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이라는 말 자체는 나쁜 단어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가령 청소년들은 자신이 동경하는
상대를 마음 속에 우상으로 세운다. 이것이 지나치면 다소 문제가 될수 있지만,
아이들에게 어떤 꿈을 심어 줄수 있다. 요즘은 거의가 연예인이지만 필자가 어릴적만 해도
위인들이 우상이였던 적이 있었던걸로 기억한다. 이렇게 어릴적 자신의 우상이였던 사람은
그 사람의 성장에 많은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이처럼 우상이라는 말은 긍정적인 면도
분명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우상이라는 말이 기독교라는 유일신 종교에 의하여,
왜곡되고, 철저히 배격해야 할 나쁜 단어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실 유일신교의 우상 숭배 금지는 자신들이 믿는 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이였다. 특히 그 종교가 아직 세력이 미약할때 다른 종교를 배타하기 위해
만든 규정이 바로 다른 신이나 종교의 지도자를 우상으로 모는 졸렬하고 천박한 매도이다.
이런 나쁜 관습이 기독교라는 종교를 타고 급속히 번져 지금은 우상이라는 말이
꺼려지는 말의 대명사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렇게 우상을 철저히 배격하는 기독교는 우상을 섬기는
종교라는 점은 무척 흥미롭다. 기독교인들은 어떠한 상을 세우고 거기에 절을 하거나
복을 빌어야만 우상이라고 생각을 한다. 상당히 협소한 사고이다.
이러한 사고의 틀로 보아도 기독교는 우상 숭배의 종교이다. 교회를 가보라, 교회 지붕마다
붉은 불삧을 번쩍이는 십자가를 볼수가 있다. 또 기독교인들의 대부분의 가정에,
자동차에도 십자가가 매달려 있다.
그러나 사복음서 어디를 봐도 예수는 자신이 죽은 후 십자가를 자신처럼 떠받들라고
가르친 적이 없다. 또 자신의 십자가는 자신이지는거라고 가르쳤다.
그럼 소위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그리스도교는 무엇을 섬기고 있는가? 예수인가
아니면 십자가인가? 정작 자신들은 교회에 우상을 세워 놓고, 신성하다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기독교와 카톨릭이 마리아상을 놓고, 우상이니 아니니 갑론을박하는 것은
코메디가 아닐수 없다.
우상의 범위를 더 광의로 해석을 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그들이 그처럼 신주단지로
떠받드는 여호와가 우상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왜 신이 창조주가
우상이냐고 물을 것이다. 앞으로 나오겠지만 여호와는 창조주도 하나님도 아닌
히브리 일부 지방의 조상신에 불과하다. 이 문제는 본론과는 다소 동떨어지므로
뒤에 기회가 되면 설명하기로 하고 주제로 돌아가 보자. 신이 왜 우상인가?
앞에서 필자는 마음속에 우러르는 대상이 있으면 우상이라는 정의를 이미 말한바 있다.
즉 여호와라는 하나의 추상적인 존재를 구체화 하여 믿고 세우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의 우상인 것이다. 그것도 사실과는 전혀 달리 왜곡되고 과장되어
인간을 속박하는 일반적 의미에서의 우상이나 긍정적 의미에서 우상이 아닌
그야말로 인간에게 해악이 되는부정적 우상의 대명사가 바로 이런 인간의 정신을 갉아 먹는
쓰레기 우상인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자신들을 종속의 굴레로 묶어
종으로 전락 시키고, 그 안에서 무엇인가를 얻어 보려는 천박한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또 그것도 모자라 다른 사람들까지 자신처럼 노예화 하려는 것이
바로 기독교 그리스도교라는 종교이다.
신비인 공갈거사 동이선민의 칼럼은 반기독교 운동(www.acm.wo.ro)에 가시면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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