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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의 첫번째 북벌
게시물ID : bestofbest_4842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사일런트힐
추천 : 182
조회수 : 39205회
댓글수 : 3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1/04/04 18:38:10
원본글 작성시간 : 2011/04/04 07:28:50
* 오유에는 역사 게시판이 필요합니다. * 100% 삼국지 정사를 토대로 쓰여진 글입니다. 삼국지에 여러 전투가 있지만 아마 가장 큰 이슈가 되는 전투 중 하나가 아마 제갈량의 북벌일 것입니다. 그 중 첫 번째 북벌은 너무나도 높은 성공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고 초중반까진 상당히 성공적이었지만 결국에 아쉽게 실패하고 말지요. 제갈량의 북벌 중에서 그나마 가장 많은 기록이 남아있는지라 당시 상황을 재현하고 제갈량의 의도를 찾는 게 수월한 북벌입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제갈량빠로선 무언가 더 아쉽고 그렇기도 합니다. 1차 북벌은 일단 후방의 위협을 없애기위해 남만 정벌을 끝내고 제대로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225년 봄에 군사를 이끌고 남쪽으로 간 뒤 그 해 가을 정벌을 마치고 돌아오지요. 굉장히 빠른 정벌이었고 실질적인 피해도 거의 없었을 거라 봅니다. 그리고 그 후 남쪽에서 조공되는 물자로 인해 안 그래도 면적대비 생산량이 높은 익주의 물자는 상당히 풍족해 졌습니다. 그 뿐 아니라 북벌을 대비해 군사 훈련과 제대로 된 전쟁준비를 2년 가까이 합니다. 마침내 227년 군을 이끌고 한중 면양현에에 주둔하지요. 이 때 그 출사표로 유명한 상소문을 올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건흥 6년(228년) 마침내 제갈량의 첫 번째 북벌이 진행됩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것과 다르게 제갈량의 의도는 전한의 수도였던 장안을 점령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장안은 현대에도 상상하기 힘들정도로 엄청난 규모였고 화약무기가 없던 시절 정공법으로 점령이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거대한 성이었습니다. (장안성의 규모를 대충 요약하면 전체 둘레는 약 25km. 동서남북 각각 평균 6km, 성벽의 평균 높이는 10m이상, 성벽의 두께는 7~8m, 성 둘레에 파 놓은 해자의 폭은 30m, 깊이는 3m 의.. 말도 안 되는 규모의 성이었지요. 실제 삼국지 전체에서 장안을 점거한 건 이각이 여포를 상대로 점거한 것이 유일한데, 당시 10만 규모로 포위를 했고, 그나마도 정공법이 아닌 성 안의 내분에 의해 점령당했습니다.) 당시 상황을 지도로 그리면 제갈량의 의도를 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외부이미지
(출처 : 삼갤 구라뱅뱅님) 일단 제갈량은 군을 크게 두 부대로 나눕니다. 하나는 자신의 본대이고 다른 하나는 조운/등지의 별동대이지요. 위나라와 본대 vs 본대의 전면전 상황이 되면 어떻게 될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갈량은 조운/등지로 하여금 미로 진군하게 하면서 최대한 위나라에 혼란을 가중시킵니다. 실제 이 때문에 위나라도 군을 나눠야 했는데, 문제는 어떤 게 본대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겠지요. 그리고 위는 당연히 들어온 정보를 신뢰하게 되고 조운/등지에 자신의 본대를 보냅니다. 일반적인 상식인 마속 vs장합, 조진 vs 조운의 매치로 생각되는 이 상황은 당시 대장군이었던 조진 vs 조운, 제갈량 vs 장합의 매치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누가봐도 매치업에선 촉이 유리한 상황이었지요. 조운은 조진의 본대를 상대로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제갈량의 본대는 기산으로 향하고 순식간에 양주를 점령해 나갑니다. 이 때 양주의 남안, 천수, 안정의 세군이 촉에 항복을하게 됩니다. 제갈량의 본대는 천수에 주둔해 당시 북벌의 핵심이었던 가정을 점거하기 위해 가지요. 가정을 점거한다는 건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가정을 점거함으로써 위군과의 대치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도에서 보면 알겠지만 조운이 미로 향한 루트는 그 길이 너무나도 험난합니다. 결국 촉군과 위군이 제대로 맞닥들일 수 있는 곳은 가정이 거의 유일하고 이 길목만 잘 지키면 이동안 제갈량의 본대가 양주를 확실히 점거할 수 있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제갈량이 조운의 군대를 나눈 또 하나의 이유가 보이는데, 제갈량의 본대가 천수등를 점령하는 사이 조진의 본대가 한중을 점거하는 뒷치기 상황을 예방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조진의 본대가 미친척하며 험한 산길을 통과해 천수로 향하는 변수를 모두 막고자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갈량의 꼼꼼한 성격이 여기에서 잘 나타나지요. 또 하나는 양주 점거위의 국경선을 확실히 긋기 위해서인데, 전쟁에선 점령도 중요하지만 점령후의 방어 역시 너무나도 중요한 사항입니다. 그럼 가정을 제대로 점거하면 지도의 빨간선처럼 가정의 루트와 함께 진창, 그리고 위수의 험난한 지형이 자연스럽게 방어선을 만들어주게 됩니다. 쉽게 말해 가정, 진창, 한중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국가 경계선이 생기는 것이지요. 보다싶이 제갈량의 북벌은 절대 장안의 점령이 목적이 아닌 양옹주를 갈라 대치하기위한 의도가 확실히 보입니다. (당연히 위연의 자오곡계책은 그 현실성도 없을뿐더러, 제갈량의 그림과도 완전히 동떨어진 계책이었습니다.) 이렇게 천수를 점령하던 제갈량은 가정으로 진격중인 장합을 막기위해 선봉대를 보내지요. 이 때 선봉을 맡기로 논의가 된 장수로는 위연, 오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위연은 이 작전에 투입되기에는 마속보다 더 적합치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오천만 땡겨줘요, 그럼 장안으로 돌진할게요. 하는 위연에게 적과 맞써 전면전을 벌이는 게 아닌, 대치 방어를 해야하는 상황의 장수로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지요. 앞에서 말했듯이 가정에서 촉은 위군을 상대로 전면전을 해서도,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럼 남은 것은 오의와 마속뿐인데, 오의는 위연과 다르게 전쟁경험이 그렇게 월등히 많지도 않았고 황실의 외척인지라 평소 자신이 옆에서 그 재능을 지켜보단 마속을 더 신용합니다만... 아시다싶이 이는 제갈량의 가장 큰 실수, 너무나도 결정적인 실수였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제갈량의 꼼꼼한 성격은 나오는데, 당시 위연이외에 가장 전쟁경험이 많았던 위에서 투항한 장수인 왕평을 부장으로 딸려 보냅니다. 가정에서 해야할 마속의 역할은 아주 뚜렷했는데, 바로 처음 조운/등지가 했던 그 역할. 그걸 하는 것이 마속의 임무였지요. 최대한 전면전을 피하고 시간을 끌며 대치상황으로 만드는 것. 그런데 여기에서 마속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바로 등산, 거점을 버리고 산으로 올라가버리지요. 왕평은 마속에게 진언하지만 제대로 통하지 않습니다. 황당한 건 적군인 장합도 마찬가지였을테고 너 대체 뭐하는 것임? 하는 생각으로 물길을 끊어버리고 이에 촉군은 당황하게 됩니다. 마속은 이마저도 제대로 정돈하지 못하고 장합의 공격에 대패를하게 되지요. 이 때 유일하게 왕평만이 자신의 밑의 천명의 장수를 잘 통솔해 흩어졌던 군을 다시 모으고 천천히 후퇴합니다. 이 전투에 참가했던 거의 모든 장수들, 장휴, 이성, 황습등이 벌을 면치 못하는데 오직 왕평만이 승진하게 됩니다. 이렇게 거점을 잃어버린 제갈량은 가정을 잃음으로써 처음 그렸던 방어선이 깨져버렸고 가정으로 진격하자니 거점이 없고 천수에서 전면전을 하자니 부담이 너무 심해 결국 천수에 있는 천세대의 가구만 강제로 한중으로 이주시키며 후퇴합니다.. 그리고 마속은 참수당하고 제갈량은 병사들에게 사죄하며, 스스로 관직을 우장군으로 강등하는 것으로써 첫번째 북벌은 끝나게 되는 것이지요. 이로써 가장 성공확률이 높았고 준비가 잘 되었던 제갈량의 북벌은 실패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단순히 성공했냐, 실패했냐가 아닌 제갈량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전쟁에 임했느냐를 보면 훨씬 더 재미있고 깊게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 오유에는 역사 게시판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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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5 03:44:54추천 0
곽가가 살아 있는 위나라와

손견이나 손책이 살아있는 오나라가 늘 궁금했었죠 전...
댓글 0개 ▲
2011-04-05 03:14:05추천 0
유비는 제갈량하나만으로도 천하를 휘어잡을뻔했죠.. 

방통이 없어도 제갈량하나만 있어도 됨..

오히려 둘이 있으면 더 결단이 쉽지 않앗을듯..

댓글 0개 ▲
2011-04-04 07:58:18추천 52
방통만 살았더라도 삼국의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텐데...
댓글 0개 ▲
2011-04-04 08:09:18추천 0
참치드림..
댓글 0개 ▲
2011-04-04 08:09:53추천 29
방통은 유비가 어렵게 얻었더니 별 활약도 못하고 눈먼 활에 맞아 끔살

와룡봉추의 봉추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리다니

어린 시절 삼국지를 읽을 때 와룡 봉추를 얻었으니 유비가 킹왕짱이 되겠거니 했었는데... 쩝


근데 왜 갑자기 봉추로 산을 타고 있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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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09:15:31추천 6/15
게시판은...디씨로 가던지 삼국지카페를 가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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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09:19:35추천 13
삼국 연의 촉빠인 내가 싫어하는 장수들

마속, 육손, 여몽, 장달, 범강, 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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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09:33:25추천 14/20
어휴 삼갤러 냄새..너님들 오유에까지와서 삼국지 이야기 하지 마시죠?

ㅉㅉ이래서 촉빠는 답이없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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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09:34:35추천 48
방통도 그렇지만 곽가가 살아있엇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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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09:38:53추천 39

육손과 여몽은 그들 입장에서 보면 최고의 무장들이죠

마속은 믿던 주인발등을 제대로 찍어버리고, 유선은 ㅄ 후계자였고.....
댓글 0개 ▲
2011-04-04 09:40:29추천 13
역사 게시판 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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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09:44:43추천 16/20
역사게시판에는 나도 찬성하는데

기껏 역사게시판의 목적이 삼국지더냐?

너네 양만춘이 누군지는 아냐?

대조영아버지 이름이 뭔지는 아냐?

온달장군의 손자가 누군지는 아냐?

자국역사에는 좆도 관심없는새끼들이 역사게시판은 개뿔

차라리 삼국지게시판을 만들어달라고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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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
2011-04-04 09:54:57추천 34
1

아니 꼭 이런새끼들이 있어

넌 그러면 자국 역사 완벽히 마스터해서 세계역사 배웠냐??

흥미가 있는쪽을 먼저 배우게 되는거지

삼국지 즐겁게 보다보면 년도 별로 아 이때 우리나라는 뭐했을까

어 그럼 이때 그리스 로마는 뭘하고 있었지

이런식으로 배우는거지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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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10:04:20추천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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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10:12:37추천 4
마초가 장안 점령 하지 않았었나요?????

서량 기병 마초...금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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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10:19:48추천 2
마초가 장안을 점령했던건, 삼국정립도 전에 이야기이고, 그마저도 금방 조조의 반격에 무너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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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10:27:35추천 4

마초가 장안을 점령했다는 기록은 삼국지내에 없습니다.

다만, 장안 넘어에 있는 동관을 포위했다고 하기에
정황상 장안을 점거했을 것이다.. 라고 추측할 뿐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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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11:08:33추천 0
아오 진짜 마속 개갞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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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11:10:54추천 6
태양이 둘일수 없듯이 제갈량의 등장으로 방통은 자연히 밀려날 수 밖에 없었죠. 

유비군 2인자 관우도 제갈량에게 밀려났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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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12:08:46추천 4/3
1
제갈량의 등장으로 방통이 밀려날수 밖에 없다뇨. 유비야 말로 얼마나 인재를 잘 끌어오으고 잘 썼던 인물인데.
유비의 입촉당시 형주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관우였고. 제갈량이 강하게 떠오른건 유비의 죽음 이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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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12:14:50추천 13
그래도 강유주워왔잖아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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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12:21:56추천 0
피쟐 성식님이시군용ㅇ_ㅇ 글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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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12:28:35추천 1
흑.. 간옹이 짱이야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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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12:38:06추천 29
히로준//유비가 인재를 잘 끌어모으고 잘 썼다는 이야기에는 동의를 못함..

유비가 등용한 인재야 제갈량, 조운 빼면 없다고 봐도 되는데 관우 장비야 형제고

좀 더 보태봐야 간옹 미축 정도..

방통도 얻긴 얻었으나 생김새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처음에 잡일이나 시키고..

인재를 정말 잘 쓴 군주는 조조죠.

제갈량은 그나마 없는 인재들 짜내고 짜내서 효율적으로 썼다는 느낌 정도..


암튼 다음편도 올려주세용~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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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12:53:32추천 0
제목보고 깜놀했네요 ㅎㅎㅎ;;
댓글 0개 ▲
2011-04-04 13:35:03추천 15
조조는 무엇보다 전장에 직접 참여하고, 전략을 교분하였기에 장수들과 교감이 무엇보다 높았음

산하에 기라성 같은 인재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전장에 같이 나가고 의기를 북돋음

덕분에 죽을 고비도 숱하게 넘김.. 이러니 장수들이 뻑가지.

그리고.. 운이 정말 좋음.. 관도대전의 경우만 봐도 조조의 인물됨과 매력을 볼수 있음.

그로인해 황금땅인 중원을 독차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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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13:35:56추천 1
여러모로 가정전의 패비는 촉의 멸망의 지름길이었음. 병신 마속...

이후 저 경계선을 함락못해서 제갈량도 지쳐죽고. 가뜩이나 시골산속이라 병역인들도 부족한 판국에..

그리고 서촉이 물자가 풍부한 지형이 아닌걸로 알고 있습니다. 

유비의 장점은 덕을 쌓는 덕장이라고 평가되지만. 이것보다 더 대단한것이 사람을 볼줄 알았다는것.

제갈량은 철저히 능력위주로 사람을 평가하였지만. 유비는 사람을 파악할줄 알았다는것이 가장 장점이지요

아스널의 벵거감독 같이 유망주와 포텐을 볼줄 알았던 유비..

자신의 사람과 적을 분명히 표현을 하는 유비가 죽자마자. 촉이 멸망한것을 보면 

현시대처럼 유비를 저평가 하는것도 좀 잘못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군주는.. 군주지요.

가정전의 패배는 무엇보다 마속을 저평가했고 신뢰하지 말라고 당부를 했던 유비의 유언을 깔끔히 무시한 

제갈량의 실수였지요. 제갈량은 군주상이 아니란 것이 이런점에서 증명됐지요. 

물론 본인이 잘 알고 있어 다행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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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13:53:56추천 5
읍참마속이라고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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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14:30:07추천 13
솔직히 촉의 가장 큰 손실은 법정의 요절이라고 봄.

유비가 입촉한 이후 한중에서 조조랑 맞짱 뜰때 조조군을 완전히 농락한 전략전술의 입안을 모조리 법정이 했음.

유비의 신임도 대단했고 동료들로부터도 인정을 받는 모사였는데 어이없게도 요절....ㅠ_ㅠ

뭐 암튼간에 북벌 당시 제갈량의 큰 그림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소전략을 이행할 수 있는 장수가 부족했다는게 가장 큰 약점이었던것 같습니다.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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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15:30:24추천 0
촉 멸망의 지름길이였던 북벌
댓글 0개 ▲
2011-04-04 15:44:31추천 0
안녕 사힐횽
여유나는대로 지원사격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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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15:57:46추천 7

나 불렀나요?
....는 훼이크고, 역사게시판을 만들어주세요!
댓글 0개 ▲
2011-04-04 17:25:30추천 3
유비 - 애초에 제갈량 시키는대로만 했으면 삼국통일 했을지도 모르는데 지혼자 의로운 사람처럼 보이려고 뻘짓거리를 해서 주위사람 힘들게 함.
제갈량 - 관우를 라이벌로 생각해서 형주에서 홀로 싸우다 죽도록 방치했음. 이때문에 장비, 유비도 얼마못가 사망.. 그리고 솔직히 형주는 오에게 주는게 도리에는 맞는데 (전쟁에서 그런게 어디있겠느냐만, 동맹국으로써 오를 이용만 하고 버림) 간사한 입놀림으로 사람좋은 노숙만 고생시킴.

손권 - 결단력은 좀 부족할지 모르지만 부하들을 예로써 대하고 부하의 의견에 귀를 잘 기울임.
주유 - 조금만 화를 누그러뜨렸으면 큰 일을 했을텐데 제갈량한테 너무 일찍 죽임당함.. 아까운 인재.

결론 - 난 촉보단 오가 더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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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17:27:02추천 2
위에서 시작을 그렇게 한다면.....

동탁이 이유의 말만 들었더라도....읭?

여포가 진궁의 말만 들었더라도.....읭?

원소가 저수, 전풍의 말만 들었더라도....읭?
댓글 0개 ▲
2011-04-04 18:41:43추천 1
결국엔 사마가문이 다 먹는 스토리..
댓글 0개 ▲
2011-04-04 18:42:08추천 1
근데 진짜 사마의는 제갈량 이후에 아무도 대적할 사람이 없으니 그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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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18:42:24추천 2
역사에는 '만약'이 없음
댓글 0개 ▲
2011-04-04 18:49:18추천 27
마속:하하하 승상 저의 산타기 실력을 보시지요!

제갈량: ㅅㅂ
댓글 0개 ▲
2011-04-04 19:09:16추천 8/3
유비의 용인술이 조조보다 뒤떨어진다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조조군의 주요 면면은 조인/조홍/조진/조순/하후돈/하후연/하후무 등등 
친인척으로 꽉 차있는데요, 특히 하후목사라고 조롱받는 하후돈이 그 한가운데 있죠.
친인척경영, 족벌경영이라고 할까요..능력도 있는 장군들이고
난세니까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써야하는건 맞지만요.

반면 유비는 실제 혈연으로 이어진 부하는 하나도 없었고
그나마 정략결혼으로 만든 게 미축미방/손권/오의 정도입니다.
관우장비가 의형제니까 기용이 아니라고 하는건 좀...말이 안되죠.
유관장이 정말로 의형제였는지도 불분명합니다. '은혜가 형제와 같았다'는 말이
정식역사서에 남겨진 유일한 말입니다.
오히려 촉이 무너질 때까지도 촉을 지탱한건 형남4군시절 영입한 인재층인걸 감안하면
유비가 사후에는 이전만한 인재등용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전반 생애가 베일에 쌓인 황충, 바닥에서 승진한 위연,
지기 간옹, 한중전에서 포텐을 터트린 법정, 술상무 유염,
성격파탄자 팽양, 나라가 망하는게 낫다고 떠들고 다니는 초주...등등
면면을 보면 오히려 능력중심으로 인물을 기용한 건 유비죠.
댓글 0개 ▲
2011-04-04 19:25:15추천 20

ㅋㅋㅋ간손미를 빼놓고 삼국지를 논하지 말라!
댓글 0개 ▲
12Ω
2011-04-04 19:41:33추천 8
ㅋㅋㅋㅋㅋ 위엣분 조조가 기용제가 아니라면 

친아들 조앙과  친위대 전위를 죽인 가후를 어떻게 부하로받아줌?

유비와 조조를 비교하는거 자체가 넌센스지
댓글 0개 ▲
2011-04-04 19:57:58추천 0
우리나라만큼 삼국지에 대한 고수들이 많은 나라도 드물것이다. 

나도 삼국지를 하도 많이 읽고 게임도 많이 해서 그런지 

삼국지 역사가 줄줄이 입에서 나올정도. 

군시절에 위병소 근무나 탄약고 근무할때 시리즈로 이야기를 할정도로 

ㅋㅋㅋ 
댓글 0개 ▲
2011-04-04 20:09:46추천 9
삼국지관련글은 이게 없으면 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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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20:10:43추천 7
사실 북벌은 마초가 살아있었으면 상당히 쉬웠을거 같은데요

마초 이 형이 어마어마했잖아요... 여포와 함께삼국지에서 힘으로 조조군을 쳐바를수 있는 몇 안되는 장수인데..다들 조조하고 싸울때 마초가 깽판친 거 기억하시죠? ㅅㅂ 조조가 오줌싸면서 허저 뒤에 숨어서 그런 식으로 도망가는 건 예삿일이 아님 ㄷ

특히 장안 서쪽 농서지방은 마초의 빽그라운드나 다름없는 지역이지요

당시 강족들은 마초를 신위대장군으로 떠받들면서 거의 하느님과 같은 취급을 하였음

오오 마느님 굽신굽신 이러면서..

마초 하나로도 조조가 그렇게 애먹었는데 마초+제갈량이면...음......

조조의 관서 정벌은 진짜 탁월한 선택이라고 보여지네요

만약 관서지역이 제대로 평정되지 않았더라면....낙양까지 그냥 휩쓸렸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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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20:21:57추천 1
아 글고 마초가 장안 점령했다는 건 확실치 않음 

매우 논란이 되는 떡밥 ㅋ

그래서 최훈 삼국전투기에도 마초가 장안을 그냥 지나가서 동관을 점령하고 거기서 싸운걸로 스토리 전개 중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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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20:56:27추천 1
우리가 알고있는 삼국지 자체가 삼국지 연의라는 소설 아닝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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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21:02:39추천 2/3
여기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랑 정사 삼국지랑 구분못하는 것들이 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설이랑 역사 좀 구분좀 해라 멍청이들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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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21:27:07추천 8
나도 연의, 정사 다 읽어봤는데..
꼭보면 자기 정사 읽었다고 위에처럼 깝치는넘들이 있더라..
애초에 역사서라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 들어 있는건데 
짱개 역사서랑 쪽바리 역사서랑 우리나라 역사서랑 다 다르듯이 말이다..
연의는 소설이고 정사는 마치 개진리라는 듯이 깝싸대는넘들 보면 좃나 한심하더라 
정사는 진짜 사실인 것 같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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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21:46:21추천 1

꼭 이딴 외국역사는 많이알고 우리나라 역사는 모르는인간들 많더라 

삼국지내용은 줄줄이 꿰면서 윤봉길이 누군지도 구분못하는 인간들 반성하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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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21:53:25추천 0
헐 이런거 진짜 알고 싶었는데....... 그렇구나.......... 와..!! 대박 ㅋㅋ 

제갈량이 천재란 사실을 여기서 알아가네.... 삼국지 책은 대부분이 구라라..

제갈량은 큰 그림을 진짜 잘 그리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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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21:55:21추천 1
마초맹기/ 조조가 마초한테 쫀게 아니라, 마초가 조조 썰러 갔더니 허저한테 쫄아서 호후드립 치고 그냥 살살 기어나온거 모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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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22:29:23추천 1
방통이랑 법정만 살아있었어도...
(정사에서 방통은 포위공격하다가 눈먼 화살에 맞아죽었습니다. 멍청하게 낙석계에 당한게 아니란 말씀. 법정은 지병으로 죽었고.)

이릉에서 안그래도 없는 인재들 몰살 시키지만 않았어도...

아니 적어도 황권만이라도 촉에 남아있었어도...

역사가 많이 달라졌을텐데 말이죠.

유비 사후..

촉에 진짜 인재 없습니다;; 내정이야 촉의 4재상이 있다지만, 그외엔 ㅡ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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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22:30:35추천 1
그리고 곽가가 성격이 진짜 드러웠다더군요.

조조한테 전략을 건의할 때 조조가 받아주면 손뼉을 치며 기뻐했지만,

안 받아주면 욕을 하며 침을 뱉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순욱마저 죽게만든 조조한테 욕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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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2011-04-04 22:48:42추천 1
방추까지도 필요 없고 무장이 절실히 필요했던 이때
장비,관우만 살아 있었어도 ㅜㅜ....


만약에 마초,장비,관우,황충,방통 이들만 다살아 있었어도
천하통일은 촉이 할수도 있엇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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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22:50:55추천 4

천하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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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22:57:56추천 7
이것들아 에덴동산에서 사과만 안따먹었어도 이런일 없었어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따지다 보면
한화도 강팀이다 이것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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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23:01:42추천 0
여기서도 정사 드립치는 사람들이 꼭있군요.. ㅋㅋ

반대로 해석하면 위(진)나라의 신하가 쓴 진수의 정사인데. 이사람이 과연 올바르게 ㅤㅆㅓㅅ을까??

모르긴 몰라도 민감한 이야기는 스스로 알아서 낮춰서 ㅤㅆㅓㅅ을것이 분명한데..

위나라의 컨펌을 받는 진수의 정사가 과연 사심이 하나도 안들어 갔을까?? 

아무리 역사서라지만. 황제의 개념이 있는 중국역사서를 100% 신뢰하는것도 코메디임

하물며 진수는 촉에 있을때 완전 찬밥 대우받던.. 그런 인물 아니던가.. 그러니 살아남았을테고..


물론, 연의가 판타지이긴하지만 민화와 풍문. 무엇보다 민심을 바탕으로 쓴것이라

무조껀 곡해하는것은 잘못된 해석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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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5 00:19:35추천 3/7
<img src="data:image/png;base64,iVBORw0KGgoAAAANSUhEUgAAAAEAAAABCAYAAAAfFcSJAAAAAXNSR0IArs4c6QAAAARnQU1BAACxjwv8YQUAAAAJcEhZcwAADsQAAA7EAZUrDhsAAAANSURBVBhXYzh8+PB/AAffA0nNPuCLAAAAAElFTkSuQmCC" class="reply_img lazy" data-original="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104/1301930375079.jp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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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23:12:20추천 0
역사를 논하는데 있어서 특히 유의해야 할 점은
모든 역사서들은 일정부분 거짓말을 하고 있고,
고의로 거짓말을 하지 않더라도 역사서는 사관의 관점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사관은 전지적3인칭 관찰자가 아니라
특정한 나라에서 태어나 특정집단과 정치경제적 이익을 공유하였고
특정한 가치체계를 통해 세계관을 형성하여
그렇게 세워진 관점을 통해 역사를 기록한건데
역사서라고 해서 100%진실만 있을리는 없죠.

특히 중국역사를 기록하는 기전체는 기전의 주인공을 중점으로 서술하기 때문에
어떠한 사건에 대해서 알고싶다면 그 인물 뿐만 아니라 그 사건에 관련된 인물의 기전을 두루 찾아봐야 합니다.

역사연구자들은 사관이 전지적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때로는 역사적사실과 다른 내용을 기록했을 수도 있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지요.
기전체에서는 이런 주의를 더욱 기울여야 합니다.

정사삼국지라고는 하지만, 문학작품이 아니라 정식역사서라는 뜻이지
100% 진리라는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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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23:14:56추천 0
고딩때 학교에 명사초빙해서 말하실때,

강의하시던 분이 얘기다하가 조조얘기를 했는데

조조가 난세인 시대에 태어나서 간웅이라고 불렸지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영웅이라고 불렸을 거라고 하시더군요..

근데 정말 생각해보면 조조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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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5 00:17:24추천 0
삼국시대는 말하자면 황금시대였습니다

전략과 전술 전쟁의 기술이 최고도로 발달한 시기이며 인재 또한 중국 역사상 나올 인재의 절반을 삼국시대에 쏟아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뛰어난 인재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불과 한세기도 안되는 짧은 시간 동안 정말로 수많은 명장과 명신들이 나타나고 사라졌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름만 대봐도 위촉오 모두 기라성같은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막강한 국력과 재능있는 군주, 썩어넘칠 정도의 인재, 이 3박자를 고루 갖춘 위가 괜히 삼국통일을 못한게 아니죠

아쉬운 점 하나씩을 꼽자면 위는 골 결정력이 부족했고 촉은 처음엔 훌륭한 인재가 많았으나 그 인재들이 하나같이 요절을 했다는 것이 참 안타까운 일이죠 그리고 오는 특유의 수비본능으로 중원으로 진출할 생각이 없었고요

결국 삼국시대는 자멸과 세대교체로 막을 내리게 되죠

뚜렷한 승자없이 수많은 영웅들이 싸우고 사라졌기 때문에 삼국지라는 것이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렇게 빛나지 않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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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23:43:15추천 0
왠지, 역사게시판 만들어지면 또 시사게시판같은상황이 일어날것 같은 느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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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23:47:00추천 0
삼국지에서 판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전투 2개가 다 조조와 관련된 전투죠

관도대전 적벽대전 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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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5 00:01:34추천 0
아무리 정사에 사관이 들어간다고 해도 소설하고 같은 취급을 하나?

소설의 사전적 정의가 먼지 모름?

삼국사기랑 홍길동전 만큼의 차이가 있는 겁니다.

역사문제에 홍길동의 업적이 나오나요?

그건 국어시간에 나오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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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5 01:12:10추천 1
삼국지는 제갈량죽으면 재미없음그래서 지금까지 마지막편을 안읽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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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5 01:17:05추천 0
손건이랑 방통중에 누가 더 운이 없는걸까..

둘다 잘못쏜 화살을 맞아 죽었다는데..

하나는 살아만 있었다면 삼국지 1세대중에서 으뜸이라 평가를 받던 사람이고

하나는 봉황이라는 칭호를 듣던 인물이었는데..

손건이 살아있었을대의 오의 행보와

방통이 살아있을때의 촉의 행보가 진짜 궁금허다..

더불어 곽가가 살아있었다면...?

캬.ㅋㅋㅋㅋㅋㅋㅋㅋ이 세명 다 살려놓고 ㅋㅋ

위촉오 나누고 다시 전쟁하면 재미나겠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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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5 01:25:19추천 1
1
손건이 아니라 손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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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5 01:29:28추천 0
좋은 글이네요, 추천하고 갑니다. 물론 읽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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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5 07:17:55추천 0
누가봐도 장안을 우려빼는게 북벌의 목적이었는데;;

저렇게 가는건 제갈량의 성격탓인 것 같아요.
완벽을 추구하면서 한단계한단계 나아가는 그런 스타일의 사람인지라
장안 서쪽을 완전히 평정한 후에 나아가려는 생각이었고 그 단계중 하나가
가정 서쪽을 점령하는거겠죠.

위연의 계책도 나쁘지 않은게 사실 촉의 전력은 위의 1/6정도인데
쉽게 말하면 촉은 6연승해도 위한테 한번지면 지는거라
(장기전으로가면 체감은 그것보다 더 큼) 정공법으로는 한계가 있는데
그 측면에선 위연의 계책도 좋다고 봅니다. 뭐 안 해봤으니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제갈량이 군사적재능이 별로라고 평가받는 이유중의 하나가
저런 측면인데 뭐 일면 이해가 가긴합니다. 자기가 끌고 나온 전력의
촉의 대부분 전력인데 그걸로 도박하는건 좀 힘들었겠죠.

그러고보면 유비가 끌고 나갔던 병력이 참 아쉽다능.
관우 혼자 전개했던 대위 대오 투쟁도 좀 그렇고. 
그 두 사건만 아니었으면 촉이 형주를 잃고
익주에 쳐박혀서 지방중소 군벌 정도로 주저 앉는 일은 없었을텐데..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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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2011-04-05 10:02:35추천 0
ㅋㅋㅋㅋㅋ/ 이 글 작성자 다른 글보기 한번만 해보슈 당신보다 한국 역사에 대해 훨씬 박식하고
             관심가지고 있는 거로 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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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2011-04-05 10:10:54추천 1
정사를 믿을 수 없다는 분은...음 글쎄요

적어도 그 당시 기록된 정사와
몇 백년 후에 소설가인 나관중이 쓴 연의
어느것이 진실에 가까운지는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무엇보다 나관중의 삼국지 연의 는 소설 이라구요

이건 마치 불멸의 이순신 보면서 드라마 내용이 다 사실일거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에서 기록한 것이니 믿을 수 없어
란 것과 비슷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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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6 09:25:02추천 0
안감독/
제갈량의 목표가 단순히 장안을 ㅤㅃㅒㅤ앗는거셍 있지 않다고, 그 논거를 글에서 잘 설명해놨구만
글은 읽지도 않고 글을 써대니 참...
악진/
위에 누구도 정사가 100% 맞다는 사람은 없는것 같습니다만.. 단지 연의만 보고 거기에 근거한 말들을 하니 정사도 읽어보라는거죠.
개독박멸/
무조건 곡해하는것이 아니라 정사와 연의간에 차이가 날 경우에는 정사를 우선해야되는건 당연한거 아닌가요? 기존의 역사서들의 주장을 뒤엎을 증거라도 있다면 모를까..
댓글 0개 ▲
2011-04-06 15:49:42추천 0
디씨 삼국지갤 가면 대충 재밌는 얘기 많이 들을 수 있는데..

그중 가장 재밌는게 동탁성군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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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6 23:04:56추천 0
육손은 왜 까는거지? 오나라 입장에선 a급 장수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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