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천호선 정의당 대표가 밝히는 2014 지방선거 구상 "서울시장? 필요한 상황 오면 대표가 직접 나갈 것"
대중에게 정의당은 여전히 낯설다. 국회의원 5명의 원내 4당이지만, 양당 구도의 한국 정치에서 이 정도로 대접받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진보정당'이라는 이름이 대중의 신뢰를 잃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신생 정당'인 탓도 있다. 6·4 지방선거가 정의당에 시련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이유다. 취임 6개월을 맞은 천호선 대표를 지난 1월8일 서울 여의도 정의당 중앙당사에서 만났다. 그는 정의당의 방향으로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천명했다. 지방선거에서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만들어가는 정당임을 내걸고, 연대 없이 독자 완주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진보는 '함께 행복하게 살자'는 것"
-정의당은 '대중적 진보정당'을 표방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 진보란 어떤 의미인가.
=어렵다. (웃음) 과거 '운동권적 진보정당'에서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다. 진보는 '함께 행복하게 살자'는 거다. '함께'는 '소수'가 아니라 '모두'이고, 단순히 경제적으로 잘사는 게 아니라 생태·인권 등으로 삶의 의미를 넓혀 행복해지자는 거다.
-대표 취임 뒤 구상해온 진보정당으로서의 방향과 목표는 무엇인가.
=우리나라 정당들은 모두 '정체불명' 정당이다.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하겠다는 대국민 사기를 쳤다. 민주당은 어떤 비전과 이념을 공유하는지 모르겠는, 그저 야당일 뿐이다. 안철수 의원 역시 어떤 정치, 어떤 국가를 만들겠다는 건지 불분명하다. 그동안 진보정당도 마찬가지였다. 내부의 다양한 견해를 통합한 자기 비전이 없었다. 국민에게 진보정당으로서 정체를 분명히 하겠다. 크게 세 가지다. 국가 비전은 '정의로운 복지국가'다. 두 번째는 노동 개념의 폭을 넓혀나가겠다. 마지막으로 언어, 행동 양식, 활동 방식 등 문화를 혁신하겠다.
천 대표는 인터뷰 다음날인 1월9일 새해 기자회견에서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천명하면서 "노동을 계급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에서는 '노동중심성'이라는 표현에서 벗어나겠다고 강조했다. "예전 노동자는 단일한 노동조건, 집단거주 등의 환경 속에서 사회복지 없이 노동의 대가(임금)를 얼마나 받느냐가 삶을 규정했다. 그러나 지금 노동자는 임금뿐 아니라, 지자체와 국가로부터 어떤 복지 서비스를 받느냐가 중요하다. 모든 시민이 노동하고 있고, 노동 내부의 경제적 격차와 존재 양태, 요구가 다양하다. 이런 면에서 노동은 특정 계급이 아니라 모든 시민의 보편적 권리로 간주돼야 한다."
-정의당은 몇몇 명망가의 정당, 중앙당만 있고 하부는 없는 정당이라는 평가가 많다. 왜 존재감이 없다고 보는가.
=언론에서 안 써주니까. (웃음) 민주노동당이 2000년 창당하고, 2002년 대선을 거쳐 2004년 총선에서 성과를 냈다. 우리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6월 지방선거가 진짜 신고식이 될 거다.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정의당이 어떤 당인지 인지도를 확보하고, 2016년 총선에서 위치를 다시 잡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3년의 긴 호흡으로 보고 있다.
-진보정당에 대한 실망과 회의가 많은 상황인데.
=국민들을 만나보면, 정의당이 무슨 당인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조금 설명하면 호감을 표시한다.
-뭐라고 설명하나.
=어떤 사람이 속해 있는 정당이라고 설명하는 게 가장 쉬운 건 사실이다. 그리고 과거의 진보정당과는 다르다고 얘기한다. 이보다 중요한 건 복지국가를 공식 목표로 내세운 정당이라는 거다. 굳이 얘기하자면, 통합진보당과는 다른 정당, 대북관계와 노동 문제를 더 폭넓게 본다고 설명한다.
"진중권 입당 뒤 당원 많이 늘어"
-크고 작은 지역 단위의 지방선거를 치르기에는 인지도와 하부가 너무 미약하지 않나. 어떤 타개책이 있는가.
=그래서 정당의 정체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거다. 어떤 사람들이 모인 정당인지보다 무엇을 하려는 정당인지가 더 중요하다. 북유럽식 사민주의를 추구하고 시행하려는 정당으로 평가받겠다. 현재 역량에 비하면 벅찬 일이지만, 광역단체장 선거에 최대한 출마해서 무엇을 하려는 정당인지 공세적으로 알리겠다. 최근 진중권(동양대 교수)씨가 입당하면서 당원이 많이 늘긴 했다. (웃음)
-당명에 대한 내부 평가는 어떤가. 사회민주당이라는 이름과 경합했는데.
=사실은 반반이다. 이미 정해진 이름이니까 단점을 얘기하지는 않겠다.
-당의 상징색을 노란색으로 바꾸는 등 정당 이미지 개선 작업을 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빨간색으로 바꾼 것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었다. 민주당이 총선 패배 뒤 파란색으로 바꾼 것은 좋지 않은 과거의 기억을 지워보려는 수세적 대응 같다. 정의당도 마찬가지 아닌가.
=우리로서는 공세적 대응이다. 현재 상징색이 분홍색·초록색이다. 두 색은 아무래도 선명함과 일관성이 떨어진다. 분홍색은 통합진보당의 상징색(보라색)과 비슷하고, 초록색은 녹색당 색깔이라는 현실적 고민도 있었다. (웃음) 따뜻한 복지국가라는 당의 지향점에 맞는 색이라는 점에서 노란색으로 결정했다.
-친노를 상징하는 색인데.
=내가 참여계 출신이라 노란색을 쓰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시각적으로 선명해야 한다는 점, 단일 색상 가운데 다른 선택지가 없는 점을 고려해 실용적으로 접근했다.
-지방선거 구도는 어떻게 전망하는가. 야권에서는 정권심판론도 거론된다.
=선거는 항상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적 성격을 갖고 있다. 정권 심판과는 다르다. 그리고 지방선거는 총선·대선과 다르다. 지방 수준의 선거다. 지방선거를 정권 평가에 직결시키는 건 바람직하지 않거나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더구나 지방자치는 복지의 문제다. 구의원·시의원 후보가 정권 심판을 얘기하지 않는다. 이번 선거는 복지할 생각이 없는 정당, 복지만 확대하는 수준에 머무는 정당, 그리고 복지국가를 만들어가는 정당의 대결이 될 거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의 태도를 유지한다면 정권 심판적 성격이 부각되겠지만, 중앙정치가 아무리 시끄러워도 복지와 민생에 집중해 밀고 갈 거다.
"안철수로는 진보 목소리 못 담는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야권연대와 무상급식이라는 복지 정책이 결합돼 파괴력을 발휘했다. 복지를 강조하지만 구체적인 정책이 없는 상황에서 구호만 갖고 찍어달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무상급식 같은 상징적인 브랜드 정책이 또다시 나올 수 있겠느냐에 대해 두 가지 시각이 있다. 개별 복지 정책이 좀더 디테일하게 다뤄질 거라는 시각이 있고, 교육이나 의료, 특히 민영화와 관련해 새로운 이슈가 부각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나는 후자다. 무상급식처럼 단순명료하진 않더라도 복지나 민영화와 관련한 새로운 의제가 등장할 것이고, 우리도 검토하고 있다. 또 2010년의 연대는 큰 민주당 하나와 작은 진보정당들의 연대였지만, 지금은 연대가 될지 안 될지 모를 정도로 두 개의 거대한 야권 세력이 있는 상태라는 게 다르다.
-야권이 나뉘어 경쟁하면 새누리당이 유리하다. 새누리당이 '어부지리'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야권이 경쟁하는 게 불가피하게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하나, 아니면 야권이 승리하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2010년에는 연대의 요구가 우선했다면 지금은 바꾸라는 요구가 우선한다고 본다. 이미 지지율에서 그렇게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는 큰 민주당에 작은 진보정당이 양보하라는 부당한 압력을 당해왔다. 그런데 지금 국민들 얘기는 '그렇게 해봤지만 달라진 게 없다'는 거다. 그렇게 해서 제1야당이 된 민주당에 대한 실망이 크고, 한편으로 진보정당에 대한 실망도 커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세력을) 바꾸라는 요구가 클 거라고 생각한다. 국민은 야권의 변화, 중도와 진보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연대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이뤄질 가능성도 낮다고 본다. 독자적으로 끝까지 간다는 입장을 분명히 갖고 임할 것이다. 더구나 지방선거이기 때문에 무조건 야권이 단일화해서 최대한 이겨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
-민주당과 안철수 세력의 경쟁이 치열할수록 정의당은 상대적으로 소외되거나, 결국 어느 한쪽과 연대함으로써 존재감을 나타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안철수 세력이 부상하고 지지를 받는 건 역사적 필연으로 본다. 고무돼야 할 일이다. 60년 동안 제대로 된 제3당이 존재하지 못한 양당 기득권 체제가 깨져야 한다는 점에서 안 의원의 움직임에 공감한다. 그런데 그것이 기득권을 부수는 곡괭이일 수는 있지만, 새로운 밭을 만드는 농부로서의 비전과 리더십을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정체를 모르겠다. 연대나 연합, 공조를 하려면 정책적 거리가 가까워야 하지 않나.
-판을 흔들려는 주체로서는 비슷한 처지인데, 같이 하기는 힘들다는 뜻인가.
=같이 한다고 생각한 적 없다. 내가 보기엔 안철수 세력은 중도혁신 세력인데, 본인 욕심은 진보부터 새누리당 지지자까지 포괄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이 둘 사이에 불일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걸 일치시키려면 보수를 뛰어넘는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막말하지 말자'는 정도의 제안에 머물고 있으니 기대가 낮아지는 면이 있다. 요컨대 기득권 세력을 깨자는 이해관계는 일치하지만, 정책적으로 일치하는지는 모르겠고, 짐작건대 안철수 세력이 진보의 목소리를 담기는 어렵다고 본다.
국민에겐 '야권연대' 뛰어넘는 열망 있다
-2010년 노회찬·심상정의 엇갈린 행보가 논쟁거리였다. (이들은 당시 진보신당 후보로 야권연대 없이 독자 출마했다. 노회찬 서울시장 후보는 완주했고, 심상정 경기도지사 후보는 등록 뒤 사퇴했는데, 두 지역 모두 새누리당이 승리했다.) 당시 < 한겨레21 > 표지 기사 제목은 '누가 옳았나'였다. 누가 옳았나.
=답을 안 하겠다. (웃음) 양당 구도에서는 그 양면이 진보정당의 끊임없는 고민거리다. 다만 당시는 연대의 요구가 우선했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걸 뛰어넘는 국민들의 열망이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