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달에 유행이었고 이미 다 지나간거라... 제가 유행에 뒤쳐진다는 말을 좀 듣거든요...
그때 보니까 부정선거니 의료민영화니 엄청나게 내일이라도 나라가 망할 거처럼 온 담벼락에 대자보를 붙여 대던데...
지금까지 나라가 안 망한걸 보면 다 대자보 덕분이 아닌가 싶어요... 모두가 고심해서 나라를 생각하고 대자보를 붙였기에
오늘도 대한민국이 조금이라도 건전하게 굴러갈 수 있는 거겠죠.
다만 지금 생각하면 궁금한 게, 대자보 중에 ~~에서 집합해서 단체의 힘을 보여주자.. 이런 대자보가 있었는데,,
그 날이 또 불금이었거든요... 다들 불금에도 나라를 위해서 황금같은 금요일을 반납하고... 시위를 했던 걸까요..
시위가 끝나고 뒷풀이로 클럽 하나쯤 빌려서 민주투사들끼리 대단합 미팅을 가지는 거도
민주주의 수호자들의 화포를 풀기에 나쁘지 않다고 봐요.... 음... 클럽 음악으론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라디오 리믹스 버전"은 어땠을까요...?
다들 민주주의를 수호하느라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을 테니까요ㅋㅋ
아 이야기가 다른 데로 샜네요 ㅋㅋ 죄송합니다....
요즘 제가 대학교를 가 봐도.. 그 많던 대자보.. 솔직히 써서 붙일 곳조차 쉬이 찾기 어렵던 그 담벼락들이
어떤 독재정권 옹호자들이 철거해갔는지 정말 깨끗하더라구요... 대체 누가 그랬을까요. 누가 우리의 대자보를 옮겼을까요?
곳곳에 대자보 모서리의 테이프 자국만 찾을 수 있는게 황량한 그 모습이 재개발 계획이 물거품으로 돌아간 달동네같이 을씨년스럽더라구요.
방학이라 그런지 사람도 없구요.... 방학이라 다들... 여러분이 외치던 민주주의도 같이 방학을 맞이한 걸까요?
그렇다면... 음... 신학기 때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사촌동생에게 선물해 줘야겠어요. 키티가 그려진 예쁜 분홍색 가방과
테디베어 학용품 세트와 대자보를 쓸 사절지와 유성매직 3색 세트....아 밑줄을 긋고 강조하려면 3색 세트가 더 낫지 않아요?
친구들에게 한소리 듣곤 해요. 왜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느냐고...ㅋㅋ.. 밖으로 떠들지 않으면 관심을 안 가지는 걸로 보이는 걸까요..
아고라에서 추천 100개 받은 게시물 그대로 읊어 놓고 한껏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요즘 정치인들 안된다고 소주잔을 탁 내리치면
메가박스에서 연인과 데이트 코스로 관람할 변호인을 예매하면, 아니면 멋진 손글씨, 다양한 색상과 폰트로 그려진
"안녕들 하십니까"를 카톡 프사로 해놓고 심각한 척 하면서 룸소주방에서 3000cc에 기본안주를 무한리필하는게
그게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걸까요
오늘같이 대자보를 아무도 붙이지 않는 새벽에 혼자 대자보를 이야기하고 있는 제가 너무 한심해요....
마치 21세기에 나팔바지의 통이 촌스러운지 촌스럽지 않은지, 2014년에 더플코트의 유행이 다시 돌아올지 안 돌아올지에 대해서
논하는 거 같거든요. 이제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이미 지나간 유행이고 다들 구닥다리라고 생각하는 점에선 똑같겠죠.
카톡 프사도 이제는 쪽팔려서 "안녕들 하십니까"로 설정해놓는 사람이 없겠죠. 나이키 에어포스에 쫙 달라붙는 스키니를 입은 사람이 2014년에 없듯이
2014년에는 2014년만의 새로운 민주주의 유행이 생기겠죠... 음... "민주주의"라는 페북의 페이지에 좋아요를 누르는 건 어떨까요.
공유도 하고.. 추첨을 통해서 연인과 보러갈 수 있는 변호인의 티켓을 주는 거에요... 대박이다...
근데 이미 변호인도 볼 사람은 다 본 유행이 지난 영화라.. 참여율이 저조할 수도 있겠네요 ㅠㅠ...
앨빈 토플러인가요?? 미래예측 잘하는 사람 ㅋㅋ;; 그 사람도 이건 예측하지 못했을 거에요. 21세기에는
시위대가 광장에서 나와 자기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전기장판에 온 몸을 뜨뜻하게 데우면서 한 뼘도 안되는 기기에 대고
연신 손가락을 놀리면서 민주주의를 찾고있을 줄은, 앨빈 토플러가 아니라
로마의 흥망성쇠를 모두 예언했다던 시빌도 이 사실을 안다면 정말 골때린다고 생각했을 거에요.
대자보 유행이 한창일 때 비슷한 글을 썼었어요. 대자보가 스펙이 될까요? 나중에 술자리에서 나는 이렇게 민주주의를 위해 한 몸 바쳤노라.
이 한마디, 안주거리 삼을 영웅담에 대자보는 그저 아무렇게나 쓰인 종이쪼가리 아니냐구요.
그 때 다른분이 그러더라구요.
"그저 유흥거리로 삼아도 좋다. 한 명이라도 이 부정에 관심을 가지고 눈뜨고, 항의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것이 아니냐. 우리에게는 한명이라도
더 진실을 알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사람이 민주주의를 그저 가슴에 달린 뱃지 쯤으로 취급할지라도, 무엇에 대항해야 하는지 공론화시키고, 더 많은 사람이 불합리한 진실을 알게 하고, 분노하고, 같이 동참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 생각은 좀 달랐어요.
"유흥거리로 민주주의를 생각하는 사람에게 그 이상은 없을 거에요. 시위를 하고, 경찰이 진압봉을 들었을 때, 물대포를 맞았을 때,
두려움보다 어떻게 하면 SNS에서 관심을 끌 수 있을지만 궁리하는 사람들에게는 민주주의보다는 사람들의 관심이 더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을 얻으려고 하는 거기 때문에, 이슈가 사그라들면 누가 그랬냐는 듯 민주주의든 뭐든 뿌리치고
다른 이슈를 찾아 나설 거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진실을 다 아는 척 하지만 진실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진실엔 관심도 없고 정작 관심있는 건
어떻게 하면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많이 받는지, 팔로어의 수가 늘어나는지의 여부이기 때문에, 진심으로 뭐가 잘못된건지 책을 읽고,
공부하고 말 한마디 더 아끼지 않는다면, 오늘도 내일도, 아니 10년 뒤에도 사람들이 정말로 고민하는 건 민주주의나 합리적인 사회 따위가 아니라
"안녕들 하십니까" 카톡 프사의 폰트가 예쁜지, 아니면 색상은 칙칙하지 않은지, 따위가 되겠죠."
2월 3일 늦은 새벽
아무도 대자보를 붙이지 않는 날에 유행에 뒤떨어진 사람이 유행에 뒤떨어진 대자보 비스무리한 것을 쓰면서 유행에 뒤떨어진 한 마디만 할게요.
"안녕들 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