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오유과거] 산문 - 누나
게시물ID : readers_47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마루〃
추천 : 3
조회수 : 27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2/12/02 04:21:50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안아주었다

눈물이 차 올랐지만 흘리고 싶진 않았다. 그녀는 울지 않았고 그저내 등을 어루만져 줄 뿐이었다

그 사람의 마음이 등을 통해 심장까지 닿았기에 더욱 울 수 없었다

그녀는 나를 사랑했고, 나도 그녀를 사랑했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녀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가장어린 부분의 삶부터 함께였다

같은 집에서, 같은 밥을 먹고, 같은 곳에서 놀고, 같은 장난감과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나이가 조금 들어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땐 같이 학교를 갔고 같이 집에 왔다

특히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이었을 때 나는 안심했다.그녀와 같은 반이라는 사실이 너무 큰 힘이 되었다

그녀는 나의 누나였고 우린 이란성 쌍둥이였다. 그렇게 나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안심됐다. 하지만 나의 안도감은 잠시뿐

중학생이 되고 누나는 여중, 나는 남중에 가게 되었다

중학교에 입학 전날 밤 누나에게 했던 학교 가기 싫다. 니도 없다 아이가라는 말에 웃으면서

  니는 내보러 학교가나. 내는 나 오면 집에있으께라고 달래는 모습이 고맙고 좋았다

그러면서도 한동안 집에 바로들어가지 않았다. 혹시 내가 집에 갔을 때 누나가 없으면 이라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항상 누나는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언제까지나누나는 날 기다려 줄 줄 알았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누나를 불렀지만 집은고요했다.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외로움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날은 너무 길었다. 내 인생에서 기다림이란 것이 이렇게 길게 느껴진 적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어서 누나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을 뿐 이었다

그러고나서도 한참 후 누나가 집으로 돌아왔다. 교복은 찢어지고 얼굴은 부어있었고

눈은 충혈되어있었고 방금 전까지 울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무슨일이냐고 다그치는 내 앞에서 

누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한참을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그대로 끌어안고 한참을 서 있었다

나중에 돌아온 부모님의 다그침에도 누나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고 그저 넘어졌다고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 후로 누나는 사람이 많은 곳, 특히 남자가 많은 곳은절대로 가지 않았다. 대신 누나는 온라인 게임에 재미를 붙였다.

 

시간은 또 흘러, 다시 누나와 나는 한번의 졸업과 한번의 입학을 하게됐다.

누나는 여전히 여고로 진학을 했고, 나는 남고로 진학을 했다. 둘 다 인문계로 진학했기 때문에 서로 만날 시간은 

중학교 때와 비교해서 현저히 줄어들었다. 대신 주말에 집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주로 친구들이랑나누었던 시시콜콜한 잡담과, 학교생활에 대한 에피소드를 누나에게 말해주었고

누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는 간혹 학원이나 근처 여학교에서만난 여자애 이야기 등 내 개인적인 고민들을 털어놓았던 반면

누나는 전혀 자신의 이야길 들려주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누나가 고등학교 입학 후 처음으로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눈에 밟히는 후배가 있다고 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나랑 비슷한 느낌이난다고 말하는 그 후배가 자꾸 신경 쓰여서 수업에 집중이 안 된다고 말하는 누나에게

그렇게 신경 쓰이면 말 걸어보라고 조언했다

그러고 얼마 후 누나는 나와 대화할 때마다 그 아이의 이야기만 하게 됐다.

 

누나와 그 후배의 이야기는 누나와 같은 온라인게임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알려진 이야기가 되어있다는 사실은 나중에알았다

아마도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런저런 이야기 하기 쉬웠던 것이겠지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누나도 조금씩 활기를 찾아갔다.

어느 날 누나는 그 후배와 사귀게 되었다고 했다. 게임을 하던 사람들의충고가 약이 되었다고 했다

사실 별 생각은 없다. 그게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고 나한테 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사회의 편견이나 시선보다는 개개인의 행복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누나를 축하해주고 가끔 셋이서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기도 했다

그관계가 오래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했지만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생각도 했었다

아무래도어린 나이에 성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시기이기도 하고 순간의 감정에 휩쓸린 것 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역시나 얼마 지나지 않아 누나는 후배의 일방적인 이별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그때만큼은 누나는 내 앞에서울었다. 밤에 내 방에서 내 팔에 기대서 소리 없이 울었다

그때난 누나가 불행한 것이 안쓰러웠지만, 누나가 나에게 의지하는 게 기쁘기도 했다.

 

누나의 사랑 병은 오래갔다. 간호사 지망이던 누나는 수능시험이 끝나자마자 대학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를 구했고 돈을 모아 

이듬해 6월에 독립했다. 몸이 바빠야 마음이 편하다는 이유였다.  

나는 지방 국립대에 합격해서 대학생이 되었고, 가끔 누나를 보러 갈 뿐이었다

가끔 누나를 만나면 이런 저런 이야기를많이 나누었다. 나는 누나에게 학교이야기를 많이 했고 

누나는 아르바이트를 같이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손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리도 다시 누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복학하고 1년이지나 다시 학교생활에 적응이 될 즈음

누나는 죽었다.

손목을 그었다고 했다. 영안실에서 창백한 누나를 봤다. 핏기 없는 누나를 봤다. 그냥 봤다.

누나의 장례식에는 많은 사람이 오지 않았다. 친척들과 누나의 고등학교친구가 전부였다.

그렇게 몇 안 되는 사람들의 방문 속에 누나는 재가 되었다.

 

누나가 떠난 후, 누나의 물건을 정리하러 갔다. , , 화장품, 가재도구 전부 버렸다

혹시나 하는 기대에 누나가 기록을 남겼을만한 물건을 모조리 확인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허탈한 마음으로 그렇게 누나가 살았었던 증거들을 지웠다.

 

그날 밤, 눈이 왔다. 사실그 눈이 진짜 온 눈인지

누나의 장례와 짐 정리들 때문에 피곤해져서 꿈에서 본 눈인지 아직도 확실하지않지만 눈이 내렸다.


그리고 눈을 맞으며 누나가 서 있었다. 누나는아무 말 없이 나를 안아주었다

눈물이 차 올랐지만 흘리고 싶진 않았다누나는 울지 않았고 그저 내 등을 어루만져 줄 뿐이었다

누나의마음이 등을 통해 심장까지 닿았기에 더욱 울 수 없었다

누나는 나를 사랑했고, 나도 누나를 사랑했다.


fin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