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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administration
게시물ID : humorstory_1485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뽀씨즌
추천 : 1
조회수 : 45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08/01/18 22:07:08
출생과 성장

허경영이 스스로 밝힌 이력에 따르면, 허경영은 1950년 초 겨울 서울 중량교 다리 밑 가마니 움막에서 출생하였다. (호적 상의 1947년생은 호적상 생일일 뿐이라고 한다.) 이에 대한 이야기가 아래의 이야기이다.

그의 자서전적인 책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에 그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가 자세히 실려 있다. 이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인 허남권(許南權. 1918 ~ 1950)은 훗날 GS 그룹의 일가가 되는 허정구의 조카(라고 허경영이 주장한다.)로 원래는 부유하였으나, 물려받은 전답을 소작인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준 후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한국 전쟁 발발 사흘 전인 1950년 6월 22일 처형당한다. 허경영이라는 이름은 그의 아버지가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당하기 직전 "서울을 세계의 중심이 되게 해서 가난한 국민들을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허경영은 어머니인 조계식(趙桂植)이 아버지의 면회를 위해 중량교 다리 밑 가마니 움막에서 살고 있었을 당시에 태어났다고 한다.(그의 책에 따르면, 1950년 1월 1일이 실제 생일인지는 불확실하나 1950년 겨울 때 태어난 것만은 확실하다고 한다.)그때 어머니는 겨울 날씨 때문에 산후병을 얻었으며 병을 이기지 못하고 허경영이 4살 때 죽었다고 한다. 한국 전쟁의 틈 속에서 전쟁고아가 되어 지리산의 농부의 양아들이 되어 그 밑에서 여러가지 유교 서적을 배웠다. 사춘기가 된 1964년에는 다시 서울로 올라와 수유리 화계사의 중이었던 이행원의 양아들이 되어 팔만대장경을 공부하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1966년에는 광화문 내수동교회의 홍근섭 목사의 양아들이 되어 성경을 공부하였다. 1968년에는 삼성의 이병철 회장의 양자가 되었다고 하나, 사실 여부는 판단할 수 없는 상태이다. 각 종교계 인사와 유명 기업인의 양아들이 된 허경영은 1969년부터 박정희가 사망할 때까지 비공식적인 정책보좌역을 맡았다고 주장한다.[3]

그는 새마을 운동과 방송통신대 설립도 자신이 주도하였다고 주장하나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근거는 전혀 제시되지 않고 있다. 또한 그는 자신과 한국 주요 재벌 기업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병철의 양아들이라는 주장은 물론, LG그룹과 GS 그룹의 창설 과정에도 허경영이 자신의 조부에게 아이디어를 낸 것이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사실로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한 자신을 양아들로 삼았다는 스님이나 목사의 경우 역시, 현재 본인이 생존해 있지 않기 때문에 조작인지 사실인지 전혀 알 길이 없다.




-처출 위기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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