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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혐한류의 기원!!
게시물ID : sisa_3700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거참..
추천 : 3
조회수 : 54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3/10 01:41:09


출처 개소문 닷컴 - 문제아.

원출처 불명




대만 반한감정의 원인이 단교라고?

아직도 대만의 반한감정의 원인을 우리 자신에게서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1992년 한중수교를 위한 대만과의 단교가 그 원인이라는 것이지요.


과연 그럴까요?


아닙니다. 대만인이 그토록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일본은 우리보다 무려 20년 전인 1972년에 일찌감치 단교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대만의 반한 행각은 이미 1992년 이전부터 현저했습니다. 1988. 11. 5.자 동아일보 기사를 볼까요?


1988년 서울 올림픽 때에 대만 방송들은 난지도와 재개발구역, 뒷골목 등을 집중적으로 촬영하며 이런 쓰레기 같은 못사는 나라에서 무슨 올림픽이냐고 비아냥거렸습니다. 기본적으로 자기보다 못사는 한국이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점에 대한 질투심이 반한감정의 시초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교 과정에 대해서는 제가 정확한 이해가 없으니 한 네티즌이 올려놓으신 글을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제가 일일이 사실 확인을 하진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한국은 당시 수교협상 중인 중국에 온갖 핑계를 대며 대만 대사관의 철수를 늦춰주어 외교관의 편의를 최대한 반영해주었고 귀국 비행기편도 별도로 마련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대만 대사관 주재원들은 계속 버티며 대사관에서 나가지를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몇가지의 보복조치도 대만측에서 일방적으로 발표합니다. 자동차쿼터 수입 중단, 과일수입 중단, 대만내 개발계획에 한국 참여 중단 등. 한국은 결국 2달 동안 대사관을 비울 것을 수차례 요구했고, 대만 대사관 주재원들이 버티자 10월에 외교부에서 철거조치 단행을 통보합니다.

 

이때 떼로 몰려온 대만 언론 등이 대사관에서 쫓겨나는 자국 외교관의 눈물, 대만기 하강식 등을 선정적으로 앞다퉈 대만에 송출합니다. 특히 대만 언론들은 한국이 단교 직전 수교 지속을 대가로 한국산 자동차 5만대를 강매했다는 등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한국을 맹비난하였습니다. 프랑스가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사관에서 대만 외교부 직원들을 공권력까지 동원하여 철수시키고, 일본에서는 철수 시한을 달랑 1주일 주고 그 후에는 물과 전기까지 끊은 것에 비하면 지극히 공손했던 한국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모든 것을 한국의 단교에 뒤집어 씌우는 대만인들의 얕은 변명으로는 도저히 합리적인 설명이 안되는 것입니다. 이제 그 진정한 원인을 다음 순서대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 맹목적인 친일주의

- 중화주의와 패배의식의 결합

- 한풍공작(韓風工作): 정치적인 악용


1. 맹목적인 친일주의


대만은 우리보다 오랜 기간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이할 정도로 극단적인 친일 성향을 보이는 나라입니다. 대만에서 설문조사를 하면 예외 없이 한국이 가장 싫어하는 국가로, 일본이 가장 좋아하는 국가로 나옵니다. 일본어를 공부하는 사람의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 또한 대만입니다. 일본 또한 대만인들의 친일에 대하여 대대적으로 방송을 하며 "일본과 대만은 일심동체"라며 좋아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여 2006. 2. 4. 아소 다로 일본 외무장관은 "대만의 높은 교육수준은 일본의 식민통치 덕분"이라는 망언을 했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에 즉각적으로 강력 비판하였습니다. 정작 당사자인 대만은? 뤼칭룽 대만 외교부 보도관(대변인)은 2006. 2. 5. "일제 식민통치 기간 중에 대만이 근대화된 것은 사실", "일본 외무장관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라고 답했으며, 황쯔팡 외교부장(장관급)은 2006. 2. 6. "이 문제로 일본과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다"라고 답해서 중국 외교부를 머쓱하게 만들었습니다. 아울러 대만 텔레비전인 TVBS도 "(아소 다로가) 반중국, 친대만의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며 아소 다로를 두둔했습니다. (오마이뉴스 2006. 2. 7.자 기사: 클릭)


이러한 대만의 엽기적인 친일 행각은 마침내 2007. 6. 7. 리덩훼이(李登輝) 전 대만 총통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정점을 찍게 됩니다. 세계 역사상 식민지에서 벗어난 독립국의 지도자가 (비록 임기 종료 후라 하더라도) 침략자의 묘소에 참배를 하는 것은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일 것입니다. (동일자 경향신문 기사: 클릭)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위해 문으로 들어서는 리덩훼이


이러한 극단적인 친일주의의 원인은 무엇일가요? 기본적으로 범죄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사랑에 빠지게 되는 스톡홀름 신드롬에 준하는 사회병리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나, 좀더 분석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이하는 오마이뉴스 2006. 2. 7.자 기사를 편집, 인용: 클릭)


(1) 일본은 대만을 할양받은 1895년 이후 대만 저항세력을 철저히 '분쇄'했습니다. 청일전쟁 후 시모노세키조약으로 대만을 침탈한 일본은 대만이번(臺灣理蕃, 1896~1915년)이라는 '토벌'작전을 통해 저항세력을 철저히 '분쇄'했습니다. 이처럼, 저항세력이 식민통치 초기에 사실상 완전 '분쇄'되었다는 점이 대만인들의 대일 비판정신을 약화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2) 장제스 국민당정권이 대만 국민들의 친일 성향에 한몫을 하였습니다. 1949년 공산당 군대에 패해 대만으로 도피한 장제스 국민당 정권이 친일 노선을 지향함에 따라, 일제 패망 이후 대만인들은 친일을 제대로 청산할 기회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국민당의 부패와 독재, 무자비한 원주민 학살(2·28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은 대만인들로 하여금 일본 식민지배에 대한 근거 없는 향수를 가지게 하는 계가가 되었습니다.


(3) 중국 본토에 대한 반발심리가 대만인들의 친일 성향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특히 '탈중국화' 노선을 걷고 있는 민진당은 중국과의 대결구도를 위해 의식적으로 친일 노선을 걸었습니다.


(4) 아직까지도 대만 고유의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았습니다. 대만인들은 스페인·네덜란드·중국·일본 등 외부의 침략을 받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맹목적인 친일주의를 가진 대만인들이 능숙한 일본어를 통해 일본 인터넷의 혐한들이 생산해 낸 각종 날조 자료들을 대만 인터넷에 유입하고 이를 공유함으로써 대만의 반한감정이 확산된 측면이 큽니다. 또한 대만인들은 한국의 반일주의에 대해 깊은 반감을 가지고 있고 한일간의 민감한 쟁점에 대해 일본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으며 이것이 반한감정의 또다른 원인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 여러분이 위에서 설명드린 바를 여실히 실감하실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일본 혐한의 본거지인 2ch에서는 이번 태권도 사태를 보면서 대만을 지지하며 환호를 했는데, 한 대만인이 능숙한 일본어로 2ch에 올려놓은 글이 있습니다.


2. 중화주의와 패배의식의 결합


대만의 중화주의는 놀라울 정도입니다. 대륙의 중화주의는 소수민족의 동화를 위한 중화민족이라는 임시방편적 개념 위에 쌓아올린 변형 민족주의로 그 개념상의 모순으로 인한 한계가 있지만 대만의 중화주의는 섬의 지배자로서의 한족을 정점으로 한 순혈민족주의의 양상을 띄기 때문에 대륙 이상으로 강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 시간에는 한국이나 베트남을 중화의 속국으로 가르치고 있으며 자신들이 중화의 적통이라 자부하기에 한국인에 대해서는 묘한 역사적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전쟁의 상처에 허덕이며 뒤떨어져 있었던 시절, 대만은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호황을 달리던 일본 기업의 부품 하청기지 역할을 하며 아시아에서는 우리가 일본 다음이라는 강한 자부심을 가지게 됩니다. 자신들이 돋보이기 위한 비교 상대로 늘 한국이 거론되었습니다. TV프로그램에서는 한국에 가서 대만인이라고 하면 대접받는다, 한국 여자들은 대만 남자라고 하면 까무러친다, 이런 유치한 이야기들을 방영하며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발전이 진행되고, 마침내 서울이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자 대만인들은 낙후된 한국이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대응하게 됩니다. 위 동아일보 신문기사가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대만 아나운서는 개막식 중계방송에서 "아 대만보다 국민소득도 떨어지는 한국에서 올림픽이 웬 말이냐"라고 발언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대만의 한국 흠집내기가 시작된 것도 그 즈음입니다. 올림픽 후에 한국의 위상이 조금씩 높아지면서 미인대회에서도 많이 입상하고 그랬는데, 그 때부터 대만 언론에서 한국의 미인은 전부 성형미인이라는 기사를 뿌려대기 시작합니다. 현재 한국이 성형대국이라고 불리게 된 장본인이 바로 대만 언론인데 이 점에 대해서는 별도 페이지에서 상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아울러 1992년 단교를 하게 되고, 이어 한국이 대기업과 중공업을 기반으로 일본 하청 의존적인 대만 경제를 앞지르기 시작하자 아직은 대만이 위라는 식으로 자위하는 기사를 냅니다. 그리고 1998년 금융위기가 터지자 엄청나게 한국을 비웃습니다.


그 이후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입니다. 인터넷에 이와 관련된 분석이 아주 많으므로 참고해 보시면 좋을 것입니다. 한국은 금융위기를 딛고 경제력, 군사력, 외교력,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등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분야에 있어 모두 대만을 앞지르게 되고 이를 인정할 수 없었던 대만은 한국이 대만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온 것은 모두 파렴치한 부정행위와 반칙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며 현실을 부정하려 합니다.

 

한류 문화는 성형이라는 반칙, 2002년 월드컵 4강은 심판 매수, 경제성장 또한 더러운 행위에 의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자기 나라 내에서만 소비하지 않고 중국 인터넷에 끊임없이 유포하며 반한감정을 부채질하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는 다른 페이지에서 보다 상세히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3. 한풍공작(韓風工作) - 정치적인 악용


선거철마다 우리에게 북풍이 있다면 대만에는 늘 한풍이 있습니다. 적대국인 중국을 이용하지 않고 한국을 이용하는 이유는 중국은 두렵지만 한국은 만만하기 때문입니다. 경제력, 외교력, 국방력, 인지도 등에서 비교할 수 없는 국력을 가진 한국을 만만하게 보는 이유는 우리가 늘 아무 대응도 않고 가만히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태권도 사건만큼이나 대만 정치권의 수준과 반한정서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사건도 없습니다. 반한감정에 불을 지른 자들은 모두 11. 27.자 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정치인들이었습니다. 예컨대 반한감정 폭발의 도화선이 된 태극기 화형식 영상을 살펴보면


오른쪽 위에 보이시죠? "기호 8번 영원히 황씨린과 함께". 자막에 써있듯이 이 자는 신민당 시의원 후보자입니다. 군소정당 후보의 얄팍한 선거 유세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집권 국민당은 좀 나을까요? 마잉주 총통부터 주최측에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방방떴고 차관급인 체육위원회 천셴쭝 부주임위원은 실격패 사건 당일 "참아야 한다"고 말했다가 19일 밤 사임해야 했습니다. 해프닝은 계속 이어져 11. 21.에는 집권 국민당 소속 타이베이 시의원들이 태권도복 차림으로 대중유세에 나서고


주요 일간지에는 11. 22. "민진당 후보들은 2005~2006년여당 시절 행정원을 이끌면서 단 한번도 대만 선수들이 수난을 당할 때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는 정치광고를 냈습니다(중앙일보 기사).


조폭의 장례식에 정관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할 정도로 낙후된 대만 정치, 이런 사례는 너무 많으니 이 정도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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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인들도 실은 단교가 반한감정의 원인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그렇다고 본인 스스로가 우리는 어버이 국가인 일본에 도전하는 너희에게 열등감을 느끼며 너희가 싫은 것이다, 이렇게 본심을 드러내기도 어려운 법, 결국 대만인들은 한국을 욕하고 싫어하기 위한 이유를 억지로 만들어 내게 됩니다. 이 블로그 중 "공자는 한국인이다? - 대만의 한국기원론 공정", "한류 축출을 위한 대만의 성형공정", "스포츠 중상모략의 고단한 역사"는 바로 이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공자는 한국인이다? 대만의 한국기원론 공정

대만인들도 자기들이 한국을 미워하는 이유가 (특히 한국보다 20년 전에 매정하게 단교한 일본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애정과 비교할 때) 마땅치 않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 이유와 구실을 억지로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한때 단교 과정에 대하여 사실 왜곡을 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한국이 중국 역사와 문화를 훔친다는 "모함"을 통하여 억지로 한국을 미워하는 이유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러한 유치한 행동은 그냥 무시해 버리자고 생각하실지 모르나, 심각한 문제는 대만인들은 이러한 날조를 자기들끼리 즐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중국 대륙의 인터넷에 무차별 확산시키며 반한감정 여론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만인들이 이러한 황당한 행각을 벌이게 된 계기는 한국의 강릉단오제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신청이었습니다. 우리 단오절은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며 농악, 씨름, 산신제사 등을 하는 명절로서 초나라 충신 굴원에게 제사지내며 쫑쯔 과자를 먹고 용선도강(용 모양의 보트 놀이)을 하는 중국 단오절과는 음력 5월 5일에 이뤄진다는 공통점만 있을 뿐 모든 면에서 다릅니다. 미국이 뉴욕 크리스마스 축제를 한다고 해서 로마 유래의 명절인 크리스마스를 훔쳤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은 "단오"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중국의 단오를 훔친다고 격렬한 반응을 보였고 인터넷에서는 한국이 "용선도강(Dragon Boat Festival)"을 훔친다고 와전되어 반한감정이 들끓었습니다.

 

다만 중국은 이 일을 계기로 문화대혁명시 모든 전통문화를 말살하고 명절도 없앤 것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고 , 2008년 단오절을 청명절, 중추절과 함께 전통 절기 중 최초로 법정공휴일로 지정했고, 중국의 단오 풍속(용선도강 등)에 대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록을 마쳤으며, 나아가 보복조치로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의 농무(Farmers' dance of China's Korean ethnic group)'를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하는 한편,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용선도강을 정식종목으로 채택했습니다.


이에 대해 할 말은 참 많지만 논점을 벗어나니 생략하고, 어쨌든 대만인들은 이 유네스코 신청 관련 해프닝을 기화로 한자, 공자, 만리장성, 석가모니 등 중국 문화의 모든 것을 한국인이 훔치려 한다는 유언비어를 대대적으로 만들어 유포하기 시작했고, 이는 중화민족주의의 열망에 들끓고 있던 대륙 네티즌 전체를 손쉽게 선동하였습니다.


그 구체적인 경과에 대하여 2008. 8. 7.자 다음 조선일보 기사(클릭)에 매우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동 기사는 주한대만대표부의 대응조치(클릭)를 이끌어낸 매우 의미있고 훌륭한 기사였습니다). 이하에서는 (1) 이 기사 내용(이하에서 링크가 첨부되지 않은 부분은 주로 위 기사 인용 부분입니다)에 (2) 제가 중국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며 수집한 내용 및 (3) 게시판 사이트/유튜브 등에서 활발한 민간외교 활동을 벌이고 있는 스타이너(styner)라는 아이디를 사용하시는 분이 수집한 내용(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을 취합하여 대만인들의 대한민국에 대한 수년간의 파렴치하고 조직적인 범죄행각을 담담히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1. 만리장성

- 대만매체 연합보(聯合報)는 2007. 10.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교수 오가능(吳可能)이 서울의 최대 학술지 ‘추리(追理)’에 기고하여 만리장성의 대부분을 한국인이 축조했으며 중국 영토의 80%를 한국인이 점령했다"라고 주장했다고 보도했습니다.

- 한국외대에는 오가능 교수가 없고, 추리라는 학술지도 없습니다.


2. 한자

- 대만매체 연합보가 역시 위 2007. 10. 기사에서 오가능 교수가 2007. 7. 5. 서울의 최대 학술지 ‘추리(追理)’에 기고하여 한국인이 한자를 발명했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습니다.

- 한국외대에는 오가능 교수가 없고, 추리라는 학술지도 없습니다.

- 심지어 대만 총통 마잉주(馬英九)는 2009. 6. 30. 한자 정자체인 번체자(繁體字)에 대한 지지를 강조하면서 "한국에 번체자의 세계문화유산등재 신청을 뺏길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합니다(클릭). 이는 동일자 연합보에 그대로 보도되고, 익일자 대륙 환구시보에 인용됩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삼류 언론의 허위 보도를 그대로 믿고 대한민국에 씻을 수 없는 실례를 한 것입니다.


⇒ 대륙에의 확산

- 위 연합보 보도 이후 대만인들이 중국 인터넷에 파렴치한 한국인들이 한자를 훔친다는 글을 집중적으로 올리게 되고, 마침내 2007. 12. 대륙의 금양망(金羊网)이 서울대학교 박정수(朴正秀) 교수가 한국인의 한자발명설을 주장했다고 보도했습니다(클릭). 물론 서울대학교에는 박정수 교수가 없습니다.

- 중국 공산당 기관지 환구시보(인민일보 자매지)가 위 기사를 그대로 전재하여 중국인 전체가 한국인 한자 발명설을 사실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환구시보가 정정기사(클릭)를 내었으나 이는 많은 사람들이 읽지 못했으며 이후 유언비어가 확대재생산되었습니다.


3. 풍수

- 대만 유선TV사 TVBS는 2007. 12. 18. ‘풍수(風水)문화를 한국이 세계유산으로 신청할 것이며, 중국은 불만’ 제하의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최근 한국이 계속해서 콩국도 한국 것, 중의(中醫)도 한국 것, 한자도 한국이 발명한 것이라고 한데 대해 중국인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한국이 또 유네스코에 풍수(風水)를 한국의 비물질자산이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것이라 한다. 그리고 유네스코에서 이를 통과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베이징 풍수사(師)들이 경악하고 있으며, 이를 강도행위라고 비난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4. 석가모니

- 2008. 6. 1. 대만 최대 인터넷 신문인 중국시보(차이나타임즈)는 조선일보 보도를 인용하면서, “한국의 문화확장 활동이 또다시 거세지고 있다. 노자·공자를 한국인이라 하더니, 이제는 석가모니조차 한국인이라 말하고 있다”라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물론 조선일보에 그런 보도가 있었을 리 없지요.


5. 두장 (콩국)

- 두장(豆浆; 또우쟝)은 중국인들이 아침식사 대용으로 가장 선호하는 건강 음료입니다. 우리 두유와 비슷한 점도 있지만 맛이나 제조과정에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 대만 최대 인터넷 신문인 중국시보가 2008. 6. 9. 한국인이 두장이 한국에서 발명되어 중국에 넘어갔다고 주장한다는 기사를 실으면서, "이러다간 중국인들이 모두 한국인들의 후예가 되는 것은 아닐 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자극적인 논평을 냈습니다.

- 대만 유선TV사 TVBS가 같은 날 “콩국을 중국인이 발명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인데 한국이 발명했다는 것은 일종의 (역사)좀도둑질 행위”라며 맹비난했습니다.


← 출처는 일본 혐한

- 위 기사는 "중국본토 네티즌들이 찾아냈다"라고 주장했으나, 역시 원흉은 대만이었습니다.

- 알고보니 일본 혐한이 수집한 삼육두유의 일본어 광고(클릭)를 일본어를 잘 하는 대만 네티즌이 인터넷에 퍼나른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 그런데 정작 삼육두유 광고의 내용을 보면 "두유의 본고장(豆乳の本場), 한국의 삼육두유"라고만 써있습니다. 두유가 두장과 동일한 것도 아니고, 한국 기원을 주장하는 내용도 아니므로 명백한 날조인 것입니다.


6. 쑨원 (손중산)

- 2008. 7. 28. 대륙의 천애사구(天涯社区; tianya) 국제관찰판(“国际观察”版)에 huhuhu8hu라는 네티즌이 조선일보 기사를 인용하면서 성균관대 역사학과 박분경(朴芬慶) 교수가 쑨원이 한국 혈통이라고 주장한다고 성토하기 시작했습니다.

- 물론 성대에 박분경 자체가 없고, 조선일보에 그런 기사가 없었습니다. 분경(芬慶)은 중국말로 우익 개티즌을 뜻하는 분청(憤青; 비꼴 때는 "똥청년"이라는 뜻의 粪青으로 표기합니다)과 발음이 같아(fenqing) 장난으로 이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 대만 매체들이 먼저 2008. 7. 31. 이를 일제히 사실인 양 보도하기 시작했고, 2008. 8. 1. 신콰이보(新快)를 기점으로 대륙에도 퍼지기 시작합니다. (관련 보도 클릭) 신콰이보는 이 일로 징계를 받았으나 아직도 중국에는 이 보도를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7. 공자와 공자제전

- 연합보는 2008. 8. 14. 한국이 2월경 관계자들을 타이베이현으로 평계천등절(平溪天燈節)행사를 참관했으며, 이를 자기나라 민속놀이화하여 유네스코에 등록하려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타이베이현 문화국 리빈(李斌)의 말을 인용, “한국 참관단이 타이베이시 공자제전(祭孔儀制) 행사를 시찰했다. 당시 시 정부는 성심성의를 다해 지원했다. 각종 의식·복장(服裝)자료까지 제공했다.

그런데 (이렇게 잘 대접했는데도) 한국이 유네스코에 공자제전(祭孔儀制)을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신청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한국인들은)심지어 공자가 한국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행히 중국공산당이 공자제례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 한국이 이를 훔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라고 주장하여, 한국을 남의 은혜도 모르는 좀도둑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이후에는 여러분이 아는 바대로 대륙 신문이 스스로 허위의 서시, 이시진, 활자인쇄술 등 4대발명, 병마용, 조조, 한한, 야오밍, 예수, 왕건민, 모택동, 팬더 시리즈를 터뜨리기 시작합니다. 비록 대만 언론의 선제적인 보도는 없었으나 이 시리즈 날조에 대만인들의 인터넷 활동이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로 인해 반한감정은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들끓고 마침내 반일감정을 능가하게 됩니다. 특히 때맞춰 난징대학살이 실은 일본군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조선인 출신 군인들이 저지른 것이라는 황당한 유언비어가 유포되는데 친일대만인들의 짓이라는 설도 있으나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어 대만은 좀 잠잠해 지나 싶더니 또 한건을 터뜨립니다. 대륙의 감숙일보가 2010. 5. 14. 이백(이태백) 한국인설을 최초로 제기했는데, 사실 이는 이름이 전혀 없는 삼류 인터넷 사이트였습니다. 그러나 2010. 5. 19. 대만 유선TV사 TVBS이 서울대 김병덕 교수 왈 이백이 한국인이었다고 주장했다는 취지의 방송을 내보내면서 사태가 확대되기 시작합니다. 이는 날조된 김연아 선수 성형설과 함께 방영되었습니다.

대만 ETTV도 "이태백이 어디 사람이냐. 하하하. 또 시작이네. 서울대학교 김병덕 교수가 논문에서 이태백이 한국사람이라고 말했다. 하하하"라며 조롱했습니다. 또다시 중국 대륙 전체가 분노의 도가니에 휩싸였는데, 주한대만대표부가 이에 대응하는 중국어 보도자료를 2010. 5. 19. 대만 언론에 배포하여 진정이 되었고 대륙의 감숙일보도 2010. 5. 21. 사죄문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는 우리 정부가 효과적으로 대응을 한 사실상 유일한 사례로 꼽을 수 있습니다.


8. 대만인들의 자료 보강 활동

그러나 차츰 중국인들도 이 모든 것이 자작극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수세에 몰리게 됩니다. 지식인들 또한 이 점을 비판하기 시작하는데(예컨대 유명 소설가 한한의 블로그 참조: 클릭), 대만인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자료 보강 활동에 들어갑니다. 사실 위 기사들은 웃음거리밖에 안되는 것들이지만, 우리도 우리 내부의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환단고기 등을 신봉하며 스스로를 재야사학자라고 칭하는 유사역사학자들(인터넷 속어로 통상 "환빠"라고 함)입니다. 이들이 중국 문화의 한국기원설이라든지 중국 역사 인물의 한국인설 등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 효용가치를 처음으로 인식한 것은 일본의 혐한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특히 일본문화의 한국기원론에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던 중, 특유의 "장인정신"으로 한국인들의 기원론 주장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한편 유튜브에 이를 비꼬는 수천개의 비디오를 만들어 올렸습니다. 특히 위키피디아를 클릭해 보시면 자료의 방대함과 정교함, 그리고 혐한들의 집념에 놀라게 됩니다(유튜브는 클릭을 할수록 쉽게 검색되는 시스템이므로 링크를 제공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우리 학자들이 일본 사무라이의 백제 싸울아비 기원설 등 황당한 주장을 남발하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보면 볼수록 왜의 고대문화의 근간은 가야, 백제에서 유래한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일본 혐한들은 이로 인한 근본적인 제약을 타파하기 위해 일한번역기(두 언어의 유사성으로 인해 80% 정도를 정확히 해석해낼 수 있습니다)을 사용하여 유사역사학 사이트를 헤집고 다니며 중국과 관련된 황당한 한국기원설이나 지도들을 수집하게 됩니다(위 위키피디아의 "일본 이외의 사물(日本以外の事物)" 문장에 엄청나게 정리해 놓았습니다). 참고로 아래 지도는 우리나라 환빠가 만든 것인데 일본, 대만을 통해 중국 인터넷으로 넘어가 한국인들을 바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항상 "한국의 역사학자"가 그린 것이라고 소개되며, 일본, 중국 인터넷에서 한국을 비아냥거릴 때 써먹는 아주 유명한 지도입니다.


그러나 일본 혐한들 중 중국어를 구사할 정도의 지식층은 극히 적기 때문에 이를 대륙에 퍼뜨릴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 매개역할을 담당한 것은 역시 일본어에 능숙한 대만인들이었습니다. 중국 위키피디아의 대표적인 반한감정 조장 페이지인 "한국기원론" 페이지를 들어가면(클릭) 희한하게 상당한 자료의 출처가 일본어 웹페이지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내용을 확인해 보면 일본 혐한들이 만든 일본 위키와 거의 동일합니다. 이것이 어찌된 영문일까요?


위키피디아는 "History(查看历史)" 탭을 클릭하면 누가 내용을 만들고 어떻게 수정했는지의 역사를 시간 순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국 위키의 최초 생성 페이지를 열어보면(클릭) 경악스럽게도 일본어로 된 악의적 비방 내용이 그대로 업로드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이러한 내용을 대체 누가 작성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정보들이 남아 있습니다. 위키의 경우 로긴을 해서 글을 쓸 수도 있지만 로긴을 안할 경우 IP주소가 남습니다. 위키 초기 기록의 IP주소를 살펴보면(클릭)


3개의 숫자로 된 IP주소가 보일 것입니다(빨간 상자로 표기). 이들이 어느 나라 IP주소인지 차례로 살펴볼까요?


어떤가요? 일본 혐한과 대만 반한이 한국을 모함하고 한중관계를 이간질하기 위해 함께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보다 유력한 증거가 있을까요? 삼류 야사에나 나올 것 같은 말같지도 않은 일들이 21세기에 자행되고 있는 것이 동북아의 현실입니다.


위 위키피디아는 중국 최대 바이두 포털의 사전에 그대로 올라와 있습니다(클릭). 수억의 중국인들이 이를 드나들며 한국에 대한 증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수수방관하는 사이 우리는 우리가 하지도 않은 행위를 이유로 비난받고 조롱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에 대해 제대로 항변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만 것입니다.


(사실 제가 위 위키 페이지 관련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 위 페이지에 "오보와 인터넷 유언(誤報與網路流言)" 란이라는 반박 부분이 있는데, 이 내용의 대부분은 실은 제가 집어넣은 것입니다(단 최초로 위 섹션을 만든 분은 다른 한국인 분입니다). 많은 내용을 넣고 수정하려고 했으나 끊임없이 깎이고 깎여 그나마 흔적처럼 남아 있는 것이 현재입니다. 위키 중문 페이지의 관리자가 모두 대만인이다 보니 지우고 잘리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계정을 정지당하고 쫓겨나간 이후 안타깝게도 정정 활동을 포기하고 말았던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벌써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저 말고도 많은 다른 한국 분들이 노력했으나 다 소용 없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참겠는데 한국기원론과는 전혀 관련도 없는 존경하는 단재 선생님 사진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 크나큰 한입니다. 예전에는 대만인으로 추정되는 자가 단재 선생님을 히틀러에 비유하여 히틀러 사진을 올려놓았던데 이는 어떤 다른 분의 노력으로 지워진 것 같습니다. 저는 히틀러 사진을 보고 그날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보강된 떡밥을 기초로 대만 언론들은 한국사 교과서나 한국학자의 논문의 내용이라며 허위의 "환빠 지도"를 날조하여 보다 강도 높게 한국을 조롱하기 시작합니다. 대만 인터넷에서는 환빠들조차 만들지 않은 황당한 지도들이 "남한학자"의 작품이라며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특히 DC인사이드에서 한 네티즌이 환빠를 비꼬는 풍자 지도를 만들었는데(클릭), 일본 혐한과 대만인들은 이를 한국인이 진지하게 만든 것인양 포장하여 유튜브에 이를 소재로 한 엄청난 수의 비디오를 업로드하게 됩니다. 특히 영어로 "알라스카는 한국 땅이다"라는 식의 제목의 비디오를 올려놓음으로써 미국인의 분노까지 유발하며 한미관계까지 이간질하려 하고 있습니다(혐한 유튜브 비디오는 조회수 올라가면 안되므로 링크는 달지 않겠습니다).


일본 혐한들과 대만인들 또한 자신들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믿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위와 같은 주장을 한국의 주요 대학의 사학자들이 하는 것인 양 왜곡하여 한국인의 역사와 관련된 주장 자체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강제징용, 정신대,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면, 동북공정에 대한 반박을 하면, 임나일본부를 반박하면 한국 역사관은 다 쓰레긴데 그것을 어떻게 믿냐라고 비웃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대만이 그토록 사랑하는 일본은 이러한 황당한 기원 주장이 없을까요? 아닙니다. 일본이야말로 일본서기로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고사고전", 메이지 시대의 동조동근론 및 식민지배사 왜곡에 이르기까지 역사 날조의 본고장인데 우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할리가 없겠지요. 제가 이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개인소장하고 있으나, 이 블로그의 주제에선 좀 벗어나니 그 중 일부만 맛배기로 보여드리겠습니다.


- 한자의 일본 발명론: 상당 수의 일본인들이 위조된 "신대문자"가 한자와 한글의 기원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幸沙代子라는 사람은 1995년 "한자를 발명한 것은 일본인이다 - 허구의 중국 4000년사"라는 제목의 단행본을 출판하기도 했습니다(클릭; ISBN-10: 4198602654).


- 아오모리의 예수 마을: 일본 아오모리에서는 그리스도가 말년에 일본 열도로 들어와 왜왕의 제자가 되었다는 내용의 죽내문서(다케우치 문서)의 내용에 따라 예수 무덤을 만들어 진짜라고 우기며 매년 축제를 벌이고 있습니다. BBC 중문판 기사 참조


- 칭기스칸도 일본인? 일본에는 징기스칸이 실은 일본의 전국시대의 무장 미나모토 요시츠네라는 취지의 단행본이 최소한 4권 출판되었습니다. 일본 위키피디아에 이를 다룬 별도의 페이지가 있을 정도로 많은 일본인들이 이를 사실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 그밖에 칠기는 일본에서 기원한 것이라는 주장(클릭), 중국 춘추전국 시대의 오월은 왜인의 국가라는 주장(클릭), 우동은 중국 오룡면이 기원이 아니라 일본의 독자 발명이라는 신문기사(클릭), 떡은 중국에서 넘어온 것이 아니라 일본의 독자 발명이라는 주장(클릭), 중국인의 건배(깐뻬이)는 일본인이 가르쳐 준 것이라는 주장(클릭) 등 중국인을 자극할 만한 떡밥은 일본 인터넷에 넘치도록 널려 있습니다. 김정일이 일본인이라는 책도 있는데 심심하면 읽어보십시오(클릭). 제가 수집한 자료가 너무 많으니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사실은 우리의 골치거리인 환단고기도 그 황당한 내용 때문에 잊혀져 있다가 가시마노보루(鹿島昇)라는 일본학자에 의해 대대적으로 재조명되어 역수입된 경우입니다. 따라서 마치 일부 비정상인의 의견을 기성학계의 의견인 양 포장하여 한국인 전체를 비난하면서 중국의 반일 정서를 뒤덮으려는 대만인들의 공작이 얼마나 비열한 것인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관심을 끄고 있는 사이 대만은 예능프로에서까지 한국기원론과 성형을 비열하게 까대며 웃음거리로 삼고 있습니다.


이러한 심각한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는 우리의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주변에서 일본이 뭘 하든, 러시아가 뭘 하든, 중국이 뭘 하든 그냥 관심 끄고 안에서 치고박으며 세월을 낭비하던 구한말 우리 조상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한류 축출을 위한 대만의 성형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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