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데이비드 베컴,
내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
어렸을 때부터 나는 축구가 너무 좋았어.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나는 축구공이 가장 좋았지.
공을 원하는 곳으로 차고 싶어서
하루에 공을 수백번 차곤 했어.
나는 잘 때도 축구공을 항상 내 옆에 두곤 했었다니까 하하
어렸을 때 맨유의 플레이를 보고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고
7번인 브라이언 롭슨을 동경해왔지.
토튼햄 핫스프 유스팀에서 본격적인 선수생활을 시작했어.
하지만 내가 입고 싶은 유니폼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붉은 유니폼이였지.
나는 13살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스팀에 합류할 수 있었지.
(어린 시절부터 고난도 시저스킥을...)
2년간 다른 팀으로도 잠시 임대되긴했지만
유소년 계약(16세 이하 선수와 장기간 계약 불가)이 끝나자마자 바로 맨유로 복귀했지.
16살 때 맨유 선수로 합류하기위해 학교를 그만두었고
팀의 경기장 근처에 있는 집으로 홀로 살기 시작했어.
단지 맨유의 선수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지.
1992년 맨유 청소년 팀에서 활약하며 FA컵 우승을 이끌어 주목받기 시작했고
퍼거슨 감독의 눈에 띄어 그토록 원했던 맨유 1군 선수로 뛸 수 있었지.
93년 브라이튼 전에 하는데 데뷔전을 치르는데 성공했어. 기쁨도 잠시...
당시 맨유는 7번의 후계자로 에릭 칸토나가 뛰고 있었고
그에 비해 나는 아직 16살의 유망주에 불과했지.
퍼거슨 감독은 나에게 경험을 늘려주기 위해 2년동안 프링스턴 팀으로 임대를 보냈어.
나는 소중한 경험을 쌓았고 맨유에 복귀했을 때는 주전선수로 활약할 수 있게 되었어.
하지만 팬들에게 난 단지 평범한 선수로 기억되었어.
그러한 나에게 96년 결정적으로 나의 이름을 알리는 사건이 있었지.
바로 50m 장거리슛이 그대로 골로 연결되었어!
정말 엄청난 골이였어!
이후 실력있는 선수로 인정받았고
리그(95/96, 96/97), FA컵(95/96)을 들어올리며
칸토나의 후계자로 지목받고 세계적인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되었으며
잉글랜드 대표팀에도 합류되어 국민영웅으로 떠올랐어.
또한 잘생긴 외모와 빅토리아와의 연인관계로 더더욱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밖에 없지.
(뭐 일단 베컴이니까 그다지 뻔뻔한 건 아닌...)
정말 두려울것 없었던 최고의 시절이었지.
나는 세계최고의 미드필더로 떠올랐고 98 프랑스 월드컵 전 잉글랜드의 영웅으로 주목받았어.
조예선 콜롬비아 전 프리킥 골을 성공했을 때까지만 해도 말이야.
16강에서 만난 아르헨티나와의 운명의 대결
난 아직도 그때를 떠올려
오웬에게 환상적인 어시스트를 기록했을 때만 해도 나는 최고의 플레이를 선보였어.
경기는 연장으로 접어들었고...
경기 내내 신경전을 해온 시메오네가 뒤에서 나를 밀어 넘어지게 되었어.
화가 나는 시메오네의 발을 걷어차게 되었고 퇴장을 받게 되었지.
그 당시 난 아직 어렸고 경험이 부족했거든.
수적열세의 잉글랜드는 승부차기 끝에 아르헨티나에 패하게 되었고
그 사건이 내 인생의 큰 오점이 되었어.
(10명의 영웅과 한명의 미친 놈...)
그후 나는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었지.
나를 칭찬했던 각종 언론과 많은 팬들이
등을 돌리며 하나같이 나에게 비난을 해댔어.
심지어 살해위협을 받기도 하며 불안에 떨고 지냈지.
인생에서 가장 가혹하고 힘든 시기였어.
그러나 나는 가족과 아내의 도움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뛰기 시작했어.
재기를 시작한 나는 98/99 시즌에 뛰어난 활약으로
맨유의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엄청난 업적에 이바지했어.