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온다.
눈뜨고 창을 여니 새하얀 눈이 날린다.
날리는 눈발사이로 흐리멍텅한 해가 떠오른다.
세상은 하얀 도화지 되어버린 오늘도
밑그림 하나 못그린 난 또다시 재료들만 구하러 나간다.
남들이 그려놓은 형형색색 그림들속에
밑그림 하나 못그린 난 또다시 한숨쉬며 고개만 떨군다.
그리고 다시 그리고 지우고 다시 그리고
칠하면 못 지울까봐 아직도 지우고 다시 그린다.
그렇게 해지고 지저분해진 도화지인데
아직도 하늘엔 새하얀 눈이 날린다.
내리는 눈발에 손을 내민다.
차가웁게 내려앉은 눈송이가 금세 사라진다.
손바닥위로 내려앉던 눈송이들이 방울져 떨어진다.
시리운 눈송이들이 눈에 들어가 방울져 흘러내린다.
추운줄 모르고 웃었던 어릴적 겨울날도
흐릿해진 어릴적 꿈꾸던 날들도
그리다 지우고 칠못한 도화지앞에
스물일곱해 첫눈은 그리움만 주고 녹아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