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몽골인이 되어 조국과 동포를 핍박한 고려인, 홍다구
일제시대에 친일파가 있었다면, 고려시대에는 친원파가 있었다.
일제시대에 창씨개명을 하고 완전 일본인이 되어 일본의 앞잡이가 된 사람이 있었는데,
고려시대에도 창씨개명을 하여 몽골인이 되어 몽골의 앞잡이가 된 사람이 있었다.
그중에 한 사람이 바로 홍다구이다. 그는 고려, 조선조를 거치면서 오늘날까지 홍문(洪門) 중에서 제1을 자랑하는 남양홍씨 가문 사람이었으며, 여름철 우리들이 제일 좋아하는 수박을 우리나라에 들여오기도 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니겠는가.
[홍다구(洪茶丘, 1244~1291)] <홍다구, 몽골의 앞잡이가 되다>
본관 남양(南陽). 본명 준기(俊奇). 몽골명 찰구이(察球爾). 원나라에 머무르며 전쟁에 종군하여 용맹을 떨쳤다. 1254년(고종 41) 몽골의 장수 차라다이[車羅大]가 고려에 침입할 때 모국에 해를 끼치고, 1261년(원종 2) 관령귀부고려군민총관(管領歸附高麗軍民摠管)이 되었다. 1271년 재차 고려에 들어와 봉주(鳳州:鳳山)에 둔전총관부(屯田摠管府)를 설치, 이해 삼별초(三別抄)의 난이 일어나자 고려장군 김방경(金方慶)과 함께 이를 토벌했다.
1274년 원나라가 일본 정벌을 계획하자 소용대장군(昭勇大將軍)으로 감독조선관군민총관(監督造船官軍民摠管)이 되어 조선공사(造船工事)를 가혹하게 독촉, 고려인의 비난을 받았다. 이 해 충렬왕이 즉위하자 도원수 홀돈(忽敦) 휘하에서 동정우부도원수(東征右副都元帥)가 되어 대마도(對馬島) ·이키섬[壹岐島]을 공격하고, 1277년(충렬왕 3) 정동도원수(征東都元帥)가 되어 고려에 주둔했다. 이듬해 위득유(韋得儒)가 김방경이 왕을 죽이려 한다고 무고하여 김방경이 투옥되자, 가혹하게 대했다. 그해 원나라 황제의 소환을 받고 돌아갔다. 1281년 제2차 일본정벌 때 우승(右丞) 실도(實都)와 4만 군사를 이끌고 합포(合浦)를 떠나 범문호(范文虎)의 10만 군사와 합세하여 이키섬 ·히라가섬[平賀島] 등지에서 싸우다가 태풍으로 군사를 잃고 돌아갔다.
<홍다구, 우리나라에 수박을 들여오다> 허균이 쓴 ‘도문대작(屠門大嚼)’을 보면 “고려를 배신하고 몽골에 귀화하여 고려 사람을 괴롭힌 홍다구(洪茶丘, 1244~1291)가 처음으로 개성에다 수박을 심었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경향신문>)
허균이 쓴 ‘도문대작(屠門大嚼)’을 보면 “고려를 배신하고 몽골에 귀화하여 고려 사람을 괴롭힌 홍다구(洪茶丘, 1244~1291)가 처음으로 개성에다 수박을 심었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