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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에 관한 참고용 글 세 편.
게시물ID : sisa_3674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명논객
추천 : 4
조회수 : 34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3/02 10:38:24


시게 좌파님들 참고용 ^^


http://left21.com/article/4448


존 몰리뉴의 실천가들을 위한 마르크스주의 입문 24파시즘이란 무엇인가?

존 몰리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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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불> 55호 | 발행 2007-08-25 | 입력 2007-08-22

20세기에 노동계급이 겪은 최악의 패배인 히틀러와 나찌의 집권은 20세기에 인류가 겪은 최악의 재앙인 제2차세계대전, 그리고 인류에 대한 최악의 범죄인 홀러코스트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

그래서 이 사건들의 연관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 문제들을 많이 제기한다. 나찌 현상의 원인은 무엇인가? 나찌 운동의 성격은 무엇인가? 나찌는 어떻게 권력을 잡을 수 있었는가? 나찌를 저지할 수는 없었는가? 그런 일이 또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무엇보다, 그런 일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과거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이 모든 문제들을 이 짧은 칼럼에서 제대로 다룰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나는 나찌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의 요점들을 자세히 설명하려 한다. 그것은 위의 문제들에 대한 더 충분한 답변의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분석은 독일에서 히틀러가 집권하게 되는 시기인 1929~33년에 레온 트로츠키가 주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그런 분석은 나찌즘에 대한 부르주아적 해석이나 정설 공산주의, 즉 스탈린주의적 해석과 관련지어서, 그리고 그 해석들과 대조해서 이해할 때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수많은 신문 기사, 책, 영화, TV 프로그램 등에 등장하는 나찌즘에 대한 부르주아적 견해는 이렇다. 나찌즘은 독일의 민족성(예컨대 권위주의ㆍ군국주의ㆍ잔인함 따위)이 표출된 것이라거나 히틀러라는 악마 같은 천재 개인의 산물 ― 히틀러가 사악한 웅변술로 독일 국민 전체를 호렸다는 것이다 ― 이라는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상호모순적인 이 두 견해는 사회 세력이나 경제와의 연관, 특히 자본주의 체제와의 연관을 완전히 외면한다는 점에서 상호보완적이다.

웅변술

그러나 단순하고 분명한 두 가지 사실이 이 부르주아적 견해가 모두 틀렸음을 보여 준다. 첫째, 독일의 나찌즘은 국제 파시스트 운동의 일부였다. 파시스트 운동은 단지 독일에서 시작되거나 끝난 것이 아니다. 이른바 ‘온건한’ 나라라는 영국을 포함해 거의 모든 나라에 존재했고(물론 강력함의 정도는 조금씩 달랐지만),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의 집권과 함께 시작됐다.

둘째, 히틀러와 그의 나찌당은 1929년 10월 월스트리트의 주가 폭락과 함께 시작된 국제 경제 위기 이후에야 독일에서 진정한 정치 세력이 될 수 있었다. 그 전에는 히틀러의 이른바 강력한 웅변술도 독일 국민에게 거의 효과가 없었다.

트로츠키를 비롯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모두 파시즘이 제1차세계대전 뒤에 자본주의 체제를 사로잡은 국제적 위기의 산물이자 그에 대한 대응이라고 보았다. 파시즘은 의회 민주주의를 폐기하고, 반동적 독재 체제를 수립하고, 노동계급을 분쇄함으로써 그런 위기를 자본에 유리하게 해결하려는 노력이었다.

트로츠키는 이런 일반적 분석에 아주 중요한 한 가지를 덧붙였다. 그는 파시즘이 단지 자본가 계급 전체 또는 심지어 일부 대기업들이 추진한 정책이나 정치 경향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오히려 파시즘은 하층 중간계급, 즉 쁘띠부르주아지를 기반으로 하는 진정한 대중운동으로 시작됐다.

이 계급은 경제 위기 때 심각하게, 그리고 특별하게 고통을 겪었다. 한편으로 그들은 위로부터 은행과 거대 독점기업 들에게 짓밟히고, 다른 한편으로 아래로부터 노동조합과 조직 노동계급의 압력에 시달린다. 경제 위기 때문에 절망에 빠지고 양대 계급 사이에 끼여 괴롭다고 느낀 쁘띠부르주아지는 “광포해져서” 파시스트의 데마고기에 넘어가는 비옥한 토양이 됐다.

이런 계급 기반이야말로 파시스트와 나찌의 이데올로기 ― 유대인 혐오를 비롯한 ― 를 이해하는 열쇠이다. 한편으로, 파시스트와 나찌는 ‘반(反)자본주의적’ 미사여구를 사용하지만 자본주의 자체가 아니라 국제 자본이나 금융 자본을 비난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리고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공산주의ㆍ사회주의ㆍ노동조합에 격렬하게 반대한다는 점이다. 이 두 요소를 결합시키면, 적어도 파시스트의 머리 속에서는 유대인 혐오가 떠오르게 된다. 즉, 금융 자본과 공산주의의 배후에는 유대인들의 사악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어쨌든, 로스차일드와 마르크스는 모두 유대인이 아니냐는 식으로). 결국, 국가ㆍ민족ㆍ지도자ㆍ인종이 계급을 초월하는 신화적 존재로 격상된다.

노동자 공동전선

쁘띠부르주아지라는 기반은 또, 파시즘이 운동으로 발전하는 데서도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파시즘이 아무리 많은 지지자들을 끌어모은다 해도 파시즘 자체로는 권력을 잡을 수 없다. 왜냐하면 하층 중간계급은 자본가 계급을 타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이 집권하려면 1932년 가을 독일에서 그랬듯이 대자본가들에 의해 “끌어올려져야” 한다.

그러나 지배계급은 극단적인 압력을 받아야만, 그리고 위기가 너무 심각해서 더는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지배할 수 없다는 것과 파시스트들을 이용해 노동계급 조직들을 분쇄하는 모험이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만 위험한 외부 세력에게 국가 통제권을 부분적으로 넘겨주는 모험을 감행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파시스트들도 거리에서 노동자 조직들을 공격하는 실천적 능력을 보여 줌으로써 그들이 지배계급의 후원을 받을 만하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쁘띠부르주아지라는 기반 때문에 파시즘은 대자본가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그 덕분에 지배계급은 ‘보통의’ 경찰이나 군사 독재로는 얻기 힘든 것을 얻을 수 있다. 작업장ㆍ지역사회ㆍ거리에서 경찰이나 군대의 단순한 외부 개입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노동자 조직들을 분쇄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기층 수준에서 활동하는 파시즘의 대중적 간부층 덕분이다.

트로츠키가 그의 탁월한 저작 ≪독일의 반파시즘 투쟁≫[발췌 국역: ≪트로츠키의 반파시즘 투쟁≫, 풀무질]에서 자세히 발전시킨 이와 같은 분석은 파시즘의 본질을 잘 포착했을 뿐 아니라 파시즘에 맞서 어떻게 싸울 것인지도 보여 주었다.

첫째, 파시즘은 모든 노동자 조직들에게 치명적 위협이기 때문에 파시즘에 맞서 노동계급을 최대한 단결시킬 수 있는 노동자 공동전선을 건설해야 한다.(1929~33년에 스탈린주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곧 사회(주의) 파시스트라는 초좌파적 개념 때문에 그런 단결을 파괴했다.)

둘째, 사회주의적 좌파가 자신들이 자본주의 체제의 만성적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세력임을 입증할 수 있다면 쁘띠부르주아지를 노동계급 편으로 끌어당기거나 적어도 중립을 지키게 할 수 있다. 결국, 이것은 그들이 자본주의를 전복할 수 있는 능력을 실천에서 입증한다는 것을 뜻했다.(또다시 나중에 스탈린주의는 ‘진보적 부르주아지’와 동맹하는 민중전선 정책을 통해 그런 능력을 억눌렀다.)

이런 교훈들이 오늘날에도 현실 관련성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체제의 위기는 비록 1930년대만큼 첨예하지 않지만 여전히 존재하고, 따라서 파시즘의 위협도 민족성이나 지도자 개인들과 무관하게 여전히 존재한다. 파시즘의 위협이 아직 눈앞에 닥치지 않았더라도, 노동계급의 강력하고 단결된 행동으로 그 위협을 미연에 방지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러나 파시즘의 위협을 영원히 제거하려면, [홀러코스트 같은 비극이] “절대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Never Again)는 구호가 영원한 현실이 되도록 만들려면, 파시즘을 키우는 토양인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파괴해야 한다.



http://left21.com/article/10010


스스로 익히는 마르크스주의 기초 개념파시즘이란 무엇인가?

정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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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트21> 62호 | 발행 2011-08-06 | 입력 2011-08-04

얼마 전 노르웨이에서 광기어린 살육을 벌인 브레이비크는 단지 정신나간 개인은 아니었다. 그는 파시스트 단체인 영국수호동맹이 주도한 집회에 참가하며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켰고, 파시스트 정당들이 최근 “빠르게 성장하는 것에 감명받았다”고 썼다.  

이번 사건은 경제 위기의 고통이 크고, 각국 지배자들이 인종차별주의를 부추기는 상황에서 파시즘이 성장하는 토양이 형성된다는 점을 보여 줬다. 

한국에서 파시즘은 권위주의나 민족주의, 인종주의, 군사 독재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모호하게 정의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모호한 정의로는 파시즘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파시즘은 극우파 중에서도 독특한 특징을 지닌 정치 경향이다. 파시즘은 의회 민주주의를 없애고, 노동계급의 민주적인 조직을 철저하게 분쇄해 위기를 지배 계급에게 유리하게 해결하려는 시도였다. 

트로츠키는 여기에 중요한 성격을 덧붙였다. 파시즘이 중간계급을 주된 기반으로 하는 대중운동으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극심한 경제 위기 때 중간계급도 큰 고통을 겪는다. 이들은 지배계급에게서 억압을 받지만 노동계급의 투쟁도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여기기 쉽다. 지배계급이 체제를 안정시키지 못하고, 노동계급도 대안을 보여 주지 못할 때 중간계급의 불안감과 동요는 더 커진다.

파시스트는 이를 이용해 이질적인 중간계급을 인종주의 등 극우적인 생각으로 결집시킨다. 

파시스트의 주요한 특징은 대중 집회를 해서 세를 과시하고 폭력집단을 운영하는 것이다. 이탈리아 무솔리니는 수천 명의 검은 셔츠단을, 독일 히틀러는 40만 명에 달하는 돌격대를 운영해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공격했다. 

이중의 전략

물론 트로츠키는 파시스트들이 이중의 전략을 구사한다고 봤다. 이들은 폭력 테러와 함께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으려고 한다.

그러나 파시즘 조직이 독자적으로 권력을 잡기는 어렵다. 중간계급은 지배계급에 비해 재정적으로나 조직적으로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들이 권력을 잡으려면 지배계급의 지지가 필요하다.

지배계급 역시 체제의 위기가 매우 심각해 경찰과 군대로는 노동자 투쟁을 막기 힘들다고 판단할 때 파시스트를 이용하려는 모험을 벌일 수 있다. 혁명적인 상황에서는 경찰은 역부족일 때가 많고, 군대에서는 반란이 일어나기 쉽기 때문이다.

이것이 혁명의 위협을 겪은 독일 지배계급이 1930년대 대공황의 위기 때 히틀러를 택한 이유였다.

히틀러는 1933년에 집권할 당시에는 헌법을 지키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얼마 안 돼 공산당을 불법화하고, 일당 독재를 확립하고, 유대인과 사회주의자 수백만 명을 학살했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파시즘은 경멸과 저주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위기가 돌아오면서 파시스트도 돌아왔다. 

물론 최근 이들은 히틀러에 대한 존경과 인종 학살을 드러내놓고 공표하지는 못한다. 대신 다문화주의와 이민에 반대하는 정책을 내놓는다. 그러나 파시스트 조직인 프랑스 르펜의 국민전선과 영국국민당은 여전히 인종 증오와 테러를 퍼트리는 폭력집단을 운영한다.

이런 파시즘에 맞서려면 노동계급이 최대한 단결해 공동전선을 결성하고 파시스트들과 정면대결을 벌여야 한다. 그들이 점잖은 체하며 선거에 나온다면 그들의 본질을 폭로하고, 집회를 열어 세력을 과시하려 한다면 집회를 저지하는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트로츠키는 파시스트들을 “인간 먼지”라고 불렀는데, 노동계급처럼 탄탄하게 조직된 세력이 아니라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대응한다면 이들을 충분히 약화시킬 수 있다. 반파시즘 투쟁을 광범하게 건설해 온 영국이 다른 유럽에 비해 파시스트 정당들의 규모가 훨씬 작은 데서도 이 점을 알 수 있다. 

또 파시즘을 근본적으로 없애려면 토니 클리프가 말했던 것처럼 파시즘이 자라나는 토대 자체를 제거해야 한다. 

“우리의 반파시즘 투쟁 전술은 양면적이었다. 쥐를 공격하는 동시에 쥐가 번식하는 하수구를 청소하는 것이다. 파시스트들만 공격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실업과 저임금 등 파시즘이 성장하기 좋은 토양을 제공하는 사회적 박탈에 맞서 싸우는 것도 필요하다.”


http://left21.com/article/11196


파시즘의 두 얼굴

웨이먼 베넷 (영국 반파시즘연합 협동 간사, 사회주의노동자당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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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트21> 81호 | 발행 2012-05-14 | 입력 2012-05-13

“절대로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never again)”라는 구호는 나치가 저지른 홀로코스트의 잔학성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처음 제기됐다. 그 후 이 구호는 반(反)파시즘 운동을 이끌어 온 원칙이 됐다. 

우리 거리에 골수 나치 활동가들이 나타날 경우 우리에겐 그들을 막을 의무가 있다. 역사는 우리가 파시즘 운동이 성장하는 것을 방치할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이미 경고했다.  

△영국 파시스트 단체 EDL의 깡패들 - 파시스트들은 거리와 투표를 둘 다 이용한다. 이들을 거리에서 박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 <소셜리스트 워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나치가 가두 시위를 할 때는 맞불 시위를 벌여서 그것을 막아야 한다. 

그러나 나치의 야욕은 가두 정치에 국한되지 않는다. 예컨대 영국의 EDL(영국수호동맹)의 고참 회원들은 새로운 극우 정당(영국자유당) 창설을 도왔다. 

그들은 한편으로 소수 민족과 좌파를 공격하려고 가두에서 무력 시위를 벌이려 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자신의 증오 메시지를 주류 정치에 널리 퍼뜨리려 하므로 자기가 “합법적” 정당처럼 보이길 바란다. 

이러한 이중 전략은 파시즘의 전형적인 전술이다. 일반적인 인종차별적 극우 운동들과 파시즘을 구분짓는 특징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전술이다. 

러시아 혁명가인 레온 트로츠키는 1930년대에 파시즘을 분석했다. 트로츠키는 주로 이탈리아와 독일의 파시즘 운동을 살펴 봤지만, 그의 분석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다른 반동 분자들과 구분되는 파시스트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투쟁들에 직접 개입하려고 대중 운동을 구축하는 데 힘쓴다는 것이다. 

이러한 반동적 대중 운동은 하층 중간계급에 — 소상인, 자영업자, 하급 전문직 들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프티부르주아’라 부르는 계층 — 기반을 둔다. 

파시즘의 대중 운동은 폭력을 사용해서 소수 민족, 좌파, 노동자 들한테 공포를 심는다. 그러나 이들의 목표는 단순히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 이상이다. 

파시스트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과 대중 운동을 이용해 권력을 잡으려 하고, 그 뒤에는 민주주의와 노동자 권력의 요소를 깡그리 박살내려 한다. 파시스트는 노동자들이 사장들한테서 받아 낸 모든 것을 모조리 되돌려 놓으려 한다. 

베니토 무솔리니가 만든 원조 파시즘 정당인 이탈리아의 민족파쇼당이 바로 그러한 사례다. 이탈리아 파시즘은 제1차세계대전 뒤의 혼란을 틈타 권력을 장악했다. 무솔리니는 참전 군인을 모아 사회주의자와 노조원 폭행을 일삼는 폭력단을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파시스트들은 짐짓 “점잖은” 얼굴로 꾸미고서 지배계급한테 자신이 위기에 휩싸인 나라를 구할 해결사라고 자처한다. 

이 전략은 성공했다. 이탈리아 지배자들은 무솔리니한테 1922년에 권력을 넘겨 줬다. 파시스트들은 곧바로 이탈리아에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투쟁적인 노동자 운동을 박살내는 일에 착수했다. 

그러나 오늘날 파시스트들은 양차 세계대전 사이 기간에 이용한 전술을 쉽사리 되풀이하지 못한다. 지금 그들은 히틀러, 무솔리니, 인종 학살을 지지한다고 떳떳하게 말하지 못한다. 대신에 그들은 암호 같은 말들, 다시 말해 “인종” 대신 “문화”와 같은 말들을 즐겨 쓴다. 

선구

이 전략은 프랑스의 파시스트 조직인 국민전선이 선구적으로 사용했다. 국민전선은 지난달 치러진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18퍼센트를 득표하며 3위를 했다. 

더욱이 주류 정당들이 인종주의와 이슬람 혐오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예컨대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은 지난해 2월 5일, EDL이 러튼에서 반(反)이슬람 시위를 벌이던 바로 그날 다문화주의를 공격하고 소수 민족을 희생양 삼는 연설을 했다. 

최근에는 주로 영국국민당(BNP) 때문에 선거에서 파시즘의 위험이 심각했다. BNP는 나치 단체를 건설하는 데 몰두해 왔다.   

BNP는 10년 전 선거에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 이후 BNP는 수년 동안 더 많은 지방의회 의원을 배출했고 200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2석을 얻었다. 

그러나 그 후 BNP의 선거 전략은 반파시즘 활동가, 사회주의자, 노조원 들이 이끈 단호하고 가차없는 반대 운동 덕분에 산산조각 났다. 

2010년에는 BNP의 아성이었던 이스트 런던의 바킹에서 BNP 지방의원 12명이 자리를 잃었다. 지난해에는 스토크온트렌트에서 BNP가 전멸했다. 올해는 번리에 단 하나 남아 있는 의석마저 잃었다.

EDL 또한 좌절을 맛봤다. EDL이 동원한 무뢰한들이 지난해 이스트 런던의 타워 햄릿에서 박살이 났다. EDL 깡패로부터 무슬림 공동체를 지키고자 수천 명이 나섰기 때문이다. EDL은 거기에 한 발자국도 들어오지 못했다. 

아돌프 히틀러는 대규모 파시스트 집회는 ‘조그만 벌레들이 스스로 힘센 용의 일부라고 느끼게 할 수 있다’고 썼다. 그러나 대규모 반파시즘 맞불 시위는 그 과정을 막을 수 있다. 

맞불 시위는 골수 파시스트들을 고립시켜 그들을 인종차별적 편견에 사로잡힌 무수한 꼴통들과 떼어 놓는다. 

이것은 파시스트의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그들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반파시즘 시위는 광범하고 강한 결속을 바탕으로 건설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파시스트들한테 한 방 먹일 때마다 그들은 두 가지 원천에서 힘을 끌어내 회복할 수 있다. 

첫째 원천은 국가다. 국가는 파시즘에 맞닥뜨렸을 때 중립적인 구실을 하지 않는다. 특히 경찰은 항상 나치의 행진에 대해서는 기꺼이 편의를 봐주지만 반파시즘 시위대에 대해서는 괴롭힘을 일삼고 사기를 꺾으려 든다. 

역사에서 경찰은 이런 짓을 거듭거듭 벌여 왔다. 1936년 영국의 이스트 런던에서 벌어진 “케이블가(街) 전투” 당시 경찰은 반파시즘 시위대를 공격했다. 

경찰은 반파시즘 시위대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며 오스왈드 모슬리가 이끄는 검은셔츠단한테 길을 터 주려 했다. 

파시스트들에게 힘을 주는 또 다른 원천은 자본주의다. 지금 이 체제는 세계적 위기를 맞고 있다. 각국 정부들은 삭감안을 밀어붙이고 무슬림, 이주민, 기타 소수 민족을 비난하고 있다. 

1930년대에는 비슷한 조건에서 파시즘 정당이 수월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파시스트 쥐새끼들은 자본주의 위기, 삭감 정책, 인종주의라는 시궁창에서 기어 나온다.  

쥐들을 없애려면 쥐들이 번식하는 시궁창을 쓸어버려야 한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파시즘에 맞서 벌이는 싸움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맞서는 더 커다란 싸움의 일부가 돼야 한다. 

왜 파시스트들은 긴축을 반대하는가

김영익

 유럽에서 파시스트들은 긴축 정책에 반대하는 대중 정서에 호소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연립정부에 참여한 극우 성향의 자유당이 긴축 정책에 반대해, 결국 연립정부가 붕괴했다. 그리스 황금새벽당, 프랑스 국민전선 등 최근 선거에서 큰 성공을 거둔 파시즘 정당들 모두 긴축 정책을 강도 높게 공격했다. 

그러나 이들이 긴축 정책을 반대하는 이유는 급진 좌파들과 완전히 다르다. 파시스트의 계급적 토대는 하층 중간계급에 있다. 이들은 경제 위기 때 정부의 긴축 정책에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하층 중간계급은 위로부터 은행과 거대 독점기업 들에 짓밟히고, 다른 한편으로 아래로부터 노동조합과 조직 노동계급의 압력에 시달린다. 그래서 파시즘 운동은 노동계급에 적대적이면서도 대자본가들에게도 적대적일 수 있다. 집권하기 전까지 독일 나치는 ‘반자본주의적’ 미사여구를 사용하면서 ‘사악한 유대인들이 배후에 있는’ 금융자본과 공산주의를 모두 비난해 인기를 모았다. 

오늘날 프랑스 국민전선은 은행을 구제하고자 긴축정책을 주도하는 유럽연합을 비난한다. 그리고 유로화 대신에 프랑화를 부활하자고 민족주의에 호소하고 있다. 그리스 황금새벽당도 유로존 탈퇴를 주장한다.

그러나 파시스트가 추구하는 정책이 민중의 고통을 해결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1932년 히틀러는 대자본가들과 타협하고 나서야 그들의 지지를 받아 집권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치 정권의 경기부양책은 엄청난 수준의 재(再)무장 정책이었고, 이 과정에서 나치는 다수 민중의 희생을 강요하고 인종 청소와 대량 학살로 유럽 전체를 공포로 몰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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