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53199
[인터뷰] 850여 가지 전통주 복원한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 필자가 읽은 허영만 화백의 첫 작품은 <식객>이었다. 그 다섯 번째 단행본의 부제는 '술의 나라'다. '술의 나라'는 다음과 같은 머리말로 시작한다.
조선시대에는 집집마다 고유의 술이 있었다. 발효음식에 뛰어난 솜씨를 자랑하는 한민족이다 보니 술 빚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터다. 누룩과 곡류 그리고 좋은 물로 빚은 술이니 그 맛은 가히 천하명주! 집집마다 독특한 맛을 자랑하는 가양주가 있었고 그 종류도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는 명주를 집집마다 빚었던 술의 나라였던 셈이다. 모든 집이 '천하명주'를 빚던 나라. 하지만 '였던 셈이다'로 끝을 맺는 문장은 이미 오래된 먼 과거를 자랑스러워하며 아쉬워하는 듯하다.
서울 지하철 3호선 녹번역 1번 출구를 통해 나오면 그곳에 한국전통주연구소가 있다. 이 연구소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전통주 제조법의 기록과 양조법 연구, 가양주 및 전통주에 대한 교육을 한다. 연구소를 이끄는 박록담 소장은 1986년부터 전통주와 가양주 조사와 복원에 힘써온 장인이다. '전통주교실'을 개설해 전통주의 대중화에도 힘쓰고 있다. 술을 빚고 연구하지만 정작 그는 술에 약하다고 말한다.
지난 28일 한국전통주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난 박록담 소장은 회색 누비한복을 입고 머리를 묶은 모습이었다. 푸를이끼낄 록, 못 담. 본명은 박덕훈이지만 "창작생활을 하는데 부모님들이 반대하셔서 필명을 쓰게 됐다"고 한다. 그는 일부 개인생활을 제외하고 모든 사회생활에 박록담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과거 기자 생활을 하고 문인 활동을 하던 그가 어떻게 전통주에 온 힘을 쏟게 됐을까.
"29년 전 기자생활 당시 유명 재벌을 인터뷰하면서 식사를 하게 됐는데, 그분이 차려준 식사가 유기농 식단이었죠. 근데 거칠어서 잘 안 넘어가더라고요. '요즘은 다 미식(부드러운 음식)을 먹는데 왜 저 사람은 이렇게 조식(거친 음식)을 먹을까' 생각했죠. 그리고 '앞으로 건강식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겠구나. 그럼 좋은 먹거리가 무엇이 있을까' 찾아보게 됐어요. 당시에도 전통음식에 대한 전문가는 상당히 많았는데 전문가가 없는 분야가 있었어요. 그게 술이었어요. 술을 배우기 위해 술을 찾아다녔죠. 그 전에는 아버지께 양주를 선물해드리면 좋아하셨는데, 술을 찾아다니면서 아버지께 시골에서 담근 술을 갖다드리니 '마시고 난 뒤에도 몸이 개운하고 옛날 생각도 나서 좋다'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아무 때나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직접 빚어드리면 현장에 가는 시간과 교통비를 아껴서 더 경제적이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경제적·정신적으로 압박... 하루에 몇 번씩 그만두고 싶었다" 술을 소비하는 우리 국민들의 태도에 대해서 그는 거침없이 '하류'라 표현했다. 박 소장은 그 이유로 "우리 술, 자기가 마시는 술에 대해서 모른다는 점"과 "맹목적으로 양주를 선호한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본래 전통주를 복원하고 연구하는 일과 이러한 성과를 글로 알리는 일을 해왔다. 그러나 박 소장은 "글만으로는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10년 전만 해도 전통주에 대한 교육기관은 그 수가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연구소에서 교육받은 제자들이 같은 맥락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정식 교육기관만 13곳. 덕분에 "80명 정도 되던 수강생은 요즘은 50명도 잘 안 된다"고 하면서도 그는 한국 전통주 교육의 대중화 과정이라는 생각에 동의했다.
"우리 술에 대한 불신, 부정적인 경험 등이 외국 술을 선호하게 된 배경이라고 봐요. 그게 교육을 시작한 계기였어요. 직접 술을 빚어보고 체험하게 되면 느끼는 것이 달라지죠. 여기 출신 제자들이 강의를 하고 있는데, 불모지에서 이만한 꽃을 피운 것만 해도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봐야겠죠. (교육받는 사람들) 연령층이 좀 낮아졌어요. 과거에는 평균 50대들이 노후 여가생활, 취미생활로 했다면, 요즘은 40대 중반으로 낮아졌어요. 스펙 쌓기를 위해 오거나 건강한 먹거리, 제대로 된 술을 마시기 위해 오죠. 음주문화라는 것은 교육과 정보에 비례한다고 봐요. 그동안 우리가 우리 술에 대해서 몰랐다는 게 그런 의미예요." 그가 생각하는 '좋은 술'이란 무엇일까? "(마신 뒤) 기분이 좋아야 하고 몸도 피곤해지지 않는" 술이라고 한다.
"좋은 술은 후유증이 없어야 해요. 원료처리나 술을 빚고 익히는 기간 등이 서양이나 우리나 거의 다를 바가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술을 빨리 빨리 만들어왔다는 단점이 있어요. 원료 처리도 제대로 안 하고 값싼 재료로 빚고, 그런 폐단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조금씩 의식하기 시작했죠. 점점 더 좋은 술을 맛볼 수 있을 거예요. 술을 마시는 이들도 좋은 술을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른다면 우리 술의 세계화도 진일보 할 것이라 봅니다." 작은 병 수백 개가 연구소 진열장에 올라가 있다. 하나같이 고무줄로 입구가 막혀 있고, 다채로운 빛을 띠고 있다. 이름도 다 달랐다. 모두 박 소장이 복원해낸 전통주 표본들이다. 박 소장은 전통주의 복원을 통해 전통주의 가능성을 봤다고 한다.
"복원 전에는 그저 우리 것이니 좋다는 생각으로 배웠는데, 사라진 술을 복원하고 보니까 이 정도면 일본의 사케를 넘어서 서양의 와인하고도 경쟁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특히 향이 좋단 말이죠. 세계 어떤 술하고도 경쟁할 수 있겠다, 가능성이 있다고 본 거죠. 우리 술의 향을 살리는 방법을 복원해 교육을 통해 알리고 세계에서도 당당히 경쟁해보자, 그게 교육을 시작하게 된 계기예요." 쉽지 않은 길이었다. 전통주 연구나 복원 중 흥미로운 일화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단호히 '없었다'고 답했다. 그가 처음 전통주에 대한 책을 내면서 133가지 술을 배우고 복원하고 기술을 찾기까지 사용한 쌀이 약 75톤이라고 한다. 지금은 그가 술 빚기에 쓴 쌀이 얼마일지 가늠이 가질 않았다.
"기적 같은 일이나 재밌는 일을 일화라 하는 건데, (전통주 연구하는 일은) 고생만 하고 경제적인 압박만 가해지는 것이죠.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결국 혼자 자비를 들여서 해내야 하니까.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쪼들리고 압박받고 스트레스가 쌓이고, 하루에도 몇 번씩 그만두고 싶었죠. 일화가 있을 턱이 없죠." "막걸리 대중화되면 될수록 사케가 덕 본다" 본래 막걸리와 같은 탁주는 서민들의 술이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주류시장은 막걸리보다 소주의 소비량이 월등히 앞서고 있다. 박 소장은 "정부가 전통주에 대한 지원을 하고 관심을 갖고 정책을 펴니까 소주 회사들이 위기를 느꼈다"고 말한다.
"정부가 민속주 정책 전통주 육성법 만들고 전통주 살리려고 하는 움직임을 보이니까 수입 원료로 싸게 소주를 만들던 공장들은 위기를 느낄 거 아니에요? 그게 소주의 알코올 도수가 16.9%까지 내려온 배경이에요. 저도주가 술 시장을 점령한 거죠. 사람들이 저도주를 선호하니까. 근데 알코올 도수가 내려간다고 소주 값이 내려가진 않았잖아요. 공장에서 생산하는 희석식 소주는 전통주가 아니에요. 안동소주나 문배주 같은 것들이 전통주고요. 증류주에는 화학적인 첨가물이 안 들어가지만 희석식 소주에는 식품첨가물이 많이 들어가요. 그래서 건강에 더 안 좋다는 거고요. 거기 아스파탐(식품 감미료의 일종)이 들어가느냐 마느냐 논쟁이 있기도 했죠." 이명박 정부 시절 농림수산식품부는 '막걸리의 세계화'를 들고 나서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2009년 10월 15일 청와대로 주한외교단을 초청해 다과회를 열어 막걸리 칵테일 등 한식을 홍보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때 "내가 완전히 막걸리 국제홍보팀장이 됐다"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한식 세계화와 더불어 막걸리 세계화 또한 힘을 잃었다. 2009년 당시 박 소장은 "(지금 상태로) 막걸리가 대중화되면 될수록 사케가 덕을 본다"고 말했다.
"사케와 막걸리를 만드는 방식이 거의 같아요. 막걸리를 마시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사케를 찾게 된 거죠. 막걸리는 한두 종류밖에 없어요. 첨가물만 더 들어갈 뿐이지 기본적인 방법이 바뀐 게 아니에요. 지금 일본식으로 만든 막걸리가 주류예요. 전통방식으로 만든 막걸리도 지원해서 두 가지 방식이 경쟁을 하면 서로 발전할 것이란 말이죠. 그런데 지금 막걸리는 획일적이라 입맛이 고급스러워진 소비자들이 막걸리와 비슷한 사케로 넘어간다는 말이죠. 그리고 13%의 국내 막걸리 소비인구를 기반으로 어떻게 해외시장을 개척할 수 있냐는 거죠. 내수에서 지지기반이 없는데 수출이 막히면 어떻게 되냐고요. 내수시장 확보하는 길이 우리 술을 개발하는 건데, 그렇게 안 했잖아요." 박 소장은 우리 전통주가 다양성과 차별성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다양한 가격대와 종류의 막걸리, 더 나아가 전통주를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차별성이란 무엇인가? 그는 "세계 모든 나라의 술은 역사성, 전통성, 고유성을 갖고 있다"며 "주식으로 술을 빚는다는 점"이 한국 전통주의 차별성이라고 말한다.
"맥주의 경우 보리는 주식이 아니잖아요. 와인의 포도도 그렇고. 선인장 열매로 만드는 데킬라, 수수로 만드는 러시아의 보드카, 다 부식으로 술을 만들잖아요. 그런데 우리만 주식으로 술을 만든다는 점이 우리 전통주의 차별성이란 거죠. 중국과 일본도 쌀을 주식으로 삼아왔어요. 그런데 중국은 수수와 옥수수로 술을 빚죠. 일본은 쌀, 보리, 조, 기장, 수수 다 먹지만 멥쌀로만 술을 빚는다는 말이죠. 그런데 멥쌀이 언제부터 주식이었냐면 근래라는 거죠. 한국에서 쌀이 갖는 '주식'의 의미랑은 다르죠. 한국 전통주는 주식으로 쓰이는 쌀을 비롯해 많은 곡식으로 다양하게 술을 빚어 왔어요. 이 점이야말로 차별성이죠." '외모는 거울로 보고 마음은 술로 본다'는 말이 있다. 본디 '속마음은 술자리에서 드러난다'는 말이지만 그를 보고 다른 의미가 떠올랐다. 우리가 평소에 마시던 술이 그렇게 쓴 이유도, 장인들이 빚어낸 술맛이 좋은 이유도 모두 이 문장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술에서는 좋은 향이 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