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후에 보자. 그래. 아프지 말고 새끼야. 미친놈. 담배 못피는데 어쩔래? 한번끊어볼까? 지랄! 니가 참 잘하겠다.
뒤돌아 보지 않고 걸어갔다.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약한모습 보이긴 싫었다.
그날밤. 유난히 뒤척이는 소리가 크다. 잠이 안와 화장실에 갔더니 누군가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 담배는 다 압수 했는데....
조용히 다가 가니깐 말 없이 한가치를 꺼내준다.
아무 말 없이 담배를 빨았다. 추웠던 4월 14일 새벽. 306 보충대 화장실.
목요일. 내가 배치될 사단이 나온다. 숫자가 낮을수록 빡새다는 소문이 돈다. 30사단은 파라다이스라고, 그래서 부대마크도 하트란다.
XXX 17사단, ㅇㅇㅇ 9사단............
1사단. 씨바. 1사단이라니..........
금요일. 문산 1사단 신교대. 3중대 3소대 깡통막사. 오후8시.
전투식량이란 것을 처음 먹어봤다.
이상한 밥 건조시킨것에 스프랑 참기름 스프 넣고 뜨거운 물 넣고 비빈다.
먹을때마다 목에 걸린다.
엄한 뜨거운 물만 줄창 들이킨다. 분대장씹새끼들은 졸라 지랄한다.
누구에게도 따스한 시선은 없다. 겁주는 시선과 겁먹은 시선만이 있을 뿐이다.
1주차 금요일. 헌병대로 교육을 갔다. 오랜만에 보는 부대밖 풍경. 60트럭 호로 뒤로 스쳐지나가는 그러한 풍경이지만 봄날씨와 개나리가 조금의 위안을 준다.
헌병대. 영창, 샤워실에 목 매어 죽은 사진, 부대뒤 야산의 나무에 목 매어 죽은 사진 총맞아 머리가 피곤죽이 되어있는 사진, 해부하는 모습, 두조각난 두개골사진들을 미술관 관람처럼 줄지어서 봤다.
법무관이 우리에게 강의를 한다. 여러분이 죽으면 우선 두개골을 두조각 냅니다. 그냥 관례에요. 그리고 배를 가릅니다. 여러분의 장기를 하나하나 끄내서 대충 보고 다시 배속에 넣는데 그걸 던지죠. 그 부분이 인상에 남습니다. 그리고 그 장면을 여러분 부모님이 보게 됩니다.
표정없는 법무관의 건조한 목소리. 우리는 침을 삼킨다. 담배 못핀지 2주일째. 그동안 참아왔던 담배생각이 간절해진다.
4주차. 각개전투주간. 환절기라 낮에 땀흘리고 밤에 추운 날씨가 계속 되는데 새벽 불침번 근무나갈때 귀찮아서 깔깔이 안입고 나간게 화근이 되었다. 결국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온몸에 식은 땀이 계속 나고 머리는 아파오고구토가 밀려온다. 저녁을 먹기위해 식당에 서 있는데 조교가 물어본다.
야 어디 아퍼? 예! 133번! 훈련병! 이!정!희! 감기에 걸린것 같습니닷! 그래?
감기에 걸리니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가 해주던 콩나물국 생각도 나고 뜨끈한 온돌도 생각난다.
밥은 먹을수 있겠어? 구토할것 같습니다! 그래? 의무대 갈까?
눈물이 난다. 21살 먹고 군대에 와서, 강하게 이겨낼라고 맘 먹었는데 바보같이 눈물이 난다.
왜 울어? 울지말고 의무대 가자.
평소에 개지랄같이 굴고 못잡아 먹어 안달이던 조교가 부드럽게 말한다.
의무대에 갔다. 열이 40도가 좀 안된다고 오늘 하루 입실하란다.
입실해서 티비를 봤다.
1달넘게 못보던 티비였다.
첫차를 탑시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을 만나볼수 있는 첫차를 탑시다의 김용만입니다. 오늘은 장지동에서 여의도까지 가는 33번 첫차 승객들을 만나보겠습니다.
고등학교때 타던 33번 버스. 33번 버스. 나도 첫차를 타고 싶다.
첫차를 타고 일하러, 학원에, 학교에 가고싶다.
1사단 포병연대 17포병대대 3포대 4포반. 자대 전입오자마자 2주 훈련을 나갔다. 맞는거, 욕먹는거, 얼차려. 자대오자마자 듬뿍 맛봤다.
2000년 4월. 점심먹고 낮잠을 자고, 오후 일과집합하러 나가는중 행정병이 불른다. 야. 너 내일 휴가니깐 휴가준비해. 진짭니까? 씹쌔끼 휴가 가서 좋겠다.
소문은 빨리 퍼진다. 시샘에 찬 눈들. 난 영웅이 된 느낌을 받는다.
갑자기 찾아온 행운이란 이런 것인가?
휴가 집에갔다.
의약분업. 누굴 위한 의약 분업인가?
엄마가 천식약을 먹다가 혈앞이 높아져 왼쪽눈의 혈관이 파열되었다.
병원에선 약을 줄 수 없단다. 의약분업이 실시 되어서.
휘기한 약이라 약을 찾아 종로 약국골목을 해매고 다녔다.
한군데 약을 찾아 2달치를 사고, 약도를 적어 엄마를 줬다.
그래도 아들이 있으니깐 좋네. 엄마 친구분의 말씀에 엄마도 나도 그냥 웃는다.
복귀.
별일은 없고? 어머니는 건강하시디? 일식사관이 면담하며 물어본다.
예. 그렇습니다. 집에 별일 없습니다.
8시 50분. 야외 건조장 뒤에서 소리내어 울었다.
그냥 소리내어 울고 싶었다.
2001년 5월. 직천리 마지막 훈련이 끝났다. 이제 10일 있으면 말년 휴가. 그리고 복귀 다음날 전역이다. 자대오고 2일후에 나간 첫 훈련. 60트럭에서 깃발을 치면서 나에게 남은 날들에 무게를 실감했다. 말년휴가 10일전 막내의 깃발을 내가 치면서 2년의 무게를 실감했다.
2001년 6월 12일. 동기와 함께 개구리 옷을 입고, 개구리 모자를 썼다. 6시에 준비태세가 결러서 점호도 없고 애들은 군장싸고, 물자분류한다고 바쁘다.
대대장 cp에 가서 전역 신고를 했다. 대대장이 담배 피는거 첨 봤다.
이등병 첫 훈련에 대대장이 이등병들만 불러 모아놓고 담배 한대씩 피게 해주면서 힘들어도 참으라고 이야기 했을때 눈물이 날뻔 했는데
이제는 그 대대장이 내 눈앞에서 수고 했다는 말을 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대장과 악수를 하고
애들에게 인사를 하러 포상으로 내려갔다.
얼굴에 시커먼 위장을 하고 총을 매고 포를 정비하거나, 땅을 파거나 자고 있거나
인사를 했다. 웃으며 인사를 했다. 인사를 해줬다. 웃으며 인사를 해줬다.
형 잘가. 그래 잘있어라. 형 나중에 휴가가면 술 한잔 사는거지? 그럼 잠실로 오면 연락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