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준비를 하면서 하루이틀 보내다보니 장마까지 와서 보름을 미뤘다.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지경에 와서야 나는 자전거에 짐받이를 메고 출발할 생각을 가졌는데 처음 짐받이 연결하고, 샤워하고, 짐받이 가방을 사니까 이미 늦은 8~9시가 되서 패스. 그리고 그날 하필 늦게자서 다음날 오후 1시에 일어나서 또 패스. 결국 17년 15일 토요일 아침 9시에 출발하게 됐다.
홍대에서 출발한 자전거는 한강길을 따라 쭉 갔다. 한시간쯤 갔을때 난 그때 알았다. 내 자전거 안장은 페이커다. 이 새끼는 어떻게 앉아도 아프다. 7년만에 처음타는 자전거기도 하지만 나름 참을성은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니다. 이 자전거 안장자체가 페이커다. 페이커가 잡았죠? 하고 밥로스아저씨처럼 간단히 킬하듯이 내가 어떤 자세를 하든지 아프죠? 하면서 내 엉덩이를 줘팼고 덕분에 엉덩이는 여러 구역에 나뉘어서 골고루 아팠다.
결국 도저히 못참겠어서 자전거를 세워 벤치에 앉아 엉덩이가 왜그렇게 아픈가 검색했는데 ..ㅎㅎㅎ 모든 자전거인들의 이야기는 동일했다.
"원래 아픔 ㅎㅎㅎㅎ" 그리고 뭔가 설득력이 있는 글이 있었는데 이런 글이었다. " 안장이 편안한 자전거에 비해 로드는 안장이 딱딱하고 불편해서 누구든지 아프다. 그냥 참고 타다보면 나아지고 거기에 근육이 생긴다. 결국 정신력 싸움이다." 이 묘한 맥락이 나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기껏 한시간 타고 아파서 벤치에 앉아있었다니 하는 패배감과 "ㅎ 뉴비들"하는 느낌의 글들은 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래 이제 아무것도 날 멈출 수 없다. 달리자 ! 하고 마음을 굳게먹었다. 그렇게 달려서 난 길을 잘못들었고 한시간을 다시 돌아갔다. 이래서 멍청한 애들이 신념을 가지면 무서운거다.
한번 잘못들었던 길을 돌아서 다시 쭉가다보니 역시 신은 날 좋아한다. 태풍과도 같은 소나기가 오기 시작했다. 아니 소나기라고 할 수 없다. 애초에 장마철이니 정말 어마어마한 비가 쏟아졌다. 젖은 안경을 티셔츠에 꽂아넣고 아 몰랑 하며 엄청 페달을 밟다보니 자전거 쉼터(?), 휴게소(?)같은 곳이 나왔다. 그덕에 비도피하고 음료수도 한잔 마실 수 있었다. 마침 앉아서 좀 쉬다보니 비도 점점 그쳤다.
17년 07월 15일 쉬고있는 자전거
17년 07월 15일 자전거 휴게소(?)의 풍경 하늘이 무섭다
달리면서 노래를 들으니 여러 생각과 동시에 자전거 안장에 대한 욕밖에 떠오르지 않아서 팟캐스트를 들어보자 해서 팟캐스트를 다운받았다. 친구이 추천으로 '그것은 알기싫다'를 듣는데 재밌어서 두편을 들으며 가다보니 난 이미 서울을 지나왔다. 근데 이상하게도 옆의 한강이 너무 작은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난 두번째로 길을 잘못들었다. 이건 전적으로 팟캐스트 문제다. 개졸잼이라서 그냥 오른쪽에 물만있으면 맞다고 생각해서 갔더니 난 구리시청쪽으로 가게된거다. 그것은 알기싫다 ㅗㅗ
하루에 두번 길을 잃었다. 이러기도 쉽지 않다. 그리고 쭉가다보니 왠지 내 왼쪽편에 차들이 다니더라. 자전거도로가 좀 좁아졌구나했는데 한시간정도 차만 다니는걸 보니 내가 세번째로 길을 잘못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멍청한 애들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 네이버 지도를 통해 자전거도로와 합쳐지는 구간을 찾아내서 다시 복귀했을때 이미 3번의 자전거도로탈주로 나는 예상거리보다 20키로는 더 간 상태였다.
7년만에 자전거를 타고 한시간만에 안장에 대한 개쌍욕을 한것치고 이렇게 오랫동안 자전거를 탈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었다. 오늘의 주행거리는 네이버의 단축된 거리로 73km(돌아간 길이 포함됐지만 돌아갈떄 단거리로 돌아간것이 아니라 실거리는 76km정도라고 생각된다. ) 무식하게 많이 왔다.
결국 양평에 도착해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근데 정작 게스트하우스에 가는 오르막길이 오늘 하루 중에 제일 힘들었던건 함정.
샤워 후 게스트하우스 아주머니가 해준 밥을 먹고, 빨래하고 널어놓은 뒤 바로 잠들었다. 꿀같은 잠은 아니었지만 언제 잠들었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7월 16일도 달려야 한다. 오늘은 얼마나 갈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오늘의 주행거리 75km~76km 획득한 것 - 엉덩이 통증과 새로운 멍청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