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오유과거]산문-지!루!해!
게시물ID : readers_48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쀼잉뽀잉
추천 : 1
조회수 : 20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12/02 13:05:30

눈을 맞으며 그녀가 서 있었다. 페이지의 마지막 문장 아래에 써진 숫자를 보고, 소설을 반 쯤 읽었다는 걸 알았다. 이 뒤부터는 굳이 읽지 않아도 추측이 가능하다. 분명 여자가 서 있는 모습에 남자주인공이 우산을 씌워 줄 것이고, 둘의 사랑은 싹 틀 것이다. 그러다 여자가 병에 걸리거나 다치겠지. 그렇다고 해도 분명 이야기는 행복하게 끝 날 것이다. 멍청한 스미스. 이딴 소설을 나에게 추천해 주다니. 스미스는 분명 나를 생각해서 이 책을 가져다 줬을 것이다. 감정이 메마른 나에게 빗줄기가 되길 원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추측이 가능한, 10대 여자애들이나 좋아할만한 글을 권해 주는 건 오히려 나를 도발하는 것과도 같다. 책 커버를 살펴봤다. 휘날리는 눈 발 속에서 손을 꼭 잡고 있는 남자와 여자. 오, 이런 정말로 멍청한 책이로군. 표지만으로 내용을 짐작할 수 있잖아. 작가의 이름이 깔끔한 글씨체로 제목 밑에 박혀 있었다. ‘눈이 녹다. -자넷 밸런타인’ 이름마저도 싸구려 소설의 여주인공 같았다. 책을 쓰레기통으로 던지고 다른 사람들이 권해준 책을 집어 들었다. 정말로 지루하기 짝이 없는 책들이다.

 변호사가 돼서 좋은 점 중 하나가, 재판에서 승소를 했을 때 의뢰인들로부터 보상이 꽤나 괜찮게 들어온다는 것이다. 다른 동료들을 보면 시계나, 가방, 두꺼운 수표 뭉치 같은 것들이 감사의 표시로 들어오는데, 어째서인지 나에게만은 항상 책들이 감사의 표시로 수십 권이나 전해졌다. 슬프게도 책들의 종류는 전부 다 가관이다. 내가 좋아하는 범죄 심리학, 살인의 재해석, 범죄의 미학 과 같은 책들은 한 권도 없고, 하나같이 제목부터가 한심한 사랑의 법칙, 사람의 감정이란 무엇인가, 너를 사랑해 와 같은 이상한 책들이 주를 이뤘다. –종종 감정이 없는 사람, 울지 마 너도 할 수 있어. 와 같이 기분 나쁜 책들도 전해졌다.―일단 읽을 것이 많다는 건 좋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 동료들처럼 실용적인 것을 받고 싶은 마음은 사실이었다. 뭐 굳이 예를 들자면 몽블랑 만년필같이 소소한 것 말이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이런 나의 마음을 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런 일들을 예기 해 주자 친구인 스미스는 박장대소를 했고, 같이 술을 마신 뒤 집에서 얼큰하게 뻗어 있을 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아까는 웃어서 미안했어. 생각해 보면 너에게는 엄청 심각한 문제였을 텐데 말이야. 우선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을 전할게. 이건 내가 대학교를 다닐 때부터 생각했던 거야. 넌 감정이 없는 것 같아. 솔직히 네 앞에서 농담 식으로 말하긴 했지만 진심이었어. 아마 의뢰인들이 너에게 책을 감사의 표시로 전해 주는 이유도 네가 감정을 가지길 바라서였을 지도 몰라. 의뢰인들은 너의 모습을 보고 분명 많이 놀랐을 거야. 원래 변호사라는 직업이 감정이 메마른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지만 너는 좀 무서울 정도거든. 여자라도 사겨봐 좋은 감정이 싹틀지도 몰라. 미안해 짐. 도움이 못돼서.」

내가 할 말은 3문장뿐이었다.

「응. 그래. 엿 먹어.」

그 문자를 뒤로, 스미스가 앞에서 말한 책을 건네줬다. 지금은 쓰레기통을 장식하고 있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의뢰인이 찾아왔다. 내가 관심 있는 쪽은 범죄, 살인과 같은 부류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 의뢰 되는 사건들은 사소한 축에 속했다. 오늘 날 찾아 온 의뢰인도 별반 다를 게 없는 사람이었다. 다만 의뢰인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자넷 밸런타인’ 눈에 익은 이름인지라 한참을 들여다봤다. 하지만 머릿속은 안개가 낀 것처럼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신문에서 스쳐지나가며 읽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넘겼다. 의뢰인은 글을 쓰거나 번역 쪽에 종사하는 사람이었는데, 출판사 사장이 4개월이나 돈을 주질 않아서 꽤나 곤란해 하고 있었다. 애당초 출판업계는 수입이 불안정 한 편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수익을 바라는 건 어렵다. 아마 상대편에서도 이런 말을 언급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승소를 할 확률은 낮은 편이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들어 온 의뢰였기 때문에 일단은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넷이 찾아왔었다. 보통 같으면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아무래도 이상한 물건들이 많으니까.― 카페 같은 곳에서 이야기를 하지만,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하길 원하는 불쾌한 의뢰인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그렇게 지루하고 진부한 이야기를 나누 던 중, 자넷이 문득 질문을 했다.

“제가 작가라는 걸 알고 계신가요?”

“네. 서류 작성 과정에서 잘 봤습니다.”

“제 책은요?”

“어떤 책을 썼는지 잘 몰라요.”

“‘눈이 녹다.’요. 이름은 들어 봤을 텐데….”

드디어 자넷 밸런타인이 누군지 알아냈다. 이상한 삼류 소설을 썼던 작가. 아마 내가 쓰레기통으로 던진 책은 그대로 쓰레기통에 누워있을 것이다. 그것도 의뢰인 바로 뒤에 말이다.

“아……. 그런가요? 읽어 본 적이 없어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읽어 보도록 하죠.”

“거짓말 하지 마세요. 쓰레기통에 꽂혀 있는 걸 봤거든요. 프레드릭씨는 책을 쓰레기통에 꽂아 두는 걸 좋아하시나 보네요.”

내가 입을 벌린 체 눈만 껌뻑거리자 자넷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사실 프레드릭씨의 소문은 이곳저곳에서 자자해요. 감정도 없고, 사람을 싫어하는 무례한 변호사. 사실 그 이야기를 듣고 당신을 찾아왔어요. 그런데 이정도 라니! 당신은 참 신기한 사람이에요. 당신이 제 책을 쓰레기통으로 던진 건 엄청나게 무례한 일이라는 걸 알죠?”

“……죄송하게 됐습니다.”

“무례한지 알고 계신다면 나중에 커피라도 사주 세요. 그럼 용서해 줄지도 모르죠.”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문을 닫고 그녀가 나갔다. 정말로 짜증나는 군. 이건 분명 스미스의 음모 일 것이다. 전부터 이상한 이야기를 해댔으니까. 지금 나간 나의 의뢰인이 무슨 생각으로 나한테 찾아 왔는지 전혀 조금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에게 피해를 입었던 의뢰인들–나에게 심한 욕을 먹었다던가, 총을 맞을 뻔 했다던가– 이 날 엿 먹이려고 보낸 사람일지도 모른다. 아마 내가 했던 짓을 일일이 읊는 다면 돈이 꽤나 짭짤할 테니까. 조만간 이 사건을 정리해야 되겠다. 귀찮은 삼류소설 작가가 나를 건든 다면 꽤나 재미있겠지만 –아마 내 말로 그녀의 표정을 일그러트릴 수 있을 테니까. –내가 힘들어 지는 일은 손대고 싶지 않았다. 정말이지 지루하고 짜증나는 일상이다.

 

----

급 마무리..ㅠ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