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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뇌터’란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게시물ID : science_478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뉴비아이
추천 : 1
조회수 : 657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5/03/24 09:48:13

여러분,‘뇌터이름을 들어보셨나요?


오늘(313)독일 출생(유대인)여성 수학자 이론물리학자인뇌터(Emmy Noether Emmy국이 짜다)생일입니다(사견인데, 미국인들이발음하는걸 들어보면 귀에는'뇌더'들립니다 ^^;).


뇌터(23 March 1882 – 14 April 1935)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수학자 이론물리학자 1명으로 평가 받고 있으며, 수학과 물리학에는 그녀의 이름이 들어간 정리가 다수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들어봤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물리학에 존재하는 그녀의 정리는 흔히 뇌터의 정리(Neother’s theorem)’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어떠한 물리학계의 시공간의 연속적인 대칭성(continuous symmetry) 특정 물리량의 보존성(conservation of physical quantity) 연결시킨 정리로, 당대의 거장이었던 힐베르트(David Hilbert),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에게 찬사를 받았고, 미국의 물리학자 LeonM. Lederman Christopher T. Hill그들의 Symmetry and theBeautiful Universe that Noether's theorem에서 현대 물리학의 발전을 이끌어온 가장 중요한 수학정리 하나”("certainly one of the most importantmathematical theorems ever proved in guiding the development of modernphysics”)라고 평가했습니다. 수학에서도 대수(특히 군론) 위상수학에서 수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현대대수에 대한 그녀의 연구는 신기원을 이루었다(groundbreaking) 평가 받습니다.


하지만 뇌터가 제대로 인정을 받기까지 많은 고난이 있었습니다. 가장 주요한 원인은 시대에 만연했던 여성에 대한 차별이었지요. 1900 그녀는 교사가 요량으로 프랑스어 영어 교사 자격시험을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결졍을 바꾸어 University of Erlangen에서공부를 계속하기로했습니다. 당시로서는일반적이지 않은선택이었죠 왜냐하면2 University of Erlangen대학 평의회에서다음과 같은선언을 하며여성의 공식적인대학입학을 금지했기때문입니다. “혼성교육(Mixed-sex education) 학문의 질서를 전복 시킬 것이다.” 당시 대학은 986명의 재학생 뇌터를 포함한 여학생이 단지 2 이었다고 합니다( 생각에는 그나마 뇌터의 아버지인 막스 뇌터가 대학에서 수학교수로 재직 중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녀와 같은 천재가 차별 때문에 대학에 입학을 못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은 것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면 뇌터가 무사히 대학에 입학했다고 하여 공부를 마음껏 있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뇌터는 정식 학생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청강할 권리만을 인정받았으며, 그것도 듣고 싶은 담당과목의 교수에게 각각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역경을 딛고 뇌터는 1903 7 졸업시험을 통과했습니다. 1 , University of Erlangen여성 입학제한이 철회되었고,1904 10월에뇌터는 정식으로University of Erlangen입학하여 전공으로수학을 선택하였습니다.1907 박사학위를받고 이듬해인1908University of Erlangen 수학과에서교편을 잡았으나,그녀의 시련은아직 끝나지않았습니다. 그녀는1915까지 무려7년간급여 없이강의를 하였고공식적인 직위또한 없었습니다.


1915, 뇌터는 수학계의 거장이었던 힐베르트의 초청을 받고 괴팅겐 대학(University of Göttingen)으로 직장을 옮겼습니다. 물론 괴팅겐 대학에서도 처음엔 공식적인 직위 급여를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뇌터의 정리’(물리학) 증명해 내며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였고, 1 대전이 끝난 , 1919년에 마침내 종신교수직을 얻게 됩니다(남은 생애 전체를 괴팅겐 대학에서 보내진 않았습니다. 나치정권의 유대인 차별정책 때문이지요).


글이 생각보다 길어졌네요 ^^. 뇌터는 평소에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던 학자인데, 마침 구글 메인페이지에 개제되어있는 것을 보고,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평생에 걸쳐 여성에 대한 차별 및 유대인에 대한 차별로 고난을 겪어온 뇌터를 많은 분들이 알게 되어 (사후이지만)그녀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합니다.


참고 문헌 : http://en.wikipedia.org/wiki/Emmy_No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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