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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사유의 부재, 그리고 글쓰기
게시물ID : sisa_4817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명논객
추천 : 11
조회수 : 502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4/01/14 23:25:11

Written by 무명논객


오늘날 학생들이 글을 잘 쓰지 못하며, 심지어 대학생들조차 학부생 맞나 싶을 정도로 글을 못 쓴다는 말들이 오고 가는데, 나 역시 교양 수업에서 교수님이 학생들을 향해 "맞춤법도 엉망이고 논리적 구성도 전혀 되어 있지 않으며 심지어 주술관계도 호응되지 않는다"라며 신랄하게 비판한 것을 들은 바 있기에 그러한 문제 의식에 깊이 공감하는 바, 충분히 고민해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알리는 것이며, 그 형식이 감성적이건 논리적이건 글쓰기는 자신을 담는 행위라는 점에서, 글에 자신이 온전히 담겨있지 않다면, 타인에게 비춰지는 모습보다도 내 자신이 스스로가 부끄러워지지 않던가? 


물론 이것은 지극히 내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잘' 쓰지는 못하더라도 '올바른 구성'을 익혀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은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시 말해, 맞춤법을 틀리지 않은 것이 '좋은 글'의 기준이 될 수 없으며, 내용과 구성과 형식이라는 측면에서 글쓰기를 바라보고 배우는 것이 올바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학생들이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이유 중 "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라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는데,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책을 많이 읽고 좀 더 완성된 문장구조와 세련된 어휘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게 습득한 지식을 활용하고 적용하는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오늘날 필요한 것은 독해 능력이지 학습 능력이 아니라는 말이다. 


구태여 우리가 데카르트의 <제 1철학에 관한 성찰>이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혹은 마르크스의 <경제학-철학 수고>를 찾아 읽음으로서 지식의 총량에 무게를 더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지식인의 역할이다. 다만,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렇게 쌓인 지식의 총량을 얼마만큼 활용할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독해는 사유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며, 사유의 부재는 제 아무리 좋은 텍스트가 있어도 그것을 한낱 종이 위에 써진 잉크 자국으로 남겨버린다.


지금 당장 일베를 들어가보라. 그들은 "자유민주주의"라는 기표를 향유하고 있지만 정작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적 사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사유의 부재가 불러온 참극이라고 생각한다. 그들 앞에 던져진 "자유민주주의"에 관한 텍스트는 전혀 독해되지 못한 채, 기표만이 둥둥 떠다닐 뿐이다.(나는 종종 극우파들의 낮은 지능 수준을 조롱하곤 하는데, 그들은 바로 이러한 독해 능력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을 향해 '바보'라고 말하는 것이 틀린 명제는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에게 있어,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이며, 어떠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어떠한 분석을 할 수 있으며, 어떠한 레토릭을 제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사유의 전개보다, 소위 '좌좀'을 향해 '우덜식 민주주의!'라며 조롱하는 키워드로만 기능한다.


우리는 데카르트의 "Cogito ergo sum"을 보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외울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생산해낼 수 있어야 한다. 이 말은 모든 이들이 인문학자가 되어야 한다거나 사회과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어떠한 주어진 질문과 논제에 관해 답을 내놓고 연구하는 것은 학자의 역할이다. 그러나, 그러한 "질문"을 생산해내는 영역은 우리의 역할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유하는 법'을 기르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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