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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고게분들 상담을 드린다고 글을 올린 검은날개입니다.
게시물ID : gomin_47913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검은날개
추천 : 3
조회수 : 222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2/11/19 00:50:54

또 새벽이라 또 금새 묻힐 수 있겠네요

오늘 홀로 지난 추억을 떠올리다가 생각난 것이 있어서

혹시 저와 같은 상황에 처한 분들이 계시지 않을까 해서 블로그에 방금 올린 글을 여기에도 올리고자 합니다.

스압이 있지만 조금이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세 분 정도 메일로 연락을 주셨는데 도움을 제대로 드렸는지 뭐했는지 모르겠어서요..

다들 파이팅하는 날이 꼭 왔으면 좋겠습니다.

반응이 좋으면 그냥 매주 한 번씩 생각했던 글들을 고게나 좋은글에 올릴까 합니다.

부디 보고 많이들 힘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사람은 모두가 자신이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어처구니 없는 부분이라면 인정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늦게까지 11시까지 야근을 했는데
누군가 '그거 끝내려면 2시까지는 해야하지 않아?' 라는 말을 한다면
분명 화를 낼 것이다

그런데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안에 얼마나 집중하였고 놓친 부분이 없이 일처리를 했냐는 것이다
야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보고서가 아니라 다시 해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지 않은가?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서도
분명 나는 최선을 다 했고
받아들이는 사람 역시 그 부분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근데 그러한 부분이 이벤트에 머물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세세한 부분까지도 포용하는 것인지
자기 만족에 머물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함께 느끼고 있는 것인지
그건 정말 진지하게 생각을 해볼만 한 것 같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타인이 자신에게 잘해주는 부분을  느끼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고마움을 느낀다
배려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기본에 충실하고 있는지 난 의문이 든다

나는 기본에 충실하였는가?
솔직한 말로 나는 실패자다
며칠 간의 반성과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된 것은
나의 잘못과 타인의 잘못을 비교했을 때,
어느 누구도 우위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가령 내가 좋은 이야기를 해준다고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듣기싫어한다면 그건 나쁜 말이 되는 것이다.
결국 그 이야기를 해주기 위한 밑밥을 깔아주는 방법을 찾는 것이 
바로 말실수를 줄이는 지름길이 아닌가 싶다.

그 밑밥은 바로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중립을 지키면서 대화를 하는 힘을 기르는 방법이라 결론내렸다.
사랑하는 사람, 혹은 좋아하는, 아끼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멍청하게 감정을 이입시키는 짓이 대화를 망치는 지름길이라는 걸 오늘 깨달았다.

['아'다르고 '어' 다르다]
[말에는 힘이 있다]
[말조심을 해야 한다]
[언제나 듣기를 많이하고 말은 줄여야한다]
이 말들을 항상 가슴 속에 담아두고 살아나가고자 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 법을 익히고자 한다.
예를 들면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을 행동만으로 보여주는 것은 너무 고차원적인 사랑방법이라 생각한다
말을 통해 그 사람의 대뇌 전두엽을 치는 것이 어떤 상황에서는 가장 효율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 부분에는 진실성과 행동이 함께 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말의 힘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나의 잘못으로 모든 일이 그르쳤다는 것이다

나를 바라보는 그 사람의 믿음, 신뢰,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말은 언제나 타인의 입장에서 듣고 싶은 단어와 문장을 선택해야 한다

내 의견과 생각을 직설적으로 언급하는 것도 좋지만
그 사람이 듣고자 하는 것을 표현하여
나의 생각을 흘리 듯 내뿜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고자 한다

나는 앞으로 변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20년 30년 50년이 흘러도
처음 만난 그 생각, 그 마음 그대로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단편적인 부분만을 봤지만
계층과 나이가 변해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걸 느꼈다

상대가 말하는 부분을 캐치하여 그걸 언급해주고 진정 시킨 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 아닌,
속으로만 이해하고 발언권을 받았을 때 자신의 말만을 고집하고 자신의 입장만을 말하는 방식은
시간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는 걸 느꼈다

결국 자신을 얼마나 바꾸려고 하는지
얼마나 되돌아보고 반성을 하는지
과거 조상들이 말하던 학문을 익힌다는 것.
불교에서 '학생'이라는 단어를 묘비에 쓰는 이유.
그리고 철학책 첫 시작에 나오는 '나는 누구인가?'
이러한 부분을 모르고 살아간다면 시간이 지나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느꼈다

물론 세월과 경험으로 잠시 변화는 할 수 있지만
기존에 가지고 있는 사상에 덧붙여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완성형 나'를 만드는 과정일 뿐
결국 뿌리는 똑같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고자 한다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뿌리를 뽑고 새로운 나무를 심고자 한다

사람들이 나를 되돌아보지 않는 이유.
그건 돈이 들어가지 않고 나를 볼 시간보다 내일을 볼 시간이 더 앞에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밥을 먹고, 회사를 가고, 어떤 업무를 하고, 점심을 뭘 먹고, 오후 근무를 하고, 졸리니 커피를 마시고, 퇴근을 하고, 집에 오는 지하철 안은 사람이 많을까, 저녁을 먹자, 자기 개발을 위해 책을 읽자, 내일 출근을 위해 잠을 자자


이게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에 모습이다.
이 하루동안 '나'는 없다
결국 하루, 한달, 일년, 인생을 살면서 '나'를 볼 시간이 '있다 뭘하지'를 보는 시간보다 적다는 뜻이다.
과거 조상들이 책을 보며 자신을 채찍질하고 변화하며 살아갔다.
스님들은 수행을 통해 자신들의 부족함을 알고 변화해 나간다
수녀님과 신부님들은 성경을 바라보며 내 잘못을 탓하고 항상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려 한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대부분이 그렇지 않다
그나마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기도를 하면서 고해성사를 통해서 자기를 바라보고 선하게 살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그것도 몇몇일 뿐. 그 부분을 오해하여 빠져들거나 타인을 배척하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

나는 이렇게 살지 않을 것이다
나를 위해서도 내 배우자를 위해서도 내 자식을 위해서도
말로만 3살짜리 어린애한테 배울 점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어리다 할지라도 '너 따위가 훈계를 해?' 라는 생각이 아닌,
이문열이 진중권을 개무시하며 자신과 동급이 되려고 날 까냐는 식으로 비아냥거린 삶을 살지 않을 것이다.
이황처럼 지방 선비가 정책과 사상에 대해 개념없이 까도 나의 생각을 토대로 모두 변론할 것이다
나는 그러한 삶을 살 것이다.

그리고 틀린 부분이 있다면 그게 어느 누구의 말이라 할지라도
나의 정당성을 흔드는 말이라면
헛소리가 아니라면
단순한 지적질이 아니라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변화해 나갈 것이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인간관계의 기본이라 생각한다
난 기본을 지키며 살아갈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썼던 모든 것들은 나를 포장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말헀던 모든 것들 역시 나를 포장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정말 거짓없이 나를 보자
왜 성인들이 '내 탓이다' 를 말하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줬는지
날 포장하려는 생각하지 말자
치졸하고 옹졸하게 날 감싸지 말자

항상 반성하면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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