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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과거]산문--아프가니스탄의 여인-
게시물ID : readers_48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푸른벚꽃
추천 : 2
조회수 : 324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2/12/02 09:48:20

아프가니스탄의 여인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카불, 자본,권력이란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의 욕망에 더럽혀진 도시의 작은언덕에 부르카(이슬람여성들이 입는 얼굴까지 가리는 옷)를 입고 조용히 서있었다.

 

“올해도 오셨군요”

 

달갑지 않다는 말투로 나에게 말하는 그녀였다.

명백히 내가 보기싫다는 투로 말하는 그녀였지만,나는 화제를 돌리려 애쓰며 그녀에게 밝은투로 물었다.

 

“아프가니스탄에 눈이라니! 이런것 참 오랜만이죠?”

 

그녀는 내 노력을 알아챗는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저는 처음보는군요, 마을촌장님이라면 보셧겠지만 지금은 돌아가셨으니...”

 

또 다시 화제가 우울하게 가려하자,나는 내 미국생활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으며

이곳에 온 목적인 한마디를 내뱉었다.

 

“내려갑시다. 밑에 트럭도 와있고, 이제는 가야지요 떠나야지요.”

 

매년 그랬듯이, 그녀는 고개를 휙 돌리더니 날 쏘아보며 부르카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이곳은 제 아이의 무덤이에요! 제 아이의 마을이라구요! 난 절대로 떠나지 않겠어요...”

 

또 다시 주저앉아 침묵의,그리고 원한의 피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보자, 나는 정말 언덕에서 뛰어내려버리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하면 내 죄책감이 덜어질까.

 

어떻게 해야 내맘속의 죄책감이 덜어지고,내 앞의 여인이 눈물을 그칠수있을까.

 

 

내가 이 여인의 아이를 죽엿으니.

 

 

지금이 2012년이니까, 8년전이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이 한창인 8월에 나는 찜통더위속인,그리고 화약먼지투성이의 카불인근의 미군부대에 있었다.

 

나는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며 상념에 젖는게 취미였다.

 

이렇게 맑은 하늘이 있을까. 정말 망원카메라렌즈를 박박 닦아서 찍는다해도 다 담아내지는 못할 푸르르고 또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어있는 나를 스티브중위가 불러냈다.

 

오늘부터 작전에 들어간다는 소식이었다.

 

한숨을 쉬며 내용을 들어보니 카불외곽에 탈레반의 집결지가 있는데 그곳을 5부대로 나뉘어서 침투한다는 내용이었다.

 

극렬이슬람신자이고,반미주의자여서 협상은 실패로 돌아갔다는 말과, 사살은 허가한다고 말하는 중위의 말을 끝으로 나는 총기점검을 하러갔다.

 

그날밤, 나는 야간투시경을 쓰고 총에 소음기를 달아 완전군장을 하고 무선이어링으로 작전을 지시받고있었다.

조용히 탈레반이 거주한다는 2층시청건물 문 앞까지 도달한 나는 부대원들과 함께 심호흡을 한후,단숨에 문을 박차고 들이닥쳤다.

 

좁은 방안에서 경비를 맡은 두명의 탈레반은 아무런 소식도 듣지못한것이 분명한듯, 당황하더니 총을 찾으러 멍청하게 두리번거렷다.

 

한명이 총을 들고있었기에 우리는 그를 사살했다,

 

한명은 손을 번쩍들고 우리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신참에게 그를 묶으라고 하고는 우리는 다른곳의 탈레반을 찾아 방을 나섰다.

 

15분쯤 지났을까, 기지를 완전 점령한 우리는 상황을 보고받으며 방을 일일이 열어 혹시나 남아있을 탈레반의 잔당을 찾고있었다.

 

2층의 집무실을 열었을때, 무언가가 휙 움직이는것을 보았다.

 

망설이지 않고 쏘았는데. 피사체가 맞고 내뱉은 소리는 어린아이의 것이었다.

 

그리고 여자의 “안돼!하는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이세상사람의 것이아닌듯한 꺽꺽소리가 검은 머리의 아이의 입에서 나기 시작햇다.

 

아무생각없이 멍 하니있던 나는 뒤통수가 확 잡아당겨지는 느낌과 함께 정신을 차렸다.

눈을 뜨니 여긴 탈레반건물1층의 홀이었다.

 

‘내가 왜 여기있지?’

 

부대원에게 물으니 내가 2층집무실쪽에서 터덜터덜내려오는데 상태가 이상해 나의 뒷머리를 잡고 당겼다고 했다.

 

집무실이란 말을듣자, 정신이 확 난 나는 다시 집무실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집무실문은 열려있었다.

 

아이는 이미 눈이 넘어가있었고, 여인은 얼굴에 아이의 피를 잔뜩 묻히고 아이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비비며 처참하게 울었다.

 

아니야,이건, 이건 내가 원한게 아니라고, 난 탈레반을 잡으려고 왔다구, 이런거 못 들었어, 사고라고 내 잘못이 아니야.

 

내 머리는 감당할수없는 죄책감에 스스로를 보호하는듯 자기합리화를 미친듯이 했지만,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죄책감을 이길수는 없었다.

 

6~7세쯤 되어보이나. 미국의 내 아들이 저정도 컷었지.

 

나를 무슨 영웅쯤으로 아는 아들 생각을 하자 나는 목구멍밖으로 나오지않던 죄책감의 회색 과 짙은푸른색이 섞인, 기괴하면서도 끔찍한 소리를 질러댔다.

 

내 소리를 듣고 달려온 부대원은 눈앞의 상황과 집무실안을 보고는 나를 잡아 질질끌고 갔다.

 

“놔! 내가 처리해야해.내가죽엿어 내가 책임져야한다고”

 

부질없는 소리란걸 스스로 알고있음에도 나는 눈물을 흘리며 아이처럼 떼를 썼다.

 

난 결국 부대까지 질질 끌려가 스티브중위와 대면하게 되었다.

 

“그 여자는..그여잔 어떻게 됬습니까?”

“우릴 제대로 보지도 못하더군. 완전히 미쳐서 우릴 죽이려고 했었어.”

 

스티브중위의 냉정한 말에 배알부터 올라온 분노를 느낀 나는 중위에게 소리쳤다.

 

“미친게 아닙니다!! 그저...”

 

“그저..뭐?”

 

차마 내입으로 그걸 꺼낼수는 없었다.

인정하고 싶지않았다.

 

스티브중위는 한숨을 쉬더니 “아이는 건물옆 무화과나무옆에 묻어주었네.”

라고 말하며 “여인은 어쩌겟나. 좆같은 부시를 욕해야지”나직히 말하더니

혀를 차며 사무실을 나갔다.

 

그 뒤로, 나는 군인이 증오스러워 졌다.

남의 생명을 빼앗고싶지도 않았고,미국을 지킨다는 자긍심마저 없어져버렸다.

여인의 피칠갑을 한 얼굴로 죽은아이의 얼굴을 비비는것만 생각났다.

 

그 뒤로 결국 군인을 그만둔 나는 단 몇 주일사이에 피골이 상접한 여인을 찾아가 무릎을 끓고 통역사를 통해 빌었다.

 

용서해달라고,지금 당장 못하겟지만,5년이 지나도,10년이 지나도,매년 찾아오겟다고,

카불을 떠나 좋은곳으로 이사도 시켜주고,집도사주겟노라고.

 

그여인은 나직이 말했다.

 

“자식이 죽으면 부모의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있지요.

영원히 내 아이를 잊을수는 없어요.내아이가 자라고 웃던 카불을 떠날수는 없어요.

나를 찾아오지마세요”

 

그렇게 말하며 조용히 축객령을 내린그녀는 돌아서서 끄윽끄윽하며 울었다.

 

그리고 나는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매년12월이되면 기대감과 죄책감,절망감이 섞인 칵테일같은 감정을 가지고 여인에게 빌었다.

다른곳으로 가자고. 부탁이라고.이제 잊자고.

그러나 그녀는8년째 거절을 햇다.

언제쯤 그녀가 나를 용서하고 아이를 잊을수있을까.

나도 부모이니 알것같다.아마 평생 이렇게해야할것같다.

그렇게라도 내 죄책감을 덜을수있다면 상관없다.

그녀에게 돈과 음식을 담은 트럭을 주고는 얼마전 평화가 찾아올뻔한 카불을 둘러보며 다시 나는 아프가니스탄을 떠났다.

언제고 다시 돌아올 그곳을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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