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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금]신세계에 다녀왔습니다
게시물ID : movie_1015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시우처럼
추천 : 1
조회수 : 81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3/01 00:48:01


원래 영화를 볼 생각은 없었는데
닌텐도 삼다수를 팔고 목돈이 들어온 탓에 충동적으로 영화를 예매했더랬죠.

잠시 영화 이야기를 하기 전에,
국제전자센터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국전에서 서초동쪽을 바라보면 저렇게 내리막길이 있습니다. 

국제전자센터. 거의 5년 만에 처음인듯.


한우리라고, 국전에는 유명한 게임전문 상점이 있죠. 거기에 풀박스로 무장한 삼다수를 들고 갔습니다.
제 앞에는 XBOX를 팔러 온 사람이 있었는데, 점원이 이러저리 엑박을 살펴보더니만
대충 18만원 정도 나오시겠어요. 하며 모니터에 연결한 XBOX를 켰는데. 

맙소사. 저는 그곳에서 말로만 듣던 레드링을 보게되는 기연을 얻었다고나 할까요? 

아아... 

레드링 떴는데요? 하는 점원의 말과 함께 그 남자분의 얼굴에 떠오르던 그 썩은 미소.
인간 희노애락의 모든 스펙트럼을 한데 버무린 듯한 표정이 활어처럼 그의 얼굴에서 꿈틀댔습니다.

저는 웃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남의 비극 앞에서 주책없이 웃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결국, 그는 고쳐서라도 팔겠다는 건지 근처에 있는 XBOX 수리점의 위치를 물었고
점원은 담담하게 위치를 알려주었으나 아마도 고치는 비용이 더 들지 않을까, 하여 
고철을 들고 멀리서부터 왔을 그가 무척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어쨌든 레드링이 어쨌던지 간에
저는 아무 문제없이 저의 볼 일을 마쳤고, 손안에는 근래에는 구경도 못해보던 화폐의 다발이 들어왔죠.
문득, 이 돈으로 영화를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마음이 불꽃처럼 일어났습니다.

저는 휴대폰을 열어 영화 예매 어플을 실행했습니다.
신세계가 평점이 좋았던 것을 기억한 저는 바로 신세계를 검색했고
위치와 시간은 송파CGV 4시 25분, 현재 시간은 3시 40분.
요즘은 교통이 좋아져서 환승이 아다리만 맞으면 아마도 40분 안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좋아, 결제다.' 

현금이 생겼지만
저는 언제나 IT를 사랑하는 관계로 
휴대폰 결제를 이용해 좌석을 애매했습니다.

얼마전 영화값이 9000원으로 올랐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가격은 여전히 예전과 같은 8000원이더군요.
왠지 천원을 절약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 저는
G열의 가운데 자리를 예매했습니다.

그것이 종국에는 대참사로 이어질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말이죠.

영화관에 도착하니 10분정도 시간이 남아있었습니다.
점심을 굶었던 저는, 역시 영화관에는 팝콘이지! 하며
매대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이놈의 사회는 왜 이모양인지
메뉴판에 있는 메뉴가 왜 죄다 커플메뉴임요?
팝콘이야 그렇다 치고, 콜라가 두개인 것은 어쩔 도리가 없더군요.
그래서 저는 영화관에 혼자 왔지만서도 당당하게
팝콘이랑, 콜라 하나만 계산하면 얼마죠? 라며
점원에서 물었고, 아마도 나보다 나이가 어릴 듯한 커운터 직원은 
7500원입니다. 하며 가격을 선고했습니다.

후후, 오늘 나의 지갑에겐 7500원 따윈 우습도다.

충만한 풍요로움 속을 헤염치며, 저는 무려 500원을 추가해 치즈 팝콘을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받아든 팝콘과 콜라
콜라는 대략 1리터는 될듯 무거웠고
팝콘은 제가 생각했던 사이즈를 가볍게 상회하는 그야말로
빨래 바구니와 같은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헐, 이거 왜 이렇게 많아.

이걸 다먹으면 분명
트랜스지방으로 혈관이 세척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치즈의 향기가 옥수수의 고소한 내음과 어울려 조화롭게 후각세포를 자극하는 것을 버텨낼 수가 없었습니다. 

몰라, 먹다가 남으면 버리지 뭐.

아프리카 난민들이 들으면 혀를 찰만한 결정을 내리곤 저는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혼자서 거대 팝콘과 거대 콜라컵을 들고 가는 것은 예상외로 얼굴이 뜨거워 지는 것이었습니다.
혼자온것도 서러운데, 누가 보면 먹을거에 환장한 심신미약자로 볼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사버린걸 어떻하겠습니까.

얼굴이 붉어지지 않도록
간신히 마음을 다잡으며 어두컴컴한 암실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직 영화가 시작하기 전이여서 그런지
영화관에는 아직 사람들이 절반 정도 밖에 차있지 않더군요.
저는 어둠속에서 안력을 돋아가며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G10

7번째 줄의 정가운데가 제 자리였습니다.
자리로 들어가 주섬주섬 몸을 정돈하게 자리에 앉은 저는 언제나 그렇듯 주변을 두리번 거렸죠.
제가 앉은 가운데 좌석의 맨 오른쪽으로 남자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혼자 영화관에 찾았는지, 그도 저처럼 묵묵히 삶의 고독을 즐기는 듯 했습니다.
다만 제가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 것과는 다르게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만을 바라보고 있어서, 아아. 이거슨 그야말로 한마리의 학이 아닌가!
할 정도의 절제의 미덕을 보여주고 계셨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얼마지나지 않아 커플들이 득세할 영화관의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도
기필코 흔들리거나 슬퍼하거나 좌절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천명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순간, 제 머리속에 불길한 예감이 스쳐지나갔습니다.
혹시 아까 예매를 할때 가운데 자리만 남아 있었던 것은 어떤 불길한 사건의 전조가 아닐까?
혹시 나의 양 옆에 좌연인 우커플의 난세의 형국이 펼쳐지는 것은 아닐까?
나는 마치 지층사이에서 압축되었던 공룡의 육신처럼 검은 눈물로 화하게 되는 것일까?

불안감이 마약처럼 전신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애써, 아닐꺼야. 세상이 꼭 그러리란 법은 없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커플인 것도 아니고
게다가 이 영화는 커플들이 즐겨찾을 그런 영화가 아니잖아?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왜 틀린적이 없나.
호호깔깔 웃는 커플이 제 옆으로 불쑥 다가왔습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센스있는 남자가 제 옆 자리에 앉을 테지만'이 커플은 그런 에티켓은 고려하지 않는 것인지
여자가 떡하니 저 옆에 앉더군요.

여자가 옆에 앉으니 기분이 참 좋긴.. 개뿔,
커플인 여자는 정중히 사양하는 바.
그들이 소근거리며 속삭이는 대화가 지근거리에서 들려오는 것이 아주 그냥 미치고 팔짝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등장한 커플.
아아, 신은 역시 나를 버리지 않으셨어.
다행히도 모녀커플인 듯한 두 여성분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커플이 아니라면 강아지 두마리가 들어와도 환영할 판이었던지라,
저는 마음속으로 쌍수를 들며 환영했지만 그 두사람은 제가 앉은 중간 좌석라인의 맨 왼쪽에 앉더군요.

그런데, 갑자기
모녀중에 어머니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바닥에 팝콘을 냅다 팽개치는게 아닙니까?

순간 두 모자의 시간이 멈춘듯 정적이 흘렀습니다.
카펫트 위에는 어느새 팝콘들이 봉우리지듯 장엄하게 솟아올라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들의 간식거리는
미처 그녀들의 미각에 채 닿기도 전에 바닥과 함께 나뒹굴었고
모녀는 불륜의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처럼 잠시 말이 없었습니다.

저는 오늘따라 빵터지는 주변 상황에
터저나오느 웃음을 참으려 노력했지만
간혈적으로 들썩이는 어깨까지 견디어 낼 수는 없었습니다.

아무튼, 간신히 정신적 흥분상태를 가라않치자
악몽처럼, 비어있는 제 옆 두자리의 존재가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제발, 커플은 아니길. 커플만은... 신이시여.

그렇게 성심을 다한 기도 올린 탓인지
광고가 시작되고 영화시간이 가까워지는데도 자리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빈 자리일지도 몰라 하며 저는 잠시 헛된 기대를 했습니다만,
어? 이쪽으론 안돼겠네. 저쪽으로 돌아가야겠다. 하며 나불거리는 커플의 등장은
신의 장난인지 악마의 농간인지... 

그들은 스크린 앞쪽으로 돌아 
너무도 당당히 제 왼쪽 옆자리로 다가왔습니다.

아아, 드디어 좌연인 우커플이 완성됐어. 완성됐다고! 흐흐흐흐
눈물 없는 절규가 내면속에서 터저나왔습니다.

좌우에 커플을 끼고 앉아 품속에는 거대 팝콘을 껴않고 한손으른 콜라를 거머진 제 모습이
연변 거지처럼 초라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의 공황상태는
영화가 시작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혀졌습니다.
초반부터 피와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의 자태에 넋이 나간 저는
영화가 상영되는 시간동안 물아일체의 경지에 다달았던 걸까요?

연기자들이 어찌나 연기를 잘하던지.
이정재와 박성우씨가 얼굴 전체로 표현한 경련의 살떨림은
세상에 저런것도 인위적으로 통제가 가능한 것인가? 할 정도로 놀라웠다고 할까요?

물론, 영화내용도 흥미진진하니 스펙타클하여 좋았고
전라도 사투리에 욕을 맛깔나게 버무린 황정민씨의 연기도 좋았습니다.

남자들의 우정과 권력, 도덕률등이 복잡하게 얽힌 이 영화는
그야말로 실존주의에 있어서의 역할갈등적인 요소를 잘 표현한 것 같다고 할까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 인물들의 갈등이 생생하게 화면 너머로 전달되는 듯 싶었습니다.

그나저나, 영화 끝나고 엔딩 크레딧 올라가는데
류승범이 우정출연 했다는 건 또 뭥미?
난 본적이 없는데? 
대체 언제 나온 것이냐...

혹시, 박성웅이 황정민과 구치소에서 대화를 나눌때 뒤에서 기록하던 순경이 류승범인가? 


어쨌든 신세계 안보셨다면 꼭 보세요. 두 번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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