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팅, 할머니 힘내세요." 3일 오전 11시께 대구 달성군 포산고등학교 본관에서 교실 창문 밖으로 학생들이 머리를 내밀고 외쳤다. 이 학교에 들어서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85) 할머니가 학생들을 보고 미소지었다. 기숙형 자율형 공립고인 학교에 보충수업을 하러 등교한 학생들은 언론을 통해 자신의 학교가 역사 왜곡 논란 속의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채택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졸업을 앞둔 김정은(18)양은 이날 페이스북에 "정말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라고 적었다.
이 할머니는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10월항쟁 유족회, 5·18 부상자 동지회, 4·9 인혁열사 계승사업회, 대구경북 민주화운동 계승사업회, 한국전쟁후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구지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대구지역본부 등 8개 단체 회원 20여명과 함께 학교 별관에서 김호경 포산고 교장 등과 마주 앉았다. 이 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고였고 "우리가 일본군에 끌려가 어떤 고초를 겪었는데…"라며 울분을 쏟아냈다.
이 할머니는 "교학사 교과서를 보면 '위안부가 일본군을 따라다녔다'고 쓰여 있는데, 그러면 나는 15살 때 일본군에 끌려간 게 아니라 스스로 위안부가 됐다는 말이냐. 포산고가 어떻게 이런 식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교과서를 채택할 수 있느냐"고 거세게 항의했다. 교학사 교과서는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해 "한국인 위안부가 전선의 변경으로 일본군 부대가 이동할 때마다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10월항쟁 유족회 채영희(69) 대표는 "1946년 미군정 시대에 발생한 대구 10월항쟁은 쌀값 폭등 등에 항의한 민중항쟁이다. 유족들이 수십년간 싸워 10월폭동을 '10월사건'으로, 또 '10월항쟁'으로 겨우 바꿔놨는데, 교학사 교과서는 이를 다시 '10월폭동'으로 되돌려놨다"고 항의했다.
임성무 전교조 대구지부 부지부장은 "회의록을 보면 학교운영위원회는 역사 교과서를 심의하며 고민했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포산고가 있는 대구 달성군은 보수 성향인 대구 안에서도 보수적 색채가 짙은 곳으로 꼽힌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국회의원이던 시절 지역구였다.
김호경 포산고 교장은 "교과서 채택 문제로 본의 아니게 많은 분들에게 마음을 아프게 한 데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 학교운영위원회를 긴급 소집해 교학사 교과서를 제외한 나머지 교과서 가운데서 한국사 교과서를 다시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 9명은 지난달 26일 "교학사 교과서는 대한민국의 자주성을 부정하고 일제의 침략을 정당화하며 대한민국 존립 근거를 부정하고 있다"며 서울서부지법에 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상태다. 오는 7일 첫 심문기일 이후 재판부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 교학사 교과서는 곧바로 배포가 금지되며 이미 배포된 학교에서는 이 교과서로 수업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