줄께..."
보통 이렇게 말하면 안 탄다고 하거나 망설이기 마련인데
"하계역이요.." 그러기에 제 방향과는 반대쪽이지만 태워 주기로 했습니다.
집과 학원 거리로치면 너무 먼 거리였습니다. 마을버스도 아니고 시내버스를 탈 정도이니...

사건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한 십 분쯤 갔을까?
아이가 갑자기 화장실이 급하다고 합니다.
"좀만 더가면 되는데 참으면 안 돼.?"
"그냥 세워주시면 안돼요?"
페스트푸드점 건물이 보이기에 차를 세웠습니다.

"아저씨 그냥 먼저 가세요"
이 말 한마디 하고선 건물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여기까지 온 거 기다리자 하고 담배 한대 물고 라이터를 집는 순간
속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보조석 시트에 검붉은 피가 묻어 있는것입니다.
"아차 초경...?"
보통 생리라고 생각지 않은 것은 이미 경험한 생리라면 바지에 샐 정도로 놔두거나 모르진 않을 것이기에..

게다가 나이도 딱 맞아 떨어지고..
방금 당황한 아이 얼굴도 생각나고..
담뱃재가 반이 타들어 가도록 속에서 어쩌나 어쩌나 그러고만 있었습니다.

바지에 묻었고 당장 처리할 물건도 없을테고...
아이가 화장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아까 집안 사정 봐서는 핸드폰도 분명 없을텐데...

비상등 켜고 내려서 속옷 가게를 찾았습니다.
아~ 이럴땐 진짜 찾는 것이 없습니다.
아까 지나온 번화가가 생각 났습니다.
중앙선 넘어서 유턴해서 왔던 길로 다시 갔습니다.

버스 중앙 차로로 달렸습니다. 마음이 너무 급했습니다.
마음은 조급한데 별별 생각이 다 났습니다.
여동생 6학년때 초경 생각도 나고...

청량리역 거의 다와서 속옷 가게를 찾았습니다.
아우~ 내가 싸이즈를 알리가 없습니다.
젤 작은 사이즈부터 그 위로 두개를 더 샀습니다.
헌데 속옷만 사서 될 일이 아니더군요.

아이 엄마한테 전화해볼까 하다가 멀리 계신데

이런 이야기 했다가는 진짜 맘 아프실 것 같았습니다.
집사람한테 전화 했습니다.
"어디야?"

"나 광진구청"

"지금 택시타고 빨리 청량리역, 아니 그냥 오면서 전화해 내가 택시 찾아갈께"
"왜? 먼일인데?"
집사람한테 이차저차 이야기 했드니 온답니다.
아.. 집사람이 구세주 같았습니다

"생리대 샀어?"

"인제 사러 갈려고..."
"약국가서 000 생리대 달라구 해. 없으면 000 사. 속옷은?"
"샀어. 바지도 하나 있어야 될 거 같은데...
"근처에서 치마 하나 사오고, 편의점 가서 물티슈도 하나 사와"

장비(?)다 사놓고 집사람 중간에 태우고 아까 그 건물로 갔습니다
없으면 어쩌나 조마조마 했습니다. 시간이 꽤 흐른 것 같기 때문입니다.

집사람이 주섬주섬 챙기면서
"애 이름이 머야?"
"아 애이름을 모른다 들어가서 재주껏 찾아봐"
집사람이 들어가니 화장실 세칸 중 한칸이 닫혀 있더랍니다.

"얘야.. 아까 컴퓨터 아저씨 부인 언니야.."
뭐라 뭐라 몇마디 더하니까 안에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네" 하더랍니다.
그때까지 그 안에서 혼자 낑낑대면서 울고 있었던 겁니다.

다른 평범한 가정이었으면 축하받고 보다듬고 쓰다듬고 조촐한 파티라도할 기쁜일인데...
뭔가 콧잔등이 짠하면서 가슴도 답답해졌습니다.
누가 울라고 하면 팍 울어 버릴 거 같았습니다.

혼자 그 좁은 곳에서 어린애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요?
차에서 기다리는데 문자가 왔습니다.
(5분 있다 나갈께 꽃한다발 사와)
이럴 때 뭘 의미하고 어떤 꽃을 사야될지 몰라서 그냥 아무거나 예쁜거 골라서 한다발 사왔습니다.

건물 밖에서 꽃들고 서있는데 진짜 얼어죽는 줄 알았습니다.
조금 후에 둘이 나오는데 아이 눈이 퉁퉁 부어 있더군요.

집사람을 첨에 보고선 멋적게 웃더니
챙겨간 것 보고 그때부터 막 울더랍니다.
집사람도 눈물 자국이 보였습니다.

패밀리 레스토랑 가서 저녁이라도 먹일려고 하는데 아이가 그냥 집에 가고 싶다고 합니다.

집에 데려다주고 각자 일터로 가기엔 시간이 너무 어중간 했습니다.
어떻세 할까 생각은 하면서도 우리는 이미 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오면서 그집 사정이 이러이러 한 것 같더라 하는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오는데
"그 컴퓨터 얼마주고 팔았어?"
"22만원"
"얼마 남았어?"
"몰라 요번에 82쿡 수원컴터랑 노트북 들어가면서 깍아주고 그냥 집어 온거야"
"다시 주고 오자"

"뭘?"
"그냥 집어 온거면 22만원 다 남은거자나"
"에이 아니지.. 10만원도 더 빼고 가져온거야"
"그럼 십만원 남았네.. 다시 가서 계산 잘못됐다 그러고 10만원 할머니 드리고 와"

"아 됐어 그냥가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구분은 해야지..."
"10만원 드리고 8800 살래? 안드리고 안살래?.."
(새로 나온 그래픽 카드입니다 너무 비싸서 집사람 결제가 안 나는...)

뭐 망설일 여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8800 이 걸려 있었기에...
그 집에 들어서니 아이가 아까와는 다르게 깔깔대고 참 명랑해 보였습니다.

봉투에 십만원 넣어서 물건값 계산 잘 못 됐다 하고 할머니 드리고
그 자리에서 아이 엄마에게 전화해서 램값이 내렸다는둥 하며

대충 얼버무리고 돌려 드려야 한다니 참 좋아 하셨습니다.

나와서 차에타고 운전을 시작했습니다.
집사람이 너무 좋아 했습니다
"어~ 어디가?"
"용산ㅋㅋㅋㅋ"

밤 11시쯤 8800을 설치 끝내고 만끽하고 있을무렵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아이 엄마입니다"여기 칠곡인데요... 컴퓨터 구입한..."

이 첫마디 빼고 계속 아무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저 역시 말 걸지 않고

그냥 전화기에 귀만 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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