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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습작했던 단편 소설입니다.
게시물ID : art_850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지평선너머로
추천 : 6
조회수 : 465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03/06 20:19:44

소녀와 잠수부

 

바다를 걷는 소녀의 그림자는 길었다. 언제나 푸른 수건을 어깨에 두른 채 그녀는 잃어버린 '무엇'을 찾고 있었다. 찾게 되면 그녀는 바다로 돌아오지 않겠지.

 

잠수부는 그녀의 '무엇'을 깊은 바다 속 산호초 사이에 숨겼다. '무엇'을 찾기 위해 소녀와 함께 바다의 곳곳을 다니며 그만의 애정을 키워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녀의 실망은 깊어져갔지만, 잠수부의 사랑 또한 깊어져갔다. 바다의 마지막 한 구역만을 남겨두었을 때, 잠수부는 마침내 끝이 왔음을 느꼈다.

 

소녀의 마지막 '희망'이 이 바다의 끝에 머물러 있었으므로.
이제 소녀의 염원은 이루어지고 자신은 다시 바다의 품으로 돌아가야했음을 예견하고 있었다.

마지막 바다에 몸을 맡기기 전, 소녀가 말했다.

 

"이제 그만해요."

 

왜, 라는 잠수부의 질문에 소녀는 말했다.

 

"마지막 희망 만큼은 남겨두고 싶어요."

 

잠수부는 생각했다. 마지막 바다에 뛰어들 것인가 말 것인가를.
소녀에게 있어 희망이 소중한가 실체가 중요한가를.
자신에게 있어 이대로 끝내는 것이 소녀와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를.

결국, 잠수부가 바다에 뛰어들었을 때,
자신이 숨겨둔 소녀의 '무엇'을 향해 다가갔을 때,
잠수부는 자신이 바다에 뛰어들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그곳에 소녀가 찾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세번, 네번, 다섯번 ...

잠수부는 반나절이 넘게 마지막 바다의 구석구석을 조사해 보았지만, 푸른 해초 사이에서도, 잿빛의 바위들 틈에서도, 수면아래 존재하는 황금빛 모래알들 중에서도 그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침내 포기하고 수면위로 고개를 내밀었을 때, 소녀에겐 몹시 초조해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가 해안으로 나와 아무것도 찾지 못했음을 소녀에게 고했을 때, 소녀는 슬픈 듯 웃었다.

 

"미안해요. 당신에게 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

 

잠수부의 말에 소녀는 가만히 고개를 젖는다.

파도가 햇빛에 부딪혀 반짝이고, 간간히 갈매기들이 수면위로 튀어오르는 물고기들을 향해 부리를 내지른다.

 

"이제 가야해요."

 

마지막으로 잠수부의 젖은 머리를 자신의 수건으로 말려주며 소녀는 말했다.

소녀의 마지막 그 말은 잠수부를 슬프게 만들었다.

 

"여기서의 추억은 점점 잊혀져 가겠지."

 

잠수부의 말에 소녀는 침묵한다.

 

"다시 한번, 처음부터 바다를 뒤져보지 않을래?"

 

잠수부의 말에 소녀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존재하는지 조차 알 수 없는걸요."

 

잠수부는 말하고 싶었다.

자신이 바다 어딘가에 소녀가 찾는 것을 숨겼었노라고.

하지만, 결국 그는 말하지 못했다.

그건, 희미해져 지워져 갈 한 줄기 추억조차도 깨뜨려버릴 결과를 가져올 테니까.

 

"만약, 찾게 되면 연락 주실래요?"

 

잠수부는 소녀가 적어 준 쪽지를 받아 곱게 접어 손에 꽉 쥔다.

소녀는 떠났다. 그녀는 잠수부를 돌아보지 않았다.

잠수부는 손을 폈다. 물기로 인해 온통 번져버려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과거에는 어떠한 숫자의 배열이었을 잉크의 흔적이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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