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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게시물ID : soju_482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카스_네팔
추천 : 1
조회수 : 30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5/11 11:03:04
                                         [술]
                                                              아카스_네팔 
 
1.
 
아직도 삼계탕은 끓고 있다.
 
뚝배기가 이래서 좋은 것이다.
 
며칠전 아버지 기일때 내려갔던 고향에서 어머니는
 
짐된다며 손사레를 치는 철없는 아들 볼멘소리를 뒤로 하시며
 
기어이 삼계탕 한보따리를 들려 주셨다.
 
하긴 차가 싣고 왔지 내가 들고 왔냐마는
 
이렇게 오밤중에 소주 한잔과 함께 먹는 뚝배기 삼계탕 한그릇에는
 
차라리 이태백이 따로 없다.
 

 
2.
 
어느 문인은,
 
술잔속에 내려앉는 별 그림자를 찾아보지 못한 사람은 술맛을 모르는 것이라 했다.
 
참으로 운치 있는 말이다.
 
술에 대해 일가견이 넉넉히 있는 분이랄 수 밖에 없다.
 
그렇다.
 
한창 뛰어 놀 나이의 어린 샛별들이 슬금슬금 장난스레 내려와선
 
맑은 술잔에서 멱을 감는 모습을 알고도 모른 척,
 
벗과 함께 마시는 술맛을 무엇에 비유하랴?
 
딴에 겁없이 한말씀 보태자면
 
별이 영롱히 비치는 맑은 술도 운치있으려니와,
 
시골에서 억세게 땀흘리다 새참때 마누라가 가져 올
 
막걸리 한사발 기다리는 농부의 술맛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맛이리라.
 
아무렇게나 만든 사기그릇에
 
비록 별빛이 비치지 않는 탁한 술이지만,
 
땀방울에 슬슬 말아 먹는 오후 한나절 새참 막걸리.
 
좋다.
 
참 좋다.
 

 
3.
 
내가
 
술맛을 알기 시작한 건 내 나이 다섯살때.
 
아버지는 거의 펄펄 날아서 출근하시던 나이 서른의 시골지서 형사.
 
경북 풍기였던가...
 
동네 어느집에 경조사라도 있으면
 
닭백숙도 좋고,
 
파전 한접시도 좋고,
 
지서문 벌컥 열고 나눠먹기를 하던 시절.
 
그 허름한 시골지서에서 우리 마을을 지켜주던 방위 아저씨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를 정말 눈속에 넣으려 했다.
 
아버지가 보지 않을 땐,
 
'요놈. 고추 좀 보자'
 
아버지 볼 땐,
 
'아유, 오성이 귀엽네'
 
아저씨들, 사람 볼 줄은 알아가지고...
 
그렇게 영원토록 지냈으면 좋았을 것을.
 
당시만 해도 가장 흔했던 살가운 술, 막걸리.
 
누구 생일이었는지 방위아저씨들 휴게실은 유난히 시끄러웠고
 
다섯살짜리 꼬마는 가장 만만해 보이는 아저씨를 붙들고서는
 
'아저띠 나도 저거... 나도 저거...'
 
내가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부르르 떨며 가리킨 것은
 
엄지손가락으로 따면 '뽕'하는 소리가 나는 옛날 막걸리 한통.
 
'안돼, 요녀석. 벌써부터 술맛은 알아가지고. 허허'
 
하지만 그 아저씨
 
사람 잘 못 봤지, 내가 누군데.
 
'우와아앙! 아저씨, 나 저거 줘! 저거 줘! 우와아앙!'
 
'이눔시키가...'
 
아부지는 마침 도둑 잡으러 가셔서 오랜만에 방위가 대빵이었기에
 
그 아저씨 간댕이가 출장을 갔었는지도 몰라.
 
그 아저씨,
 
'진짜 저거 먹고 싶어?'
 
뻔한 걸 묻기는...
 
'엉'
 
'한잔만 무라, 으이?'
 
대견스럽다는 듯이 볼따구를 꼬집어 주는 방위아저씨. 속으로는
 
졸라 스팀받지만 술을 먹어야 했기에 난,
 
'엉'
 
잠시후,
 
'이제 나가 놀아라, 허허' (이러다 나 죽는거 아냐?)
 
'더 줘...으앙!' (너 같으면 술빨 땡기는데 이불 덮어쓰고 잘래?)
 
옛말에 형사아들 이기는 방위 없다고 했던가?
 
결국 한잔이 두잔이 되고,
 
두잔이 네잔이 되고,
 
엄지손가락으로 따면 '뽕'소리가 나는 막걸리 한통은
 
게눈 감추듯이 사라졌는데...
 
그때부터 숙취는 시작되었다네. (지금부터 구어체모드라네...)
 
그대,
 
아부지 직장에서 집까지 기어가 봤는가?
 
팔꿈치에 흙을 잔뜩 묻힌 채,
 
입에선 막걸리 냄새를 풀풀 풍긴 채,
 
눈에선 눈물을 질질 흘린 채,
 
동네가 떠나가도록 울음을 터뜨린 채로
 
대문으로 기어 들어오는 한 초라한 다섯살 청년을 보는 어머니의
 
표정은 해외토픽감이었다네.
 
'어떤 새끼가 이지경을 만들어 놨노? 으이?'
 
어머니는 코평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넓히시면서 아버지를 찾아 동구밖을 나섰고,
 
그날 밤,
 
5시퇴근이 철칙인 우리의 방위아저씨들 퇴근도 못하고
 
우리 앞마당에 집합해서는
 
화려한 울아부지 황비홍쑈의 엑스트라가 되었다네.
 
동해번쩍,
 
서해번쩍...
 
유도 2단에
 
태권도 1단.
 
'아, 아부지!...그건 아저씨들 잘못이 아니에요!'
 
나는 버선발로 뛰어나가 말리고 싶었지만,
 
술에 취해 그 나이에 게워내고 있었다네.
 
그대,
 
나이 다섯살에 어머니에게
 
'너 다신 술먹으면 죽어.' 라는 말을 들어 보았는가?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진심을 알았기에
 
그로부터 근 십년이 넘도록 입에 술을 대지 않았다네.
 

 
4.
 
진짜라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사랑과,
 
투쟁과,
 
우정과,
 
눈물과,
 
의리와,
 
분노와,
 
한숨을 내놓지 않고 술을 말할 수 없었다네.
 
원효처럼 글쓰고,
 
원효처럼 사랑하고,
 
원효처럼,
 
원효처럼 술을 먹고 싶은 나는
 
오늘도 어머니가 싸주신 삼계탕 한그릇에
 
이렇게 긴 이야기를 늘어 놓으며
 
자네에게 술을 권한다네.
 
형광등 불빛밖에 비치지 않는 소주 한잔을 말일세...
 
                                  
 
* 덧붙임 : 동게에서 주로 사는 '네팔'사는 '아카스'입니다. 친구녀석에게 "난 술이 왜 이리 좋은지 몰라. 전생에 이태백이었나봐"하니까, "아니지. 술주전자였을지도"라 하더라는. 술 중에 막걸리를 제일 좋아합니다. 술게 여러분 잘 부탁드립니다.
출처 *출처 :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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