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는 살짝 어감이 안 좋다. 보통 꼰대들의 의식이라 일컬어진다. 이는 한국에서 보수주의자를 자칭하며 몇대를 이어온 어느 범죄집단 탓도 약간 있다.
지발돈쫌은 엄연히 보수주의자다. 물론 일부 사항은 아니지만서도... 어째서 내가 보수주의자냐고? 그럼 보수주의가 무엇인지, 긍께 보수주의가 주장하고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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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보수주의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프랑스 혁명을 주도한 공화파에 대적한 왕당파가 보수주의라는 것이 아니다. 물론 왕당파가 보수주의적 성격을 띠기는 했지만 민주적 정치적 가치에 대한 보수주의가 아니라 그저 군주제를 지속하려는 반동일 뿐이다.
보수주의는 프랑스 혁명을 관찰하고 책을 써낸 영국의 에드먼드 바크로부터 비롯된다. 그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고찰]에서 전통과 역사를 무조건 파괴하고 공포정치를 열어간 프랑스 혁명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이렇게 출발한 보수주의는 나폴레옹, 산업혁명, 볼셰비키 혁명, 1, 2차 세계대전 등을 거치면서 인간의 이성을 부정하며 비웃기 시작한다.
프랑스 혁명은 중앙집권화를 지향한다. 이 중앙집권화는 국민개병제(징병제)와 함께 평등한 "국민"을 등장시킨다. 기존에는 없던 개념인 "국민"은 그러나 곧바로 예전과 다름없이 궁민이 되고 말았다. 버크는 프랑스 혁명이 "남자에게 민주주의와 배낭(군장, 즉 병역의무)을 함께 주었다"고 논평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에 이은 나폴레옹의 정복전쟁과 이를 수행하기 위한 국민개병제는 결국 프랑스를 파탄에 빠뜨렸다. (다 전쟁 나가고 나면 소는 누가 키워???)
결국 영국, 그리고 영국의 정치철학을 이어받은 미국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물론 미국의 경우 혁명적 의식을 가졌던 공화당이 보수주의로 변하고, 반면 노예제도 유지와 부의 독점을 추구하던 민주당이 진보적 성향으로 바뀌는 사고가 있었지만... (한국도 진보적이고 반항적이던 갱상도가 고담시티화하고, 졸라 보수꼴통이던 전라도가 오히려 진보빨갱이 낙인을 찍히는 개그가 벌어지고 있다)
역사는 이쯤 하고 보수주의가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가 정리해보자.
보수주의는 프랑스혁명이 추구한 중앙집권화 대신 분권화를 지향한다. 중앙정부와 일반 국민 사이에 매개집단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 매개집단은 당시 영국의 경우 국교회(성공회)가 주가 되었고, 길드, 자본가 등도 포함되었다. 예를 들어 복지정책에 관해 진보/혁명 세력이 국가의 역할을 주장하면서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반면, 보수주의는 복지를 교회나 복지단체 등이 대신해야 하는 것이며 부자들의 기부를 강조한다. 보수주의가 주장하는 분권화는, 지역이나 매개집단이 정책의 시행에 책임을 지고 역할을 다함으로써 중앙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그렇게 하여 지역의 자유가 더 보장된다고 보는 것이다. (복지에 관한한 지발돈쫌은 보수주의적이지 않다. 현실이 뭐 같아서리...) 결국 보수주의는 사적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지역공동체를 존중하려고 한다.
보수주의의 큰 원칙은 "재산이 있는 곳에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 한마디로 한국의 대부분의 재벌은 보수주의를 자처할 자격이 없다. 이 말은 노블레스 오블리쥬라는 용어와 통한다. 그리고 재산이 많을수록 더 많은 의무를 져야한다는 신념을 가진다. 핀란드 등 북유럽국가의 경우 60%라는 살인적인 소득세 최고세율을 시행중인데 주로 우파정부가 주장한 것이다. 일부 진보주의자들이 이것을 두고 이상적인 부의 재분배라며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하는데 이는 지적 자위행위일 뿐이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소한 위반에 대한 범칙금이나 벌금이 재산수준에 따라 다르다. 어느 부자는 약 30km/s의 속도위반에 2억이 넘는 벌금을 내기도 한다. 포클랜드 전쟁이 났을 때 영국 왕실의 왕자는 직접 헬리콥터 조종사로 참전했다.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이라크 전쟁을 획책하고도 정작 자기 자식들은 입대도 파병도 하지 않았음을 볼때 또한 현 대한민국 면제내각을 볼 때 이 사람들을 보수주의자라 보기 어렵다.
결국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은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보수주의는 붕괴한다"고 생각한다.
보수주의가 그 많은 실정과 문제점을 안고 있음에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현실"이라고 불리는 것이 주는 힘 덕분이다.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혁명이 말하는 자유, 평등, 박애가 넘치는 합리적 인간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안정을 추구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며 허점투성이이다. 특히 중요한 특성은 인간은 감정적인 존재이며 모든 행위의 결정에서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이성이 다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낭만주의자들은 보수주의와 결합하기도 했다.
보수주의는 "현실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정치.문화적으로 힘을 갖게 되며, 진보/혁명주의자들과의 기싸움에서도 논리적 근거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젊을 때 마르크시즘에 심취해보지 않은 사람은 열등하며, 늙어서도 마르크시즘을 버리지 못한 사람은 더 열등하다"는 말이 있다.
젊을 때는 이상주의자였던 사람들도 나이가 들면 현실적 보수주의자가 되어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반적이라는 말을 무슨 당위성으로 보지 마시라.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그냥 그렇게 되어 간다는 거다.) 물론 이를 두고 "길들여져 간다"고 개탄해 마지 않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배신자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비난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현실의 인간은 약점이 많은 존재이므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용서할 필요가 있다. 무차별적인 평등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상과 현실의 갭을 깨닫지 못하면 사실 이룰 수 있는 것은 더 적다.
우리는 프랑스혁명, 볼셰비키혁명, 그리고 수많은 진보/혁명 운동들의 결말을 직시해야 한다. 결과가 마음에 들든 안들든 냉철하게 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진보주의가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진보주의는 보수주의가 흔히 빠지기 쉬운 독단을 일깨워준다.
한국에는 보수주의가 없다. 단연코 말할 수 있는데, 한국의 보수주의는 없다. 보수주의 비스무리한 정당이 하나 있기는 하다만... 프로파간다에 경도된 절반의 국민으로부터 종북좌빨로 찍혔고, 무능한데다 철학이 없고 신념이 없어서 맨날 선거에서 지고 있다.
한국의 자칭 보수주의자들은 왜 보수주의자로 볼 수 없는가?
우선 한국의 권력자들은 이익이나 권력만 추구할 뿐이지 의무를 지려 하지 않는다. 이 권력자들은 보수주의가 가지는 힘의 원천 중 가장 중요한 "현실"을 왜곡함으로써 의무를 "99%"에게 떠넘기고 마는 것이다. 이 왜곡된 현실로써 자신의 사고를 덮어버린 자칭 보수주의자들은 현실의 부당함과 비리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부당함과 비리를 고발하는 사람들(지극히 보수주의자인 사람들이 더 많다)을 좌익으로 보는 것이다.
한편 진보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상대하려는 보수주의를 까려고만 하지 짝퉁보수주의인 수구세력에 크게 집중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진보주의의 이론적 원천은 보수주의에 대한 반동이다. 결국 어쩌면 같은 편에서 서야할 보수주의 세력을 대적하는데 골몰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에는 실질적인 보수주의가 존재하지 않으니 진보주의는 설 땅이 없다. 지금 한국의 진보주의는 허공에 주먹질하고 있는 셈이다.
대한민국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우선 모든 보수주의자들이 왜곡된 현실을 직시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또한 수구꼴통들을 대한민국에서 영구히 추방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라야 진보주의가 본격적으로 보수주의와 지지고 볶으며 쌈박질할 수 있는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