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가 되서 남녀합반을 하면서 널 처음 봤다
처음에는 그냥 있는 줄도 몰랐는데 수학여행을 갔다오고 자리를 바꾸고
어쩌다 내 대각선에 앉게 되었길래 그 때 부터 알았다
내 이상형은 원래 키 큰 여자인데 넌 2학년 여자 중에 제일 컸다.
물론 겉모습만 보고 널 판단한건 아니다
같이 미술쪽으로 간다는 걸 알고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내가 공부도 쫌 하는 상태였기에 이것저것 가르쳐주면서 친해졌다
너랑도 친해지고 네 친구들과도 친해지면서 자주 만나게 되었다
시험기간에 가끔씩 카페에 같이 모여서 공부하기도 하고
밤 늦은시간에 지친 몸을 이끌고 나와서 같이 바람을 쐬기도 하고
둘이서만 몰래 가서 서로 알아낸 시험 정보를 공유하고 나오다가 반 친구 라이벌을 만나자 둘러대는
그런 일상이 행복했다
너는 내가 알던 애중 제일 착한 애였다
남의 부탁을 거절할 줄 몰랐으며 남을 대할 때 얼굴에 싫은 기색 하나 없이
항상 웃는표정이었고
자신을 희생하기를 좋아하는
지나친 착한 애였다
그렇게 너를 좋아해왔다
사실 살면서 지금까지 이렇게 누군가를 좋아해본적은 없었다
초등학교 떄 좋아했던 아이도
중학교 때 좋아했던 아이도
그냥 일주일쯤 안봐도 별 상관없고
안 보이기 시작해도 별 관심도 없는 상태였다
근데 넌 아니었다
대학 가기전에 여친 만들면 인생 망한다
여친은 대학 가서 사귀자
라는 인생 모토를 철저하게 지키는 나에게
넌 그 모토를 아무렇지 않게 깨준 유일한 반례였다
그렇게 6달을 좋아해왔다
매일 아침마다 확인하는 카톡 프로필이 익숙 해질 때쯤
가을이 찾아왔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가을을 타서 충동적으로 한건지도 모른다
한달 전 너에게 고백을 했다
주변 친구와 후배도 이러다가 너 병나겠다고 확 저지르라고 바람 불어준것에 힘입어 결국 했다
생일이 며칠 지났을 떄
생일 선물을 못 챙겨줬다는 이유로 불러내 생일 선물을 주면서
나도 며칠전에 생일이었는데 생일 선물로 부탁하나면 들어주면 안되냐고 했다
그래서 생일 선물로 나랑 사귀어 달라고 했다
무척 당황한 눈치였다
하지만 당황하면서도 정색이나 굳은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준 생일선물을 들고 몸을 배배꼬면서 계속 웃기만 했다
자기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랜다
내가 이렇게 고백할 줄은 몰랐다면서 당황스럽다고 했다
꼭 지금 대답해야 되냐고 물었다
지금 해주면 안되냐고 했다(지금 생각하면 에휴...ㅉ)
계속 음음 거리면서 배배꼬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웃고 있었다
너랑 나랑 둘이 엄마끼리도 친하고 들키면 난리나는데 어떻게 할거냐 했다
그거야 물론 나도 생각해놓은게 있다고 했다
우리 둘다 비슷한 처지이니 괜찮다고 말했다
그 부분에는 확신이 갔나보다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다가 고백과는 다른 주제의 이야기들을 30분 동안 했다
그리고 일단 헤어졌다
나한테 생각할 시간을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니 상황을 이해하니 기다리겠다고 했다
30분이 넘는 시간동안 웃고 있었던 그 얼굴을 믿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후 나와 너의 사이를 아는 유일한 중개자인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렇다
내가 가자마자 바로 친구에게 연락을 했단다
내 고백을 거절하고 싶지는 않다
사귀고 난 후에 부모님 문제나 그런 것들은 자기도 일단 확신이 간다 했다
하지만 나중에 사귀고 나서 헤어질 때가 무서워서 고민이라고 한다
그리고 밤에 카톡이 왔다
전화와 똑같은 내용이었다
난 너랑 좋은 친구 상태로 끝까지 가고 싶었는데
사귀다가 헤어지면 전부 다 끝이니 그게 무섭다고 했다
설득을 했지만
너무 힘들어 내일 다시 하겠다고 해다
그리고 또 다음날 밤에 카톡이 왔다
혹시나 헤어지고 우리 사이가 예전 처럼 안 되도 괜찮냐고 했다
추운 가을 밤이였는데도 식은 땀이 흘렀다
괜찮다고 했다
그러고선 잠시 답이 없더니
사실은 자기가 2학년 올라오면서 남친을 안 만들기로 다짐했다고 했다 ( 그자리에서 지어낸 말은 아닌것 같았다. 카스에서 예전에 본적이 있는것 같으니)
그러면서
조금만 더 일찍 왔으면 됬을텐데...
라고 보냈다
그냥 아무 느낌이 없었다
원망이나 그런 감정은 없고 단지 내 자신이 한심했을 뿐이었다
그러고서는 그래도 좋은 친구로 남자고 내가 보냈다
그러자 너도 그건 자기도 좋다고 했다
자꾸 미안하다 했다
널 이렇게 만든 내가 나쁜년이라고
아니 넌 잘못이 없다
나 때문에 며칠간 그렇게 가슴 싸매고 고민할 너를 떠올리니
오히려 내가 가서 절이라도 하고 싹싹 빌고 싶을 심정이었다
그렇게 끝이 났다
그렇게 한달 간을 같은 반에서 지내는데
너한테 원망이나 미움 그런 감정은 하나도 들지 않는다
아직도 널 좋아하긴 한다
포기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자꾸 피하고 있다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피하고 있다
물론 어색하다는건 안다
같은 반 안에 있는것 만으로도 어색한데 말이라도 걸었다가는 상상도 못하겠다.
그치만 다시 돌아가고 싶다
다시 예전 처럼 말이라도 한번 해보고 싶다
지나가다가 인사라도 하고 싶다
요즘 힘들다고 올린 글에 힘내라고 댓글 하나 달아주고 싶다
나도 어떻게 해야할 지는 잘 몰라서 이렇게 혼자 가슴아프지만
참 한걸음 떼는 게 이렇게도 힘들구나
혹시라도 네가 이 글 보면
다른건 몰라도
지나가다 눈이라도 한번 마주쳐 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